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지음 양경인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2년 4월 1일 | ISBN 9791167371256

사양 변형판 130x190 · 216쪽 | 가격 12,000원

분야 시/에세이

책소개

근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살아낸
제주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삶과 꿈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수상작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제주4·3 당시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로서, 격변기 분단조국의 연표를 온몸으로 살아낸
김진언 할머니의 삶을 세상에 드러낸 이 작품은 논픽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_심사평 중에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이 책의 저자 양경인은 제주4·3 사건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1987년부터 5년 동안 끈질긴 채록과 집요한 취재를 거쳐 제주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삶을 복원해냈다. “내가 죽으면 발표하라”는 김진언 할머니의 뜻에 따라 20여 년 만에 펴내는 그녀의 생애는 해방 전후 여성운동의 공백을 메우는 소중한 기록이자 시대의 비극에 온몸으로 저항한 한 인간의 이야기다.
제주4·3 사건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부 독재에 가려져 수십 년 동안 이야기되지 못했다. 잔혹한 국가폭력은 ‘애국’이라는 명분과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정당화되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와 낙인을 걷어내고, 단단한 꿈과 희망을 지닌 한 여성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해방을 찾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나아가 그 시대 제주 사람들이 품었던 열렬한 소망과 깊게 드리운 상처를 제주4·3의 현장에 있었던 민중들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제주4·3이 좌절된 최초의 통일운동이자, 봉건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던 여성운동이었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해녀의 권리를 위해 싸우던 당찬 해녀, 김진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다

김진언 할머니는 열세 살에 물질을 시작했다. 아침에 배를 타러 나갈 때면 늘 앞장서서 선창을 하던 당찬 해녀였다. “앉은뱅이도 일어서 춤춘다”는 말을 들을 만큼 노래를 잘했다. 남다른 풍채와 궂은일에도 솔선하는 성격 덕에 일찌감치 해녀들의 권리를 지키는 부녀회의 총무를 맡았다. 낮에는 어업 조합 사람들을 상대하고 밤에는 배를 타고 나가 해녀들이 캐온 해산물을 지켰다.

그때 우리 부락에서 부녀회를 만들었는데, 조직이 셌다. 동네 여자가 죽으면 행상을 메어서 공동묘지까지는 못 가도 신작로 길 건너까지는 여자들이 다 옮겼다. 사촌고모님이 부인회 회장이고 우리 어머님은 부회장, 나는 총무를 맡았다. 어머니, 사촌고모, 내가 옆구리 딱 해서 나서기 시작하면 남자들이 아무 소리도 못했다. 고모님이 일하다 비위가 틀어져서 베구들동산에 가 “이 쫄장부 같은 놈들 다나와라” 하면 남자들이 발발 떨며 맥을 못 추었다. _본문 23~24쪽

부녀회 활동을 함께하던 이들이 항일운동으로 징역을 가버려 활동이 흐지부지되자, 할머니는 강원도와 일본으로 물질을 떠난다. 그렇게 수년 동안 바다를 떠돌다 제주에서 해방을 맞는데, 제주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넘실거린다. 할머니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남녀가 평등하며 일부일처제를 실시한다는 ‘여자평등권’과 차별없는 무계급사회라는 말에 이끌려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민주여성동맹(여맹) 활동에 뛰어든다.


제주4·3과 한국전쟁, 월북과 남파, 비전향 장기수 생활…
역사적 비극에 맞서며 자신의 꿈을 지키다

제주4·3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여맹 사람들은 제주에서 환영받았다. 바닷가 마을에 내려가면 집을 통째로 내주며 반겼고,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연설을 하면 호응을 안 하는 이가 없었다. 토지 무상분배나 일부일처제와 같은 구호는 일제의 수탈을 겪으면서도 해녀항일운동이 활발했던 제주도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제주4·3 사건이 시작된 봄 이후,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높은 산으로 쫓기게 되었다. 그렇게 1947년 봄부터 2년 동안 김진언 할머니는 제주의 수많은 오름과 한라산 일대를 뛰어다니며 여맹 활동을 계속했다. 제주 일대에서는 무분별한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토벌대가 중간산 마을을 불태우고 산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이면 바로 총을 쏘았으며, 민보단이 조직되어 제주 사람이 제주 사람을 죽이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1948년 11월 15일 북촌의 젊은이들을 10여 명을 잡아가 함덕해수욕장에서 총살했을 때, 우리 집안 장손인 큰조카도 희생되었다. 사촌들은 몰래 내려온 나를 보자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이년아, 어느 것이 해방이고? 어느 것이 금일 명일이고?” _본문 58쪽

김진언 할머니를 비롯한 여맹 사람들은 이제 집안이 “역적”이 되어 원망을 사고 있었다. 김진언 할머니도 결국 “집안 사람을 서른 여섯이나 빼앗긴” 채 토벌대에 붙잡히고 만다. 그렇게 경찰서로 끌려간 할머니는 모진 고문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날조된 진술서에 지장을 찍지 않는다. 육지의 교도소로 이송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한국전쟁이 일어나 교도소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한다.
그 길로 북한으로 건너간 할머니는 그곳에는 평등사회가 이뤄져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할머니의 기대와 너무도 달랐다. 굶어 죽는 인민들이 허다한데 군의 상부에서는 음식이 남아나고 있었다. ‘우리 제주에서는 이러지 않았다’며 분노했지만, 여전히 평등사회에 여성해방의 꿈을 믿었다. 그 한편에는 제주도에서 서른여섯 명의 일가친척을 잃은 분노와 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임무를 받아 남파된 할머니는 몇 달 만에 체포되어 20여 년을 교도소에서 지낸다. 그 엄혹한 세월 동안 전향을 거부하다 결국 전향 문서에 도장을 찍은 할머니는 출소하여 25년 만에 제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딸과 함께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되돌아본다.

만약 내가 한국전쟁 때 형무소에서 나와 바로 제주로 왔다면 집안에서도 못 견디고 나를 죽여버렸을 거다. 우리가 한 일 전체가 거짓말이 돼버렸으니까. 사람만 죽었지 뭐 하나 이룬 것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 부락으로 돌아오기도 창피했다. 하지만 그때 분들이 몇 명 없으니까, 있어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이라 그렇지 그 사람들 보기가 여전히 너무 미안했다. 우리가 어리석어 그 고생을 한 것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_본문 148~149쪽

“여성해방 없이 인간해방은 없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세 여성의 이야기

저자는 김진언 할머니의 생애를 울림 있게 전하는 것을 넘어 독자들에게 시대의 모습을 전하려 한다. 할머니와 같은 시기 전라도에서 여맹 활동을 했던 박선애·박순애 자매를 인터뷰하여 해방 전후 여성운동의 모습을 보다 체계적으로 조망한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하다 지리산에서 붙잡힌 자매는 “여성해방 없이 인간해방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삶의 여정을 차근차근 들려준다. 그렇게 해방 직후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세 여성의 이야기는 여성운동의 물결 안에서 연결된다. 그녀들의 삶은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리고 미래의 여성들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발자취로 이곳에 깊이 새겨진다.

목차

들어가며

1부 김진언 제주4·3여성운동가의 생애
1 제주에서의 활동
2 제주를 떠나다
3 북한, 무계급사회의 계급
4 다시 교도소에서
5 제주로 돌아오다

2부 박선애·박순애 대담: 사회주의 여성운동가에서 통일운동가로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양경인 지음

1959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4·3연구소의 창립 멤버이며, 현재 4·3평화인권 교육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재경제주4·3 희생자와 유족 증언 조사 책임연구원, 제주4·3 70주년 신문 편집위원장을 맡는 등 제주4·3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공저로는 《이제사 말햄수다》, 《4·3과 여성》이 있고,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로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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