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 페미니즘 문학의 문을 연 바로 그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
현대문학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첫 장편
페미니즘 문학의 문을 열어젖힌 바로 그 소설
부커상 2회 수상에 빛나는 현대 영미소설의 대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첫 장편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가 출간됐다. 1993년 ‘케익을 굽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된 적이 있으나, 원제인 ‘The Edible Woman’의 뜻을 그대로 살린 제목과 새로운 번역으로 27년 만에 개정판을 선보인다.
《먹을 수 있는 여자》는 탈고한 지 4년 만인 1969년에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았고 마침 그때 북미에서 페미니즘의 열풍이 시작됐다. 당장 이 작품을 페미니즘 운동의 소산으로 간주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누가 내게 묻는다면 프로토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_‘저자 서문’에서
이 작품은 페미니즘이 정치적 쟁점으로 막 부상하던 1960년대 캐나다 사회를 배경으로 여성이 결혼과 임신에 대한 담론 속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갈등을 예리하게 그린다. 작가는 기발한 상상과 풍자, 아이러니와 환상, 은유로 가득한, 강력하게 빛나는 이 소설에서 전통적인 코미디 양식과 결혼에 대한 패러디 양식을 도입하여 사회 담론 구조의 부도덕성을 과감히 드러낸다. 고전적인 문학 형식 속에 요리책과 광고의 언어를 섞는가 하면, 프로이트와 융 등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신화에 사로잡힌 여성들’의 상황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남성 중심 사회 속 정상적인 여성성에 대한
냉철한 탐구와 통렬한 풍자
“클래라.” 그녀는 말했다. “너는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 “응, 정상이라고 생각해. 거의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이라고 하겠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만. 왜?”_289쪽
소설의 주인공인 메리언 매캘핀은 “거의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인 젊은 여성이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시모어 서베이스라는 설문조사 회사에서 설문지를 만드는 일을 한다. 변덕이 심한 룸메이트 에인슬리와 까다로운 집주인 사이에서 불안한 휴전을 유지하며, 외모며 직업이며 꽤 괜찮은 남자친구 피터와 데이트를 즐긴다.
대학 동창인 클래라는 대학을 중퇴하고 결혼하여 벌써 두 아이를 낳고,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던 룸메이트 에인슬리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훌륭한 혈통에다가 외모가 좋은 남자와의 사이에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낳아 기르길 원한다. 메리언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두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결혼과 임신에 대한 불안을 드러내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한다.
피터, 에인슬리, 게다가 메리언이 우연히 만난 대학원생 덩컨까지 메리언의 혼란을 증폭시키고, 이들과의 만남을 거듭할수록 메리언의 심리 상태는 날카로워진다. 피터는 메리언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메리언이 침대 밑에 들어가 있자, 그녀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 ‘여성성’을 거부한다며 화를 낸다.
“에인슬리는 얌전히 있었는데 당신은 왜 그랬어? 당신은 뭐가 문제인가 하면.” 그는 매정하게 말했다. “당신에게 주어진 여성성을 거부하고 있다는 거야.” _113쪽
하지만 메리언만큼 ‘현명한’ 여자가 없다고 생각한 피터가 청혼을 한 후, 상황은 이상하게 돌변한다. 갑자기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에 감정이입한 메리언이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됐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여성 스스로 구축하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정체성
페미니즘 소설의 원형을 제시한 작품
날이 갈수록 메리언은 달걀, 채소, 케이크, 심지어 호박씨까지 다른 종류의 음식들까지 먹을 수 없게 된다. 더욱 당황스럽게도 스스로가 먹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소비되고 있는, 수동적인 상태에 갇혀 있다는 느낌에 빠져들며 메리언의 소외감은 커져간다. 이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남지 않게 되어 거식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지만, 주변인들은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알고자 하지 않는다. 결국 메리언의 상상 이상의 놀라운 행동으로 소설은 절정에 이른다.
여성을 ‘음식’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세계, 기존의 여성성의 의미에 저항하기 위해 메리언은 ‘음식’ 즉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이를 통해 “거짓되고 공허한 정체성에서 탈출하고 자신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는다. (…) 즉, 좀 더 강인하고 독립적인 자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섹슈얼리티, 가족과 직장 내에서의 실질적인 불평등, 법적 불평등, 재생산권 등 2세대 페미니즘이 다루는 여러 담론들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이전에 집필되었으나 이러한 문제들을 이미 소설 속에 녹여내고 화두를 던진, 페미니즘 소설의 원형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서문 · 9
1부 · 15
2부 · 147
3부 · 379
옮긴이의 말 · 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