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역설

지음 김준혁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4년 12월 12일 | ISBN 9791167375155

사양 변형판 140x210 · 404쪽 | 가격 22,000원

분야 인문

책소개

모두 함께, 좋은 돌봄을, 이 자리에서
저마다 돌봄의 공백을 한탄하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함께-돌봄의 사회로 나아가는 돌봄윤리를 제안하다

 

요양·보호시설에 갇힌 노인과 장애인 돌봄,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초저출생 사회, 돌봄의 손길이 부족하여 인공지능과 돌봄 로봇의 가능성에 매달리는 현재를 누구나 ‘돌봄 위기 사회’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자기 돌봄’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사회적으로 취약한 아이와 노인뿐 아니라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고 호소하지만, 그 가치를 온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이라는 짐은 누구도 짊어지지 않으려 한다.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된 김준혁 교수의 신간 《돌봄의 역설》은 ‘누구나 돌봄을 원하지만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을 분석하고,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함께-돌봄’ 사회로 나아가는 돌봄윤리를 제시한다.
돌봄의 위기를 짚은 기존의 책들이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 구조를 재구성하는 거시적 해결책을 모색했다면, 의료윤리학자인 저자는 돌봄의 지위를 복원하고 돌봄윤리를 돌봄 사회의 근간으로 내세운다. 돌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는 필리핀 돌봄노동자 도입, 늘봄학교 연장 정책과 같이 ‘돌봄이 많이 주어지기만 하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착각이 생겨난다. 그러나 취약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돌봄의 막중한 짐을 맡기면 돌봄의 질은 떨어지고, 결국 그들만으로는 돌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돌봄의 공백은 오히려 거대해진다. 대신 저자는 성별·사회적 지위·경제 수준 등을 막론하고 모두가 삶에 돌봄을 들여야만, 돌봄의 위기가 해소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개인이 더이상 자신의 ‘돌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실천할 때, 돌봄은 돌보는 이와 보살핌받는 이를 넘어 사회 전체를 순환한다. 삶에서 ‘좋은 돌봄’을 고민하고 수행하는 개인들이 돌봄 사회의 근간이며,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이들을 지탱하고 연결하는 것이 공동체, 지역사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돌봄윤리란 곧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좋은 돌봄을 수행하라’라는 하나의 선언이며, 돌봄의 위기라는 거대한 사회 문제 앞에 선 개인에게 실천적 지침을 제공한다.

 

 

돌봄은 관계 맺음에서 출발해 피어남을 지향한다
-‘삶의 보존에서 서로의 생()을 지탱하는 좋은 돌봄으로

돌봄이 주어지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 혹은 착오는 단순한 돌봄의 공급을, 노인을 돌보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돌봄 위기의 대안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돌봄의 역할을 ‘삶의 보존’으로 축소하고 돌봄을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것이다. 당장 돌봄이 필요한 이들의 신체적 필요는 충족할 수 있겠지만, 자칫 돌봄의 지향점이 로봇과 인공지능의 감시 아래 생을 연명하는 시설 사회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지향이 아니라면, 돌봄의 목표를, 곧 ‘좋은 돌봄’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모든 돌봄은 관계 맺음에서 시작한다. 돌보는 이와 보살핌받는 이는 돌봄이라는 실천으로 맺어지며, 이때 우리는 돌보는 이의 관점(혹은 ‘공급’의 관점)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다. 즉, 돌봄은 부모가 아이에게, 요양 보호사가 노인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며 어떻게 보살필지 선택하는 것 또한 돌보는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봄을 일방통행으로 바라볼 때, 돌보는 이가 돌봄으로 얻게 되는 타인과 자신의 삶에 대한 깨달음, 보살핌받는 이와 나누는 애정이나 함께한 추억, 돌봄의 과정에서 피어난 유대감 등은 간과되고 보살핌받는 이의 관점은 지워질 수 있다. 이처럼 돌봄 관계에서는 일종의 ‘교환’이 일어나는데, 이에 주목할 때 돌봄은 타인을 위한 헌신이 아닌 서로의 생을 지탱하는 연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돌봄은 깨끗한 옷을 입고 양질의 음식을 먹고 충분히 자는 것 등 타인의 신체적 필요를 일방적으로 채워주는 것을 넘어서서, 보살핌받는 이의 욕구를 들여다보며 그의 재능과 가능성, 꿈과 노력이 꽃피도록 돕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단순한 ‘삶의 보존’이 아닌 서로의 ‘피어나는 삶’을 위한 돌봄의 자리가 생긴다. 이때 돌봄의 효율적인 ‘공급’ 아래 시설로 귀결되는 노인 돌봄에서, 약자에게 전가되는 ‘독박 돌봄’에서, 입시를 위한 획일화된 양육에서 벗어난 ‘좋은 돌봄’의 가능성이 열린다.

 

돌봄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차릴 때 시작된다
-돌보는 이와 보살핌받는 이가 뒤섞이는 민감한 돌봄

보살핌받는 이를 피어나게 하는 섬세한 돌봄은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이가 ‘공감’을 답으로 내놓았지만, 저자는 대신 ‘민감함’을 강조한다. 돌봄은 배고픔과 불편을 호소하는 아이의 울음을, 고통에 시달리는 일그러진 얼굴을 알아차릴 때 시작된다. 이때 출발점은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일지도 모르나, 타인의 아픔과 나의 아픔을 맞대어보는 공감은 나와 타인의 공통점에 매몰되어 상대를 위한 돌봄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대신 돌봄에는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아픔을, 고통과 아픔을 얼마나 겪고 있는지 예민하게 살피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민감함’이다.
이러한 민감함은 돌보는 이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돌보면서 보살핌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한편으로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이기도 하다. 요양시설의 노인은 보살핌받는 동시에 같이 생활하는 노인들을 돌본다. 돌봄 노동자 역시 누군가의 보살핌 아래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는 돌봄 속에서 뒤섞이기에, 언제나 나와 다른 삶을 헤아릴 수 있는 민감함이 필요하다.
민감함의 부족으로 돌봄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는 의료다. 전문화와 과학화를 거친 의료는 환자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대신 진료 방침에 맞는 치료만을 제공하였고, ‘의학’에 포함되지 못한 돌봄을 배제했다. 그러나 우리가 병원을 찾으면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증상에 따른 의료 행위가 아니라 질환을 마주한 ‘나’의 삶을 살펴보는 진료다. 의료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돌봄 서비스의 수요자’가 아닌 ‘나’를 돌보는 손길을 원하고, 이는 ‘민감한 돌봄’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생은 돌봄에서 출발하여, 돌봄으로 맺어진다
모두가 돌봄 책임을 다하는, 지속가능한 함께-돌봄의 사회로

아이가 태어나려면 먼저 아이를 돌볼 사람이, 돌봄을 가능하게 만드는 환경이 있어야 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의 고통을 덜어줄 도움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말은 동시에 누구나 타인을 돌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보살핌받는 이를 피어나게 하는, 타인의 삶을 민감하게 살피는 ‘좋은 돌봄’을 실천하려면 타인 역시 나를 돌볼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자신을 희생해 돌봄을 실천하는 건 지속가능할 리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돌봄이 순환할 수 있는 사회 구조다.
저자는 ‘보살핌받는 이-돌봄 노동자-지역사회-정부’로 이어지는 돌봄의 순환 구조를 제시한다. 정부는 보살핌받는 이, 곧 개별 시민들의 역량으로 운영되기에, 어떤 주체도 돌봄을 일방적으로 떠안지 않고 소외당하지 않는다. 여기서 논의는 다시 돌봄 책임을 수행하는 개인으로 돌아온다. 돌봄이 순환하는 사회와 돌봄 책임을 다하는 시민이 동시에 존재할 때에만, 지속가능한 ‘함께-돌봄’의 사회는 가능하다. 그래서 돌봄의 위기라는 거창한 문제를 분석하며 시작한 저자는 다소 소박한, 하지만 선명한 결론을 남긴다. ‘우리 함께, 지금부터 돌봄에 참여하지 않으시겠어요.’ 돌봄의 역설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지금 돌보는 나와 여러분이라고.

 

★추천사

저자는 의료윤리학자로서 양육, 교육, 요양, 그리고 의료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다양한 영역을 횡단하고 연결하며, 오늘날 돌봄의 핵심 문제들을 남다른 철학적 깊이와 인문학적 통찰로 분석하고 이를 넘어설 돌봄의 윤리를 제안한다. 이 책은 돌봄이 단지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보살피는 일에,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는 ‘노동’에 머물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가 말하는 돌봄은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의지적 실천이자 개인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민감한 보살핌이며, 노인 돌봄과 조력사망, 양육과 부모됨, 공교육과 학교폭력, 장애와 ‘치료’, 동성애자 커플의 출산 등 첨예한 돌봄의 문제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_이현정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외로움의 모양저자

 

목차

들어가기 전에 왜 돌봄에 관해 이야기하는가
들어가며 모두가 모두를 돌보기 위하여

1장 돌봄은 서로 교환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
돌봄의 기쁨과 슬픔
누가 돌보아야 하는가
돌봄의 대가와 진정한 돌봄
서로의 생을 지탱하는 돌봄의 가능성
돌봄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인간의 기본적 조건으로서의 돌봄

2장 돌봄은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것이다
돌봄은 하나의 능력이다
돌봄 이야기, 치매 앞에서 의료를 바꾸다
어떤 죽음은 돌봄이라 할 수 있을까
누가 더 아프냐고 묻기 전에
아이를 환대하는 사회란
대화의 윤리: 나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3장 돌봄은 보살핌받는 이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돌봄,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인
장애의 도전 앞에 서는 일
망가진 것들의 애도, 새로운 것들의 피어남
돌보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예정된 죽음 앞의 돌봄
자율성을 존중하는 돌봄은 가능한가

4장 돌봄은 피어나게 한다
타인을 피어나게 한다는 것
다음 세대의 피어남을 위하여
고통을 함께 상대해야 하는 이유
우영우에겐 장애가 없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돌봄을 대신할 수 있는가
행복한 삶과 피어나는 삶

5장 돌봄은 구조 속에서 순환한다
여기엔 왜 돌봄이 없는가
죽음 돌보기와 돌봄의 순환 구조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할 수 있는 이유
파괴를 감내하고 견디는 것의 존엄함
타인의 삶으로 건너간다는 것

6장 나는 돌보며 돌봄받는다
돌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돌봄을 받는 마음에 관하여
민감한 돌봄

나가며 함께, 좋은 돌봄을, 모든 곳에서
참고문헌

작가 소개

김준혁 지음

의료인문학자, 의료윤리학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소아치과 전문의로 일하다가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의료인문학과 의료윤리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는 생명의료윤리와 의료인문학의 고민이 모든 사람이 함께할 때만 의미가 있음을 설명하고 그 가능성을 연구해왔다. 2022년부터는 돌봄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연구, 번역, 집필, 강의를 이어왔다. 〈한겨레〉에 칼럼 ‘의학과 서사’를 연재하고 있다.

《아픔에도 우선순위가 있나요?》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등을 썼고, 《의존을 배우다》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의료윤리》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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