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23.09-10
‘문학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도끼가 되겠다’는 파격적인 선언과 함께 등장한 『Axt』가 어느덧 50호를 맞이했다. 8년간 무엇이 변화했고, 어떤 것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50번째 『Axt』에 소중한 마음을 보내준 반가운 얼굴들의 greeting과,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diary와 novel까지. 아쉬운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며 『Axt』는 또 한 번의 변화를 준비하고자 한다. 많은 것이 새로워지겠지만 본질은 여전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학이라는 매개로 묵묵히 독자들에게 가닿을 준비를 하며, 서로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50번째 『Axt』를 보낸다.
◌ cover story
“때론 나만 아직도 그 시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혼자 영영 여름 안에 남겨져 있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남겨진 건 괜찮아요. 다만 친구 하나 같이 있으면 좋겠는데. 남북으로 나뉘어서든, 일상의 작은 오해든 무엇이든, 그리운 사람을 어떤 이유로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을 쓰고 싶었고, 그럼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혼자 남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정이현, 「cover story」 중에서
50호 cover story의 주인공은 최근 새 가족인 ‘어린 개’를 맞이해 함께 사는 것에 적응 중인 소설가 정이현이다. 스스로를 ‘출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소설가’라고 표현했지만 지금도 늘 무언가 쓰고 마감하는 생활을 살고 있는 그의 근황을 들여다보며, 특유의 ‘하드보일드한 머뭇거림’이 담긴 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밀도 있게 고찰해보았다. 인터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소설가 강화길이 진행해주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 동년배 친구들과 이야기에 공감하던 이십대는 이제 같은 직업을 가지고 고민을 나누며 그 삶을 이해하며 다양한 겹의 이야기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터뷰어가 되었다. 이들이 나눈 이야기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에게 또 다른 깊이와 울림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 greeting
50번째 『Axt』에 특별한 손님 두 분이 지금까지의 수고와 앞으로의 무사를 기원하는 greeting을 보내주었다. 첫 호를 장식했던 소설가 천명관은 자칫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ADHD’, ‘문학’, ‘A.I’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Axt』가 달려온 지난 시간들을 어루만진다. 우주에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물꼬물, 뭔지도 모를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어떤 작은 존재”에 대한 경외를 덧붙이면서. 창간호의 ‘outro’를 써주었던 소설가 백가흠은 『Axt』의 처음을 되짚으며 그때의 그 비장함을 다시금 떠올린다. 잊고 있던 마음을 돌아보며 처음과 달라진 것과 여전히 같은 것들을 비교해본다.
◌ intro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서 불운합니다. 매번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운을 ‘불가항력의 불행, 바꿀 수 없는 패배, 되돌릴 수 없는 박탈’로 받아들인다면 생애를 향한 의지는 꺾이고 말 것입니다. 그보다 더 최악은 ‘내 불행이 내 탓이 아니니 나는 누구라도 나만큼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오류 가득한 메커니즘일 테고요.
컨베이어벨트가 연상되는 이 메커니즘의 반대편에는 어쩌면 문학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와 시인은 결국 타인을, 타인의 생애와 고통을 쓰는 사람들이니까요.”
―조해진, 「우리, 서로에게 애틋해지기를……」 중에서
『Axt』 50호의 intro에서 소설가 조해진은 가을의 문턱에서 지독했던 지난여름을 회고하며 독자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자비 없는 폭염과 함께 들끓는 땅과 바다, 얼마 전 감행된 오염수 방류, 매일같이 올라오던 범죄 뉴스들. 불운만이 가득한 여름에서 조해진은 문학의 의미를 곱씹으며 서로를 다독인다. 어쩌면 이러한 불운을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사랑하는 일뿐이라고, 그리고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문학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애틋한 독자들에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50번째 『Axt』를 보낸다.
◌ review * biography * hyper-essay
소설 읽기 좋은 계절, review에서는 김성중 정지돈 권혜영 강보원 김지승이 다섯 가지의 다른 매력을 가진 소설들을 소개한다. 이미 읽은 책이라면 한 번 더 곱씹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먼저 읽은 이들의 궤적을 따라가며 읽어보며 자신과 맞는 책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신진 작가들의 에세이를 수록하는 biography에는 올여름 첫 소설집을 출간한 두 소설가 박송아와 진하리의 이야기가 실렸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가족들과도 쉽게 접촉하지 못하는 일상을 지내게 된 박송아의 에세이와 친구에게 숨기던 비밀을 들켜버린 진하리의 에세이가 독자들을 기다린다. 소중한 사람에게 닿고 싶은 마음과 너무 소중해서 꽁꽁 숨기고 싶은 마음이 각각 담겨 있다. hyper-essay에서는 시인 김연덕의 세계에서 가만히 유영하던 세 가지 물질들을 다루는 산문이 있다. 피부, 고무, 천은 촉각으로 감각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인은 또 다른 감각으로 이들에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diary * insite
diary에는 제주에서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소설가 최진영의 일기가 실렸다. 제주의 일상 사이사이 스며든 문학. 그리고 야구에 대한 진심도 놓칠 수 없다. 자신을 믿는다는 단단한 말이 ‘안녕’이라는 마지막 문장을 마냥 슬프게 느껴지지 않게끔 한다. diary는 끝나지만 그 후에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그의 기록을 함께 봐온 독자들도 지독한 과거에만 매몰되지 말고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진잡지 『VOSTOK』와 함께하는 insite에는 편집장 박지수가 ‘시각화의 이야기’라고 표현한, 사진작가 서동신의 작품 〈Equation〉이 등장한다. 흔히 사진 작업에 이야기가 선행된다고 전제되지만 그의 작업은 이미지의 우연한 배열과 충동을 통해 이를 거부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진에서 하나의 서사를 찾기보다는 사진 자체가 주는 온전한 충격과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table * ing * colors
문학으로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글들도 준비되어 있다. 해외문학을 다듬고 만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table에서는 강렬한 표지와 제목으로 화제를 모았던 루시 쿡의 『암컷들』의 번역가 조은영, 편집자 정다이와 호기심 가득한 질문으로 더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 소설가 설재인이 모였다. 번역, 편집에서부터 표지까지, 자연의 수많은 ‘암컷들’에 대한 오해를 깨부수며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이 책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본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과학책은 다 어렵다’는 오해와 편견마저 깰 수 있는 좌담이 되리라 기대한다. 번역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ing에서는 벨 훅스의 『난 여자가 아닙니까?』를 번역한 번역가 노지양의 에세이가 실렸다. 평소 여성주의 책을 많이 번역하고 읽어온 번역가는 이번 기회를 통해 미국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벨 훅스를 독파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책을 통해 흑인 여성사의 깊은 이해는 물론 자신 주변의 여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그의 글을 통해 독자들도 더 넓은 인식의 지평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의 작품을 각자의 관점으로 읽어 내려가는 colors에서는 얼마 전 타계한 미국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읽어보았다. 과거 소설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며 『로드』의 문체와 형식을 원문과 번역본으로 비교한 평론가 손정수의 글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매카시의 또 다른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함께 그의 비관적 전망과 소설 속 여성적 존재를 분석하는 소설가 김종옥의 글이 나란히 놓였다. 서로 다른 색깔을 띤 글 두 편이 독자들에게 읽기의 즐거움을 더욱 극대화해주기를 기대해본다.
◌ short story * novel
이번 호 short story에는 소설가 백수린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백수린은 「호우豪雨」에서 주인공의 고요한 일상에 생기는 조그마한 균열을 담담히 관찰한다. 홀연히 사라진 할아버지와 친구의 아이가 키우던 토끼, 금세 시들어버리던 화분에 죽음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 달 내내 내리는 비는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묘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한편 장편소설이 연재되던 novel에서는 소설가 배수아의 「속삭임 우묵한 정원」 최종회가 수록되었다. ‘싸구려 음식을 먹는 자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과 얽힌 기묘한 기억들은 독자들을 또 다른 세계로 초대한다. 화자는 주연배우 대신 영화의 주요 장면에 출연하게 되며 이야기는 다층적으로 나아간다. 소설가 특유의 고유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작품이었으리라 생각하며, 촘촘히 소설을 따라 읽어준 독자들과 지금까지 연재해준 소설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까지 귓가에 속삭여진 말들을 놓치지 않고 읽어주길 바란다.
greeting
천명관 ADHD와 문학, 그리고 A.I・002
백가흠 악스트 했습니까?・008
intro
조해진 우리, 서로에게 애틋해지기를……・012
review
김성중 도리스 레싱 『앨프리드와 에밀리』・030
정지돈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밀레니엄 피플』・035
권혜영 마이조 오타로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사랑해』・039
강보원 김유림 『갱들의 어머니』・044
김지승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050
cover story
정이현+강화길 여자 없이 살 수 없는 여자들・056
biography
박송아 비-접촉 생활・098
진하리 당신의 비밀은 이렇게나 흥미롭네요・106
diary
최진영 무제 폴더 Ⅷ・114
hyper-essay
김연덕 해파리처럼 유영하며 세계와 접촉하는・128
insite
서동신 Equation・138
table 루시 쿡 『암컷들』
조은영+정다이+설재인 오해의 언어를 뛰어넘어・154
ing
노지양 흑인 여성사의 이해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188
colors 코맥 매카시 『로드』
손정수 삶에서 소설로 들어오는 길, 소설을 통해 삶으로 나가는 길・198
김종옥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나는가?・206
short story
백수린 호우豪雨・216
novel
배수아 속삭임 우묵한 정원(최종회)・232
outro
백다흠・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