해주일록
20세기 영남 유림의 삶과 시대 의식
평생을 독서하고 아동과 청년을 가르치며
위태로운 시대에 유학의 빛을 꺼트리지 않으려 애썼던
해주 남붕의 치열한 수행 기록인 일기를 통해
구한말 영남 지역 보수 유림의 생활사를 복원하다
민간에 소장된 자료들 가운데 일기류는 관찬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 소중한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오랜 시간 민간 소장 일기류를 발굴 및 번역해온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사업팀이 한 해 동안 연구한 결과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는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제18권 『해주일록』이 출간되었다. 『해주일록』은 20세기 초 경북 영해에 살았던 유학자 남붕南鵬(1870~1933)이 쓴 일기이다.
남붕은 17세가 되던 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48년간 일기를 기록하였다고 하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922~1933년 사이의 일기뿐이다. 많은 양이 유실되어 아쉬움이 크지만 일제강점기 유학자의 치열한 삶과 일상이 충실히 담긴 11년치의 일기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자료이다. 해주 남붕은 일기에 하루 일과, 자신이 공부한 내용,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금전 출납, 농사일의 대소사, 자신과 가족들의 질병 및 치료뿐만 아니라 영해를 중심으로 당대 유학계의 동향을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일기에서 당시 유교 개혁의 흐름과 상반되는 입장에 있었던 보수 유림의 움직임과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재조명되는 일기문학의 중요성
개인 일기에서 시대 읽기의 초석으로
남붕은 1932년 어느 날의 일기에서 “어느 호사가가 내 평생 쓴 일기를 정리하여 한 질의 책을 만든다면, 내가 일생 고심한 것을 알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이룬 것이 없음을 슬퍼할 것”이라고 썼다. 또한 일기를 쓴 이유로는 “살피고 증거로 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히며, 자신의 일상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개인적이고도 일상적인 담론으로부터 출발하는 최근 역사 연구의 경향성을 예견하고 준비하듯, 남붕은 자신의 일기를 대중에 공개되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또한 당시의 사실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공공의 문서’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일기를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후에 다시 보면서 수정하였던 모습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남붕의 일기는 관찬 사료에는 드러나지 않는 역사상의 빈 곳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번 책에서는 총 여섯 명의 연구진이 참여하여 다각도로 역사의 모습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김종석은 『해주일록』을 통해 20세기 초 영남의 보수 유림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살아갔는지를 고찰했고, 조정현은 격변기 지방에 살던 유림이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며 어떤 사회문화 활동을 했는지에 주목했다. 문희순은 남붕의 학문 세계를 탐구하되, 퇴계 이황을 존모하고 계승하려 한 노력과 문학에 대한 인식론, 인생의 지향점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안경식은 유학이 위기를 맞은 20세기 초 유학자의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남붕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교육자, 독서인, 수행자로서의 측면을 각각 조명하였다. 이성임은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 남붕이 자신의 가정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갔는지, 농사 과정 및 재산 관리 등의 내용을 짚어보았다. 손경희는 『해주일록』을 통해 영덕군의 자연재해 및 질병 실태를 확인하고, 남붕과 그 주변 인물들이 앓았던 질병과 그 치료 내역을 확인한다.
수기치인과 위기지학의 유교 지식인 남붕
수행적인 삶의 한계와 정당한 자리매김
구한말과 일제강점의 격변기, 해안 지방의 작은 고을인 경북 영덕군 영해 지역에 세거하였던 해주 남붕은 7세에 한문 공부를 시작하여 6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일관되게 한 길로만 살았다. 퇴계로부터 이어지는 영남학의 적통을 이어받았고 그 점을 자부하였으며, 유학 경전과 성리학 공부를 통하여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려 애썼다. 과거시험에 낙방한 뒤 자의반 타의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남붕은 독서와 중국어 공부, 중국 및 국내 유림들과의 교유, 태극교 활동, 후진 양성 활동 등을 통해 지역 유교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를 위해 중국어를 배우고 우편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일본식 농경 기술을 수동적으로나마 받아들이는 등 자신의 사상적 신념을 지키면서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려 했다.
하지만 남붕은 다양한 방식의 적극적인 시도에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기존 유림의 방식에 안주하는 모습을 유지했다는 한계를 보였다. 새로운 지역에 가서 자신의 유교적 이상을 펼치고자 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귀향했고, 향교에 신식 중학교를 설립하는 데 반대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 향약을 되살려 제대로 시행해보려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참여는 배제되고 소수의 유림들만 참여하는 방식으로 잔존하게 됨에 따라 세상과 더욱 괴리되고 말았다. 그의 경제생활도 이러한 측면과 맥을 같이하는데, 남붕은 일본의 경제 시스템 구조가 성립된 상황에서 전통의 끝자락을 붙든 채 전통으로의 회귀를 꿈꾸었다. 무너진 종가를 세우고 흩어진 조상의 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으나, 과거제가 폐지되어 학문을 통한 관직 진출이 단절된 상황에서 학문과 농사를 병행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그는 평생 농사에 진력하지 못해 재산을 확대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의 각종 갈등과 압박 속에서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위축되고 노쇠해질수록 남붕은 내적 영역에 더욱 충실한 삶을 살며 위기지학에 전념하고, 명멸되어가는 유업(儒業)이 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일생동안 강학을 하며 교육자로 살았다. 그는 영남 지역에서 상당한 명성을 지닌 교육자였으며, 자신의 집안뿐 아니라 근방 및 원거리의 학동 및 청년들이 그에게 수학 받고자 찾아왔다.
시대의 변화와는 무관할 것만 같은 선비의 삶은 모순과 혼란 속에서도 일정한 방향성을 보였다. 그간 개혁 유림, 즉 유교 개혁론의 논의에만 학계의 초점이 맞추어져왔으나 실상 대다수는 남붕과 같은 보수 유림이었고 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역사의 알맞은 곳에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필요한 터였다. 매일매일의 강학과 독서, 집안일과 농사, 주변인과 자신의 질병을 연구하고 치료해간 내용을 소상히 담은 기록은 보수 유림이라는 그 자신의 한계 속에서도 값진 사료로서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
책 머리에
1장 20세기 유학자 남붕의 『해주일록』, 신념과 좌절의 역정 • 김종석
남붕, 구학 그리고 『해주일록』 | 일기에 나타난 남붕의 생애 | 유교 공동체 회복을 위한 활동 | 남붕 구학의 철학적 기반 | 20세기 보수 유림에 대한 평가
2장 해주 남붕의 일기를 통해 본 일제강점기 유교 지식인의 시대 인식과 현실 대응 • 조정현
머리말 | 『해주일록』에 기록된 일제강점기 선비의 일상 | 격변기 재지 사족의 사회 활동과 이상 추구 | 전근대적 유교 지식인의 시대 인식과 현실 대응 | 맺음말
3장 해주 남붕의 학문 세계와 지향점 • 문희순
들어가며 | 생애와 하루 | 학문의 세계 | 궁극의 지향점 | 맺으며
4장 20세기 영덕 지역 유학자, 남붕의 강학 활동과 의미 • 안경식
교육의 관점에서 보는 남붕 연구의 의미 | 교육자로서 남붕의 일상 | 독서인으로서 남붕의 일상 | 경 공부의 수행인으로서 남붕의 일상 | 현대 교육과 남붕의 강학 활동의 의미
5장 일제 강점기 한 유학자의 경제생활과 재부관: 남붕의 『해주일록』을 중심으로 • 이성임
들어가며 | 영해 원구리 | 토지 소유 규모 | 농사짓는 방식 | 머슴의 고용 | 일본의 그늘 아래서 | 전통의 끝자락을 붙들고 | 나오며
6장 일제시기 향촌사회의 질병과 치료: 『해주일록』을 중심으로 • 손경희
48년간 일기를 쓰다 | 가뭄이 자주 발생하다 | 남붕, 실용적인 자세로 질병을 치료하다 | 남붕, 모든 것을 던져 질병을 치료하다 | 나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