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겠다는 마음

오성은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2년 11월 30일 | ISBN 9791167372611

사양 변형판 130x205 · 244쪽 | 가격 14,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모든 것에 닿고자 간절한,
그렇게 되겠다는 마음의 표상들

신예작가 오성은의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

오래된 시간의 문을 열고 마주하는 착색 삽화처럼 아득하고 친근하다. 아득함과 친근함이 자아내는 경이로움은 오성은 소설만이 거느린 미덕이다.
―함정임(소설가)

오성은은 세상에는 슬픈 것이 가득하다는 것을 아는 작가이다.
―윤성희(소설가)

2018년 진주가을문예에 중편 〈런웨이〉로 등단한 이후 영화 연출과 방송 진행, 작곡, 사진, 여행에세이 집필 등 문학을 기반으로 한 전방위 예술가로서 활동해온 오성은의 첫 소설집 《되겠다는 마음》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되겠다는 마음》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에는 그가 오랫동안 발견해온 현실과 앞으로 발견하려는 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생의 희망과 환희가 가득 담겨 있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자취에 대하여 슬픔과 자조를 묻고, 위로와 복수의 어긋남을 아쉬워하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다종다양한 감정과 마음들을 그려낸다. 그 마음들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어떤 불꽃으로 타올라 어떻게 꺼져가는지를 관찰하며 “재가 식을 때까지(…) 재의 마음으로 소설”(윤성희_추천사) 이 된 이야기들은 오성은의 손길에 따라 노래가 되고 음율이 되고 문장이 된다. 배와 한 몸이 된 노인이 나아가는 먼 바다로, 악기를 월세 대신 주고 떠난 악사의 공허함으로, 골동품 상점을 드나드는 글쟁이의 은밀함으로, 창고가 되겠다는 젊은 부부의 환상으로 뻗어나간다. 어떻게 보면 이 여덟 편의 이야기들은 무언가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인 채로 남은 생의 한 부분들이며 끝내 되지 못한 마음들에 대한 간절함, 원하는 무엇에 닿지 못한 헛헛함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쉼 없이 ‘쓰는 사람’으로서의 여정을 이제 막 시작한 오성은에게 이 ‘되겠다는 마음’은 한시절을 매듭 짓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는, 쓰는 사람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안고 소설의 세계로 떠나는 자의 첫 걸음인 셈이다.

당신은 내게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기도 해요.”

서두를 여는 작품 〈고, 어해〉는 금광호 선장인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배는 자신의 몸과 마찬가지로 늙고 닳아버린 폐선이 되어버렸다. 삼십 년을 넘게 자신과 함께했으니, 이제 폐기해야 되겠으나 노인은 자꾸 망설여진다. 고철 업체에 배를 넘기는 걸 결정한 어느 날 “밑바닥에서 울려 퍼진 바다짐승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은 배가 무슨 소리를 내냐며 환청이라고 노인을 다독이지만 그는 꺼이꺼이 우는 배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우연일까. 최 사장이 먼 바다에서 물건을 받아 건네오면 큰돈을 주겠다는 연락이 오고 노인은 폐선에게 생명을 연장해줄 생각으로 ‘그 일’을 받아든다. 정체 모를 하얀 가루를 싣고 항구로 향하는 노인. 육지로 귀환하면 치욕을 감내하는 삶이 시작될 테고 반대로 배는 건강한 모습으로 재탄생할지 모르겠지만, 노인은 갑자기 “처음 보는 바다”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다. 자신의 쓸모없음과 같은 등위에 있는 폐선을 끌고 그는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떠난 자가 된다.
〈무명의 사람들〉에서는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며 떠난 곳에 자신도 모르게 정박하며 삶을 영위하는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 떠난 사람을 찾아 기다린다는 막연한 목적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두, 진수, 미란, 상주 이모는 아내와 동생, 부모와 아들을 각각 잃거나 떠나보냈다. 그들은 떠난 자들이 처음으로 돌아오게 되는 곳 터미널에 자리를 잡아 인연을 맺어간다. 김치를 배달하며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경두, 집을 나간 여동생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낯선 대도시로 흘러든 사내 진수, 보육원에서 나고 자라 성인된 미란. 경두는 사별한 아내를 기다리고 미란은 존재도 모를 부모를, 진수는 집을 나간 여동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각각의 소중한 사람을 잃고 비슷한 마음들을 간직한 채 본인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세 사람은 각각의 떠난 사람의 미련과 남겨진 자의 알 수 없는 슬픔을 공유하고 일상의 순간순간을 반추하며 삶의 무의미적 체념을 깨닫는다.
〈아주 잠시 동안〉 또한 만남과 떠남, 사랑과 이별에 대해, 더 나아가서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과 타인에 의해 되어가는 자신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리는 인물의 모습을 그린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기훈에게, 장인은 건물 관리를 맡기며 음악 하는 삶과 현실에서의 욕망하는 삶이 비교되기를 원한다. 그런 기훈은 장인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지만 모른 척하며 현실에서의 음악 하는 삶을 고수하며 동시에 타인이 본인에게 원하는 모습 또한 되기를 노력한다. 그런 와중에 끝방에 사는, 월세가 밀려 금방이라도 집을 비워내야 하는, 기타가방을 멘, 누가 봐도 음악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세입자 태윤을 마주하게 된다. 태윤은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집주인이자 관리인인 기훈에게 정서적으로 통한다 생각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픈 애인이 말도 없이 사라졌고, 꼼짝 못하고 그녀의 집에서 정처 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신은 계속 그녀를 기다릴 예정이며 방세를 값이 나가는 기타로 대신 내겠다는 말. 태윤의 상황을 들으며 기훈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더불어 지금 나는 왜 이곳에서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지 반추하다 음악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건물주로서의 욕망하는 마음 사이의 혼란함을 느낀다. 기훈은 그토록 미워했던 도돌이표와 같은,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주기를 자신 스스로 바라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멀리 가버린 자신에게 다그쳐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편에 있다면, 그 마음들이 너무 멀어 아예 환상이나 비현실로 자리를 바꾸는 이야기들이 있다. 〈가방 안에 들어간 남자〉는 주인 외에 모든 것을 삼키는 가방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방의 갈증으로 인해 모든 것을 삼킨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갈증과 가방의 갈증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방의 갈증을 충족시키는 행위, 즉 가방에 무엇을 집어넣는 행위를 하며 자신의 욕망이 해소되며, 스스로의 현실에서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집중한다. 시간이 흘러 그런 행위가 자신의 삶을 깨뜨리고 방해하는 요소란 걸 깨달아 가방을 버리지만, 돌고 돌아 가방은 주인공에게 귀환한다. 주인공은 가방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끊임없이 삼킬 수밖에 없는 가방과 영원히 결별하는 방법은 가방 안에 주인공이 스스로 잠겨지는 것. 그러나 가방 안에서 그는 사라지지 않는다. 삼켜지지 않는다. 그는 가만히 가방 밖을 상상한다. 현실의 이면을 상징하고 확장한 ‘가방’. 현실을 벗어나 비현실에 갇혔으나 다시 현실을 꿈꾸고 바라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창고와 라디오〉에서는 아내는 창고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하지만 중학교 동창인 강에게서 “무언가 되겠다는 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는 거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 남편은 사라진 아내를 찾아 그녀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거기에서 미래의 아내가 나타나 이미 본인이 꾸었던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 환영 같은 아내에게 창고가 되겠다고 한 이유를 물었으나 답을 들을 수는 없었고, 현실에서 멀어진 다른 차원에 진입한 느낌과 시·공간이 분리된 모습,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듯한 움직임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남편은 어쨌든 비현실 속이라도 아내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당신이 창고가 된다면 나는 당신이 즐겨 듣는 라디오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오성은의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정과 존재했으나 이미 사라져버린 흔적들에 주목한다. 마음의 전체를 물들이는 하나의 색에 주목하기보다는 작은 부분에 스며드는 다양한 빛깔에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건 그만의 관찰의 방식이며 소설가로서의 오성은이 세계를 들여다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것은, 오성은에게 관찰하고 반응하는 것들을 소설이라는 장르로 반응해내는 자기만의 예술가적 방식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성은만이 반응했던 장면, 이를테면 사물과 자신을 한몸이라 생각하게 되는 반응, 창고가 되겠다는 아내의 말에 호응해 그렇다면 나는 라디오가 될 수 있겠다는 남편의 반응, 모든 것을 삼키는 가방 안에 결국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반응 같은. 특정한 어느 것에만 반응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오성은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이 삶의 어느 순간에 직면하면 반응하게 된다는, 또 몽롱하고 환희의 순간 같은 걸 만나게 된다는, 발견할 수 있다는 목소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목차

고, 어해 7
핑크 문 29
아주 잠시 동안 53
밤은 농담처럼 81
무명의 사람들 101
가방 안에 들어간 남자 129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153
창고와 라디오 185

해설 | 허희(문학평론가) 217
소설 악보: 선과 선을 연결하는 음표들
작가의 말 235
추천의 글 238

작가 소개

오성은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2018년 진주가을문예에 중편소설 〈런웨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되겠다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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