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최민경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4년 5월 7일 | ISBN 9791167374011

사양 변형판 128x188 · 160쪽 | 가격 12,000원

시리즈 은행나무 노벨라 4 |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 은행나무 ‘노벨라’가 은행나무 ‘시리즈 N°’으로 새롭게 시작합니다.
2014년 론칭해 2016년까지 총 13권을 출간하고 잠시 멈춰 있던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가 새로운 명명과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시 출간됩니다. 배명훈 최진영 정세랑 안보윤 황현진 윤이형 문지혁 등 3~4백매 분량의 중편소설 시리즈로 한국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은행나무 노벨라’. 그 의미를 동력 삼아 현재 한국문학 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선 ‘시리즈 N°’으로 바통을 건네받아 이어갑니다. 이번 신작 3종(박문영, 장진영, 황모과)을 비롯해 구간 리커버(최진영 윤이형 황현진, 이하 순차적으로 리커버)를 동시에 출간하며 서이제 장희원 한정현 정용준 정지돈 등 각자의 개성과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문학에서 발견하는 그 위태롭고 무한한 좌표들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해갈 시도를 독자 여러분께서도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단단하게 닫힌 마음에 마리가 빛처럼 들이쳤다
관계의 시작과 끝이 서툰 당신을 위한 이야기

2008년 장편소설 《나는 할머니와 산다》로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고, 두 번째 장편 《십자매 기르기》를 출간하며, 소녀와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그리고 그들이 세상과 관계 맺기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최민경 작가의 중편소설 《마리의 사생활》이 《마리》로 개정되어 독자들을 찾아왔다. ‘어제와 어제의 어제가 같았던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자기 찾아온 ‘마리’ 때문에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 주인공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네 번째 권으로 포함되었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엄마와 나, 이렇게 둘만 외톨이로 남았다고 생각하던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마리 때문에 어리둥절하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전혀 교류가 없었던 마리의 방문은 하나에게 전혀 예고되지도, 증후가 발견되지도 않았던 사건이다. 게다가 자신의 어릴 적 친구는 못생기고 존재감 없던 ‘말희’였으나 지금 마리에게 말희의 외모는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신이 쓴 기억도 없는 편지 뭉치를 가지고 와 그녀의 친구였노라 증명하는 마리 때문에 하나는 잊고 있었던 자신의 예전 모습과 기억을 차차 길어올린다. 그렇게 마리는 엄마와 친구 상준으로부터 환대를 받고 하나의 생에 자리매김해 나간다. 단단하다고 여겼던 하나의 관계들은 마리로 인해 조금씩 균열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내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내겐 있었다. 누군가를 곁에 두는 일 따위, 생각만 해도 귀찮게 느껴졌다. 내 삶에 마리가 끼어들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그게 다였다. -본문 25쪽

 

떠나보낸 당신들이 내게는 모두 마리였다

만약 마리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하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가 예감했듯이 지금의 일을 계속하며 엄마와 함께 살고 자신을 좋아하는 상준과는 그럭저럭 친구로 만나며 살아갔을까? 지금 이대로의 삶이 평탄하게 이어지리라는 생각은 우리의 자조 섞인 기대에 불과하다. 하나의 삶이 그렇듯 우리의 삶은 언제나 무수히 침입하는 우연한 순간들에 의해서 굴러간다. 하나에게 마리는 생의 방향이 휘어지는 어느 한순간이었고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우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찰나를 더듬어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마리의 방문에 하나가 보인 반응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하나와 우리는, 새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일단 배척하고, 오해가 풀리면 받아들이고, 자기 것을 내어주다가도 이내 자신이 가진 전부를 뺏기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결국 마리를 떠나보낸다 하더라도 마리로 인해 틀어진 삶의 방향은 다시 수정되지 않고 또 다른 마리를 향해 하나를 이끌 것이다. 최민경 작가가 말하는 우리의 삶은 이렇게 이어져 나간다.

나도 곧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 그것이 나에게도 있으므로.
나는 그 편지에 네가 우리 집 창가에 두고 간 식물들의 키가 자라서 며칠 전에 분갈이를 해주었다고 쓴다. 네가 두고 간 디퓨저, 현관 앞에 매달아둔 자개로 만든 풍경, 벽에 붙여놓으면 창문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포스터도 그대로 있다고 쓴다.
그러고 나서야 미안했다고 적는다.
네가 가장 힘들 때 너를 외면해서.
그토록 용기가 없던 나를 그래도 네가 조금은 좋아해줘서 그 기억으로 나는 지금 여기 와 있는지도 모른다고 쓴다.
가까워지면 반드시 멀어질 거라는 믿음 때문에 너를 밀어내기만 했던 내게 끝까지 웃으며 인사해줘서 고마웠다고도 쓴다.
다음번에는 이런 이야기 말고 나를 울리거나 웃기던 여자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말하며 편지를 끝마치는 오후.
여자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자신이 쓴 글을 읽기
시작한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는 나도 용기를 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본문 153~154쪽

이전에 발표한 두 편의 장편소설처럼 최민경 작가는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 소설을 시작한다. “써놓고 보니 이번 소설도 죽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20대 초반의 개인적인 경험이 워낙 강렬했던 것 같다”라고 이에 대해 최민경 작가는 밝힌 바 있는데, 인간이 겪는 가장 흔한 죽음의 대리 체험인 친인척의 죽음 이후 작가는 어떤 이별들은 삶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이별의식을 치러낸 생의 모습은 그래서 가장 인간적이고 소설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두려움 위에 쌓아올린 삶은 비록 쉽게 허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인생의 한 곡면, 곡면은 하나가 상준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의 허름한 집 마당 한가운데 쏟아졌던 빛처럼 빛나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마치 돌멩이로 가득 찬 자루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그 집 마당에 들어선 순간, 환한 빛 무더기가 폭포수처럼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빛이었다.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일어서, 마당에 세워져 있던 빨래 지지대의 어느 한 부분을 손으로 붙잡았던 게 기억난다.
뭐랄까 그건,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낸 생의 비밀 같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잊힌 세계의 한 귀퉁이 같기도 한, 그렇게 꿈속 세상처럼 아득한 장소였다. -본문 49쪽

 

너는 내가 아니라서 나를 아프게 하고
나는 네가 아니라서 너를 아프게 한다

몇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와 나 둘, 빈집 같았던 우리 집에 어느 날 마리가 찾아왔다. 내 초등학교 동창은 ‘말희’였으나 그녀는 피나는 노력으로 ‘마리’가 되어 있었다. 유럽여행을 끝내고 막 한국에 왔다는 마리는 정말 친한 친구의 집에 온 것처럼 편하게 굴고, 과거 어릴 때 내가 보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편지들 때문에 마리가 여행을 떠날 용기를 얻었다며 나를 꼭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며칠 정도로 생각했던 마리의 체류는 점차 길어져서 집세를 함께 부담하기로 하고 엄마와 나, 마리가 함께 살기에 이른다. 집안일을 살뜰하게 챙기고 우울해하던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는 마리를 보면서 나는 마리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제 오랜 친구인 상준과의 사이에도 마리가 끼어들자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데……

너에게로 갈 수도 없고, 너에게로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속된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새로운 관계를 향해 마음을 여는 건 너로 인해 잊지 못할 어떤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따스하게 주고받은 격려의 말과 오로지 나에게로만 향하던 눈빛과 스치듯 만져지던 네 손의 체온이 또 다른 너에게로 걸어갈 힘을 주기 때문에. 그토록 수없이 많은 이해와 오해와 반목 사이로, 몇 개의 순간들이 떨어진 비늘조각처럼 남아 생의 선물처럼 반짝이고 있기에. – ‘작가의 말’에서

 

▣ 본문에서

“너를 좋아하고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내가 왜 모르겠는가. 십 년도 넘게 그 애를 보아왔는데. 내 앞에서만 잘 웃지 않고, 내 앞에서만 말수가 줄고, 내 앞에서만 속절없이 솔직해지는데…… 내가 왜 몰랐겠는가.
“모르고 있던 건 아니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싫은 거지? 너희 둘은 너무 닮았으니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상준의 집 마당에 서 있을 때 쏟아지던 햇볕을 감당할 자신이 없노라고. 그토록 뜨겁고 그토록 환한데도 어딘지 모르게 컴컴하게 느껴지던 그 빛을 잊을 수 없노라고. 웃고 있어도 슬퍼 보이는 그의 얼굴을 오래 마주할 자신이 내겐 없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본문 144-145쪽

 

▣ 개정판 작가의 말

어떤 사람이 좋으면 너무 좋다고 말해야지.
네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하다고 말해야지.
혼자라서 무서운 적은 없었는지
함께라서 더욱 외로운 적은 없었는지 조심스레 물어봐야지
이런 생각과 다짐들을 많이 해야지.

십 년 동안 나는 겨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게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4년 봄
최민경

목차

마리 007

개정판 작가의 말 155
작가의 말 158

작가 소개

최민경

197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06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와 2008년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나는 할머니와 산다》 《십자매 기르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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