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지의 두 여자

강영숙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3년 12월 31일 | ISBN 9791167373885

사양 변형판 135x205 · 232쪽 | 가격 16,8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이 땅에서 탄생하는 것과 이 땅에 묻는 것
우리가 탄생시키고 폐기하는 것들에 대한 소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가 강영숙 신작 장편소설

‘불안과 피로, 권태가 상존하는 비루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으며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소설가 강영숙의 신작 장편소설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신작은 인간의 고유성을 시험하는 재해와 같은 삶 속에서 사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핍진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도시 환경 미화를 담당하는 청소 용역이 버려진 한 아기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분지 지형인 북쪽도시 B시를 배경으로 아기를 가지려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도시와 인간의 생멸의 문제에 다층적으로 접근한다. ‘우리의 삶이 삶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징후’에 집중하며 이 소설을 집필하였다는 작가의 말을 증명하듯, 소설은 인간의 고유성이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가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실존이 놓여야 할 곳에 대한 묵직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가금류 살처분, 바이러스의 창궐, 갑작스러운 지진과 도처에 놓인 강력 사건. 소설은 우리를 둘러싼 재해의 현장을 낱낱이 보여준다. 재해 속에서 인간은 고유한 이야기를 잃고 단지 생존하거나 생존하지 못한 하나의 개체로 계산된다. 심지어 생명은 고유한 가치를 시험당하고 자신과 쓰레기 사이의 위치를 가늠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이 청소 용역인 민준의 손에 버려진 아이를 놓아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민준이 아이의 생명을 손에 들고 고민하는 하루의 시간, 있음의 시간도, 없음의 시간도 아닌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의 실존을 마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두 여자, 진영과 샤오가 마주한 세계 역시 재해와 같다. 강력 범죄로 딸을 잃은 진영은 생명을 다시 탄생시키는 일로 자신의 상실을 복원하려 한다. 한편 샤오는 경제적 이유로 대리모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과정상의 문제’들이 두 여자를 위협한다. 유전인자를 통해 계급이 매겨지고 그 속에서 개인의 상처나 고통은 묵살된다. 인간이라는 고유성을 탄생시키는 과정조차도 개인을 소외시키는 시스템 속에 존재한다면, 이런 세계에 우리는 인간의 고유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민준의 손에 맡겨진 아이는, 어쩌면 이 도시에 태어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도시의 청소부가 주운 버려진 아이, 그리고 두 여자
인간의 고유성을 시험하는 세계와의 사투

어느 새벽 서울시 동남권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는 청소 용역 오민준은 공원 조형물 뒤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다. 홀린 듯이 아기를 데려온 민준은 울지 않는 아기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만 곧 겁을 먹고 아이를 병원에 두고 도망친다.

그는 숨이 멎을 듯하다 겨우 한마디 토해낸다. “아기다.” 어두운 바닥에 놓여 있는 바구니 안에 흰 덩어리가 하나 있다. 그 덩어리를 감싼 흰 천은 고양이 발자국으로 더럽혀져 있다. “진짜 아기네.” 민준은 또 확인하듯 중얼거린다. 흰천에 싸인 채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작은 공만 한 아기의 얼굴이 보인다. 민준은 얼굴에서 땀이 떨어질까 뒤로 물러선다. 그때 수거차의 압력 장치를 작동시키는 기계음이 들린다. 쓰레기봉투를 차에 실어 올리기 시작한것이다. 빨리 수거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민준은 계속 중얼거리며 서 있다. “아, 겁나 하얗고 깨끗해!” 오민준은 어렵게 장갑을 벗어 바닥에 팽개친다. 그리고 맨손으로 바구니 안에 밀어 넣어둔 천 솔기를 잡고 천 한 가닥을 걷는다. 아기가 불빛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조금 돌린다. 오민준은 아기를 이렇게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다. “자는 건가.” 오민준은 아기를 보며 이상한 기분에 빠져든다. 이런 상황은 낯설다. 보는 사람은 없는지 민준은 순간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주 잠깐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바구니를 집어 든다. 그리고 공원 주변을 살펴본 뒤 자신의 집 쪽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본문 13~14쪽

한편 북쪽 도시 B에는 비밀리에 대리모를 의뢰자와 연결해주는 B클리닉이 있다. 여기에 두 여자가 있다. 대학교수인 진영은 얼마전 딸 윤재를 잃었다. 범죄로 추정되는 상황이지만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고통 속에서 진영은 타인을 위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면 이 고통이 덜어질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 결과 진영은 이타적 대리모가 되길 선택한다. 다른 한 여자는 샤오다. 이름 때문에 조선족으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그녀의 진짜 이름은 김희선. 한국인이다. 남편과의 불화로 딸을 버리고 집에서 나와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대리모가 되길 선택한다. 그녀는 딸을 위한 돈을 벌기 원한다.

진영은 달변가처럼 말한다. “나는 윤재가 죽은 후 과연 내가 했던 일 중에 무엇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나 생각해왔어. 그래도 가장 잘했던 게 윤재를 낳은 게 아닌가 싶어. 목숨을 걸 만큼 위험했고, 그만큼 보람도 있었어. 그래서 다시 해보려고. 그러면 고통이 좀 덜하지 않을까. 당신도 기억하지, 우리가 윤재를 낳았던 때 말이야.” 이규는 주먹을 쥐고 자기의 가슴팍을 때린다. 그런 식의 반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다고 윤재가 살아 돌아오나. 이규는 진영에게 고통이라는 단어를 빼앗긴다.
―본문 152~153쪽

모든 기계들이 샤오의 방으로 날라져 들어온다. 초음파로 자궁을 보고 폐 사진을 찍고 혈압과 맥박, 몸의 모든 기능을 검사한다. 아기를 한 명 낳기만 하면 한 큐에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것은 감상이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샤오의 일이다. 십 개월짜리 단기 직업이다.
―본문 195쪽

각자 다른 소망 속에서 잉태된 아기와 버려진 아기가 있다. 아기를 버린 사람은 누구일까. 진영과 샤오의 서로 다른 소망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한편 민준은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전화에 민준은 망설인다. 민준은 자신이 매일같이 만지던 쓰레기들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다버린 것들, 쓸모없고 대체되는 것들. 그리고 버려진 아기에 대해 생각한다.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안, 아기와 쓰레기는 얼마나 같고 달라지는가에 대해 민준은 고민한다. 과연 민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민준은 생각났다는 듯 한 손에 들린 아기 바구니를 내려다본다. 아기는 평화롭게 자고 있다. 민준은 여전히 아기 바구니를 그대로 들고 서 있다. 이곳에 버리고 갈 수도 있다. 많은 생활쓰레기와 동물 사체 들이 산처럼 쌓인 이곳에, 쓰레기 매립지에 아기를 버리고 가면 그만이다. 내 아기도 아니다. 아기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불길이 거세진다. 이곳에서는 쓰레기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불길이 치솟는 매립지에서 길 잃은 오리가 뒤뚱거리며 쓰레기 더미 위를 오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그로테스크하다. 민준의 두 손이 떨린다. 버려진 건 아기인데 왜 민준도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 걸까. 아기는 누가 버렸을까. 아기는 왜 버려졌을까. 그렇게 버려질 만큼 출생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있나. 완벽한 존재는 없다. 저 앞의 쓰레기 불길이 더 커지며 하늘로 치솟아 올라간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에 질식할 것 같다. 숨이 멎을 듯하다. 쓰레기 매립지 너머로 해가 넘어가려는 순간 민준은 아기 바구니를 한 번 더 내려다본다. 민준은 꿈에서 봤던, 책 표지에 새겨졌던 두 글자를 발치의 쓰레기에서 발견하고 읽는다. 바로 ‘Life’, ‘생명’이라는 글자다.
―본문 210~211쪽

 

“그런데 있잖아요. 우리가요,
우리가 애를 낳아 키운 건 잘한 일일까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소설은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자신의 상실을 새로운 탄생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진영은 ‘이타적 대리모’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으나 그녀가 마주하는 세계는 기저부터 이타적이지 않다. 대리모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건강과 나이, 출산 경험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인간을 구성하는 특징들이 유전자의 이름 아래 구획되고 점수가 매겨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대학교수인 진영이 대리 출산의 의뢰자인 희우에게 선택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에는 경제적 이유로 대리모가 된 샤오가 있다. 진영과는 반대편의 인생을 살아온 샤오에게 아이의 부모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안전하게 십 개월의 ‘일’을 끝마치고 돈을 받는 것이 샤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태반박리로 제왕절개 수술을 선택하게 되는 샤오는 자신의 신체를 지키기 위해 배 속의 아이가 내 아이라고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이 두 여성 사이에 민준이 등장한다. 민준은 버려진 아이를 줍는다. 민준이 도시의 청소 용역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추악을 마지막으로 처리하던 손에 한 생명이 얹어진 것이다.
도시는 무수한 것들을 탄생시키고 소멸시킨다. 매 순간 우리가 내던지는 쓰레기에서부터, 삼계탕 집에서 일하던 샤오가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살처분 현장에서 마주한 무수한 닭들은 물론, 종국에는 인간마저 삶의 외부로 밀려난다(진영은 서울에서 교수직을 구하기 어려워 B시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생명은 고유한 가치를 시험당한다. 이런 재해의 세계에서 우리는 안전한가? 민준의 손에 맡겨진 생명이 겪게 되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사이의 하루, 소설은 우리에게 그것과 씨름하기를 요청한다.

 

▣ 본문에서

지진이 난 후 모든 게 올 스톱된다. 거의 모든 시민들이 밖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길에 사람이 많다. 이 도시의 어디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나 싶다. 버스도 택시도 없어 모두 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진영은 온몸이 축 늘어진 채 길을 걷고 있다. 혼잣말을 하며 걷고 있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 한 팔을 내밀어 지나가는 진영에게 말을 시킨다. 진영도 재해 속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모두들 안전할까. (123쪽)

그러나 사실 요즘엔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더는 뭘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쓰레기가 돈이 된다는 것, 폐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도 옛날 말이다. 폐지 따위는 안 받는다 이제는. 킬로그램 당 600원이 넘던 폐지 가격이 이제는 30원에서 40원 수준이다. 수출도, 내수도 쓰레기는 이제 그만! 외국으로 수출한 쓰레기도 다시 돌려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다 더해 아기까지, 인간까지 버린다면. 다들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 걸까. (158쪽)

“그런데 있잖아요. 우리가요, 우리가 애를 낳아 키운 건 잘한 일일까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225쪽)

▣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쓰는 동안 한두 가지 질문을 내내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하나는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이 삶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징후의 발견이었다.

목차

▣ 차례
분지의 두 여자 7

작가의 말 227

작가 소개

강영숙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8월의 식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 하는 밤》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회색문헌》 《두고 온 것》, 장편소설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부림지구 벙커 X》를 펴냈다. 한
국일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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