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없는 보통 인간과 그의 시대에 관한 기록 카리브해 문학 대표 작가의 마술적인 시적 산문

미스터 포터

원제 Mr. Potter

지음 저메이카 킨케이드 | 옮김 김희진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4년 7월 25일 | ISBN 9791167374479

사양 변형판 130x190 · 204쪽 | 가격 16,800원

시리즈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7 | 분야 해외소설

책소개

목소리 없는 보통 인간과 그의 시대에 관한 기록
카리브해 문학 대표 작가의 마술적인 시적 산문

카리브해 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가장 중요한 영어권 현대 작가이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장편소설 《미스터 포터》가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제17권으로 출간되었다. 1983년 단편집 《강바닥에서(At the Bottom of the River)》를 발표하며 데뷔한 킨케이드는 장편소설, 단편소설, 논픽션의 장르를 넘나들며 제국주의, 탈식민주의, 젠더, 인종, 계급 등의 주제를 다루는 작품 활동을 활발히 이어왔다.
《미스터 포터》는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앤티가섬에서 택시 운전사로 평생을 보낸, 읽을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는 남자 포터 씨의 이야기를 출생부터 죽음까지 다루지만, 포터 씨라는 인물의 삶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전통적인 형식의 전기적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살아생전의 그를 전혀 알지 못했던 딸이 그의 죽음 이후 앤티가섬으로 돌아와 되짚는 그의 삶은 원망과 연민, 서글픔이 뒤섞인 화자의 담담한 시선을 통해 보인다. 눈앞의 세상 너머의 것은 인식하지 못했던 포터 씨와 달리 화자는 그의 평범한 일상 아래 도사리는 거대한 역사의 그림자까지 꿰뚫으며, 포터 씨의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까지 길게 드리운 그림자로 인해 생겨난 명과 암을 읽는다.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의 앤티가섬과 그 속에 사는 보통 인간들의 실존을 킨케이드는 최면을 거는 듯한 순환적이고 아름다운 시적 산문으로 그려낸다. 모든 문장이 찬란하고도 잔혹한 진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희석되지 않은 원액과도 같다.

“이 이야기는 내 아버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에는 그의 삶이 담겨 있다. 첫 장편소설 《애니 존》부터 《루시》와 《내 어머니의 자서전》 그리고 《미스터 포터》까지, 모든 소설에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으며 특히 앤티가섬과 가족의 이야기가 깊숙이 자리한다. 앞의 세 소설이 어머니와 딸의 관계와 작가 자신의 경험을 천착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미스터 포터》는 작가의 삶 속에 부재로 남아 있던 친아버지의 존재에서 출발한다.
소설은 앤티가섬에서 택시 운전사로 살았던 포터 씨의 삶을 그의 딸 일레인 신시아 포터가 돌이키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포터 씨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며, 자신이 사는 세상의 작은 한구석 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레바논 출신 상인의 아들이자 포터 씨의 고용주인 슐 씨 그리고 쫓겨나듯 고향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전 세계를 떠돌다 앤티가섬에 정착했으며 포터 씨가 택시 승객으로 만나게 되는 바이쳉거 박사는 포터 씨가 사는 작은 섬 밖의 세상, 제2차세계대전에 의해 개인과 가족과 국가가 갈가리 찢기고 폭력과 혼란이 만연한 세상을 암시하지만 포터 씨는 그에 완전히 무지하며, 알고 싶다는 의지나 알아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다. 그는 같은 옷을 매일 차려입고 택시를 운전하여 그가 잘 아는 섬의 이곳저곳으로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일, 방 한 칸에 불과한 작은 집에 사는 여러 애인들을 찾아가는 일이 반복되는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 만족한다. 그는 여러 여자들과 애정을 나누지만, 애인들도, 그들에게서 얻은 딸들도 부양할 생각이 없다. 화자는 바로 그 여러 딸들, 포터 씨 소생이지만 그가 책임질 생각도 없고 인정하지도 않는 딸들 중 한 명이고, 포터 씨가 무지로써 철저히 외면했던 바깥세상을 경험한 인물이며, 포터 씨의 딸들 중 유일하게 읽고 쓸 줄 알고 그렇기에 유일하게 이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는 인물이다.
화자의 이름 일레인 신시아 포터는 작가의 출생 당시 본명이었으며, 화자와 작가는 생년월일이 같고 저메이카 킨케이드와 마찬가지로 화자 또한 개명을 한다. 화자와 작가의 부모님의 이름과 생년월일 또한 일치한다. 이처럼 《미스터 포터》를 이루는 요소들은 작가의 실제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으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을 문자 그대로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이야기면서도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을 즈음,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친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단 한 번도 아버지 역할을 해준 적 없는 모르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그의 아버지임을 주장한 것이다. 작가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그와 소통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가 늘 증오했던 그 남자에 관한 소설을 썼다. 오로지 포터 씨의 출생증명서와 사망진단서, 그의 아버지의 출생증명서, 그리고 포터 씨가 택시 운전사였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쓴 이 글은 허구의 창작물일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그에게서 출발한 것은 맞지만 포터 씨라는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2002년, 《미스터 포터》가 출간된 이후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전적으로 아버지에 관한 책이 아니며, 심지어 아버지에 관한 책이 전혀 아니고 나에 관한 책도 아닙니다. 이것은 내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고, 그는 자식들을 두었으며 그중 한 명이 나와 정확히 같은 이름을 가진 것입니다. 나는 그런 남자를 둘러싼 특정 문제들에 대해 쓰고 싶었지요. 그는 서인도제도, 특히 앤티가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남자입니다. (…) 이 이야기는 내 아버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_CBC 라디오 인터뷰 중

이 소설은 포터 씨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를 바라보는 작가의 이야기이고, 특정 인물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에 관한 이야기면서 개인이 아닌 시대와 역사,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록되지 않은,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은
무명의 삶을 글로써 호명하기

《미스터 포터》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언제나 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고, 나는 언제나 더 큰 세상, 이곳 밖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 소설을 개인의 차원에서 보자면, 애인과 자식들을 부양하지 않은 무책임한 아버지의 존재를 부재로서만 인식하던 딸이 그의 죽음 이후 오래전에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가 그의 흔적을 되짚는 내면의 여정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에 불쑥불쑥 침범하는 것은 그보다 크고 복잡한 세상의 그림자다.
포터 씨가 보이는 놀라울 정도의 무정함은 그라는 인물의 개인적 성격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의해 빚어진 결함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강제이민당한 그의 조상들은 노예였기에 온전한 가정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았고, 소속감을 박탈당한 채 적법하지 못한 사생아로 대를 이어왔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존재를 전혀 책임지지 않았고 따라서 그 또한 그에게서 이어져 내려가는 역사, 자식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를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으나,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그는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그는 과거도 미래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순간순간마다 인식할 수 있는 현재의 감각들 속에서만 살아간다. 그렇기에 그가 존재하기를 멈추면 그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채 그가 살았던 세상과 함께 사라져버리는데, 그렇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흘러가버렸을 그의 존재를 역사에 남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무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죽는 날까지 (…) 아예 존재하지 않음을 확실히 못 박았”던, 읽을 줄 알고 쓸 줄 아는 그의 딸이다. 화자의 어머니는 “포터 씨를 겨냥한 단검과 같은 것”으로 딸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 화자 또한 그 의도에 맞게 죽은 포터 씨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을 알고 그의 인생을 마음대로 상상하여 그려내며 일종의 복수를 하는 듯도 보인다. 그러나 끝없이 “포터 씨”를 부르고 그의 삶을 쓰는 이 행위는 실상 그를 무의 존재에서 유의 존재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의도가 어떠했든 화자는 “포터 씨와 그의 조상들이 잠겨 있었던 어둠”에 자신의 말들로 빛을 비추어 텅 빈 공백으로 여겨졌던 그 어둠 속에 존재했던 것들을 드러낸 셈이다. 또한 화자는 그가 자식들에게 물려준 유산인,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에만 국한된 존재로서의 삶과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무능력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며 그 굴레를 끊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어제를 없었던 일로 생각하게 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에는 관심 없다”고 했던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말과 겹쳐진다. 따라서 《미스터 포터》는 포터 씨와 일레인 신시아 포터라는 개인을 재창조한 것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지워져온 카리브해의 어제를 살려내려는 시도이며, 내일은 더 이상 무심하고 무자비한 햇빛이 내리쬐는 텅 빈 공동(空洞)이 아닐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예고이다.

■ 추천의 말

그 어느 작품보다도 최면을 거는 듯 마술적인 산문. _퍼블리셔스위클리

킨케이드의 가장 시적이고 감동적인 소설. _워싱턴포스트

차가운 목소리가 특징인 킨케이드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폐쇄적이고 외로운 낙원의 목소리 없는 주민들의 절망과 체념을 전하는 이 소설은 비통하며, 거의 따뜻하다. 매혹적이다. _뉴욕리뷰오브북스

목차

미스터 포터 • 9

옮긴이의 말 • 195

작가 소개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1949년 5월 25일, 서인도제도 앤티가섬의 수도 세인트존스에서 도미니카 출신의 어머니 애니 리처드슨과 친아버지로 알려진 로더릭 포터 사이에서 일레인 포터 리처드슨으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보내져 일을 하기 시작했으며, 20년 뒤 앤티가섬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가족과 절연한 채 지냈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가 잡지에 글을 쓰며 이름을 알렸다. 1973년, 원래의 자신은 쓸 수 없었던 글을 쓰기 위해 ‘저메이카 킨케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단편집 《강바닥에서(At the Bottom of the River)》를 출간하며 데뷔했다. 1985년에 자전적 경험을 담은 첫 장편소설 《애니 존》을, 이후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천착한 《루시》(1990)와 《내 어머니의 자서전》(1996)을 발표했고, 2002년에는 아버지와 앤티가섬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미스터 포터》를 출간했다. 애니스필드울프상, 페미나상을 비롯하여 인류 역사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 수여하는 댄데이브상, 파리리뷰 하다다상을 수상하고 영국왕립문학학회의 국제 작가로 선정되어 카리브해 문학 대표 작가이자 가장 중요한 영어권 현대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김희진 옮김

성균관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출판·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의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내 어머니의 자서전》 《찬란한 종착역》 《시간의 밤》 《송라인》 등의 소설을 비롯해 다수의 그래픽노블과 예술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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