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소설 장르에서 시의적절한 걸작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원제 Om udregning af rumfang II

지음 솔베이 발레 | 옮김 손화수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6년 6월 30일 | ISBN 9791167376596

사양 변형판 125x197 · 284쪽 | 가격 17,000원

분야 해외소설

수상/선정 2025 국제부커상 최종후보, 2022 북유럽의회문학상 수상, 2025 퍼블리셔스위클리 최고의 책 50, 2025 옵저버 올해의 책, 2025 가디언 올해의 번역소설, 2024 워싱턴포스트 주목할 만한 책 50, 2024 뉴요커 최고의 책, 2024 전미도서상 번역상 후보

책소개

2025 국제부커상 최종후보 · 2022 북유럽의회문학상 수상
“사변소설 장르에서 시의적절한 걸작을 선보였다”

2025 〈퍼블리셔스위클리〉 최고의 책 50 · 〈옵저버〉 올해의 책 · 〈가디언〉 올해의 번역소설
2024 〈워싱턴포스트〉 주목할 만한 책 50 · 〈뉴요커〉 최고의 책 · 전미도서상 번역상 후보

“설명할 수 없이 같은 하루에 갇힌 주인공이라는 익숙한 서사적 비유를
사랑과 연결성, 존재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명상으로 바꾸어놓았다.”
_2025 국제부커상 심사평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충격적 결말.”
_〈모르겐블라데〉

2025년 국제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몰고 온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2》(이하 《부피의 계산》)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됐다. 1990년대 덴마크 문학의 걸작 《법에 따르면》의 작가 솔베이 발레가 30여 년 만에 세계문학계로의 복귀를 알린 7부작 소설 연작의 서막을 여는 첫 두 권이다. “사변소설(SF) 장르에 있어서 시의적절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22년 북유럽의회문학상(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을 수상했다.
꼼꼼하게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사색적인, 다양한 길이의 일기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 같은 설정(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가 개봉하기 6년 전인 1987년에 처음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주장했다)을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스릴러로 승화시킨다. 우리 세계와 기묘하게 닮은 대체 우주의 규칙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타라 셀테르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의 틈새로 떨어져, 매일 아침 11월 18일에 눈을 뜬다. 이제는 일, 주, 월,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다. 더는 11월 19일에 눈을 뜰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며, 11월 17일을 어제 일로 기억하지도 않는다. 소설은 타라가 겪는 고립감, 혼란, 불안, 지루함, 희망 등 다양한 감정을 간결하고 중립적인 어조로 매끄럽게 전달한다. 작가 특유의 가차 없는 일관성, 간결한 기괴함, 건조한 강렬함이 독창적이고 아름답다.
작가는 최면에 걸린 듯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재구성하는 데 능숙하며, 흥미로운 시간의 주름을 만들어낸다. 시간과 그 불운하고 필멸적인 주제에 매혹적이고 마법 같은 새로운 차원이 부여되기에, 책 속의 미세한 움직임, 스릴 넘치는 전환, 재치 있는 아이러니, 느린 시간에 빠져들면 독자는 그 마법에 완전히 취하게 될 것이다.

“나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괴물이고,
내 세계를 먹어치우고 있다는 것을”
영원한 현재에의 탐험과 세계의 유한함과의 대면

1부 말미에서 타라는 어쩌면 1년이 지나면, 즉 366번째 11월 18일을 살아내면 차이와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지만, 2부는 역시 368번째 11월 18일로 시작한다. 1년이 흘렀어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처한 타라는 북프랑스의 늦가을, 비가 오락가락하는 춥고 회색빛인 11월 18일에 갇혀 지내는 것에 지쳐가고, 겨울과 봄, 여름 등의 계절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유럽을 돌아다니며 날씨가 여름이나 겨울처럼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해 계절을 흉내 낼 수 있다면 더 이상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그녀는 얼마 전 콘월에서 휴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가을 날씨가 너무 따뜻해 농가의 양들이 본래 봄에 낳아야 할 새끼 양들을 한가을에 낳았고, 들판에는 갓 태어난 새끼 양들로 가득해 거의 봄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말했다. (…) 그녀는 북유럽 사람들이 전형적인 여름 날씨라고 여기는 조건을 갖춘 몇몇 장소들을 찾아두었는데, 그 조건은 맑은 햇빛에 제법 따뜻한 기온, 드문드문 떠 있는 구름, 그리고 약 19도 정도의 수온이라고 했다. 그녀는 스페인 남부의 몇몇 지역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_112~113면

타라는 먼저 덴마크와 노르웨이 북쪽으로 여행하며 서늘한 아침과 서리, 눈을 찾아 자신만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그 후 남부 잉글랜드로 이동해 봄의 기운을 느끼고, 여름 같은 스페인을 거쳐 다시 중부 유럽의 서늘한 가을 같은 날들로 향한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계절 속에 자신을 고립시키면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나는 계절의 수첩에 적어둔 겨울과 봄과 여름을 읽는다. 나는 9월을 적으며 생각한다. 하얀 겨울의 거짓말들과 모든 색채, 봄의 초록빛 거짓말들, 밤의 짙은 푸른색을 띤 여름의 거짓말들, 8월의 주황빛 아침 거짓말들, 갈색과 붉은색과 회색의 모든 것. 그러나 이제 나의 거짓말들은 점점 더 옅어진다. 그것들은 연회색과 흰색, 거의 사라질 듯 희미한 색이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투명해진다. _190~191면

그러던 중 계절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적어놓은 계절의 수첩을 도둑맞으면서 타라는 11월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11월 18일에 깨어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계절이 없는 시간, 요일도 달도 없는 시간, 명절도 휴일도 공휴일도 없는 시간, 달력도 연도도 없는 시간 속에서. 이것은 만성적인 상태이며,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거리를 걷는다. 나는 11월 속에 있다. 나는 나의 계절들을 잃었다. 안녕히, 계절들이여. 11월, 안녕. _212면

마침내 계절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한 도시의 아파트를 세내어 정착한 뒤(집주인은 이 세입자를 잊었지만), 타라는 첫 번째 11월 18일부터 함께했으며 한자리에 놓인 채 움직이지 못하는 로마 동전 세스테르티우스와 제국의 팽창을 갑자기 멈추었던 로마인들과 11월 18일에 갇힌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사실 로마 제국은 스스로에 만족해버린 문화가 자연을 약탈하는 우리 시대의 거울이다. 1부에서부터 이어지는 세계관이다.)

로마인들도 멈추었다. 그들은 긴 여정 끝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경계에 이르렀고, 조금 앞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뒤로 물러섰으며, 마침내 멈춰 서서 벽을 쌓았다. 제국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제자리에서의 망설임. 정지. 고정. 땡. (…) 나는 11월 18일에 앉아 있었고,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땡. 멈춤. 같은 이야기. 동전이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까? 별로 그렇지 않다. 로마인들의 국경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동전. 로마 제국. 타라. 정지. 고정. 땡. 우리는 같은 부류였다. _245~246면

1부와 2부로 진행해가면서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가 가진 함의를 실시간으로 탐구하고 있는, 즉 이야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제한함으로써 무엇을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 발견해나가는 모습이 느껴지는 가운데, 2부의 말미에서 소설은 타라의 이야기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암시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충격적 결말”(〈모르겐블라데〉)을 보여준다.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고 혹은 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하면 안 된다. 지금 시각은 8시 45분. 나는 묄러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 할 말은 너무 많은데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_282면

작가 소개

솔베이 발레 지음

1986년 《금조》로 데뷔한 후, 1990년대 덴마크 문학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 중 하나인 《법에 따르면: 인류의 네 가지 이야기》를 발표했다. “교묘한 유머, 암울한 비전, 부조리한 것에 대한 무서운 감각과 세상에 아직 파악되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암묵적인 직관”(〈퍼블리셔스위클리〉)이 조화를 이룬다는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10개국 이상에서 출간됐다.
그 후 작은 섬 아뢰로 이주하여 예술 이론서 《예술론》(2005), 정치 회고록 《프뤼덴달》(2008)을 발표했다. 2013년에는 두 권의 단편 산문집 《만약》과 《그래서》를 동시에 출간하고, 출판사 펠라그라프를 설립했다.
2020년, 7부작으로 계획된 장편소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부를 출판하면서 세계문학계로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현재 5부까지 덴마크어로 출판됐으며, 26여 개국에서 번역이 진행 중이다. 2022년 권위 있는 스칸디나비아 문학상인 북유럽의회문학상을 수상했다. 영역본이 출간되면서 2024년 〈뉴요커〉 최고의 책, 〈워싱턴포스트〉 주목할 만한 책, 전미도서상 번역상 후보에 올랐으며, 2025년에는 국제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손화수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98년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2001년부터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문학 번역을 시작했다. 2012년과 2014년에 노르웨이문학번역원(NORLA)에서 수여하는 번역가상을 받았고, 2019년 한·노 수교 60주년을 즈음하여 노르웨이 왕실에서 수여하는 감사장을 받았으며, 2021년과 2022년에는 노르웨이예술위원회에서 수여하는 노르웨이국가예술인장학금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I-II》 《바임》, 요슈타인 가아더의 《밤의 유서》, 마야 리 랑그바드의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시리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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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서평
‘사랑의 블랙홀’은 잊어라···시간이 ‘부피’로 쌓이는 기묘한 타임루프
타라는 프랑스의 조용한 마을에서 남편 토마스와 고서적상을 운영한다. 11월17일 2박3일 일정으로 출장을 떠난다. 보르도 경매장을 방문해 책을 구매하고 파리 호텔에서 묵는다. 18일엔 파리 고서점들을 들르고 지인들도 만난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11월19일 아침, 그는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손에 든 조간신문의 날짜는 여전히 11월18일이고 어제 보았던 투숙객은 전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빵을 떨어뜨린다. 전날 만났던 지인들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늘이 11월18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반복되는 11월18일에 갇혀버린다.

덴마크 작가 솔베이 발레의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는 주인공이 매일 같은 날을 반복하는 ‘타임 루프’ 소재의 이야기다. 작가는 1987년에 처음 이런 설정을 고안했지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 묵혀두었다가 2020년이 돼서야 총 7권의 시리즈로 출간을 시작한다.

같은 날을 반복해서 산다는 설정에 199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다. 영화는 까칠한 기상통보관 필 코너스(빌 머리)가 매년 2월2일 개최되는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를 반복해서 살아가며 타인에 대한 인정과 사랑을 깨닫는 로맨틱 코미디다. 타임 루프라는 소재를 재밌고 따뜻하게 구현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발레 역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거론하며 훌륭한 작품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세부 설정으로 들어가면 영화와 소설은 차이점이 있다. 영화에서 필은 항상 같은 곳에서 깨어나며 자살 시도를 해도 죽지 않는다. 소설에서 타라는 반복되는 시간에 갇혀 있지만 공간은 이동할 수 있다. 타라는 파리를 떠나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당황한 남편과 11월18일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보지만, 하루가 지나면 남편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영화에서 필이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과의 유대 방법을 알아가는 것과 달리, 소설에서 타라는 점점 고독해진다.

같은 날이 반복되지만 타라를 둘러싼 변화는 누적된다. 첫 11월18일에 생겼던 상처는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아문다. 머리카락도 자라고 손톱도 자란다. 첫 11월18일에 샀던 물건 일부는 이후 사라지지만 일부 물건은 그 곁에 그대로 남는다. 무엇보다 그가 소비한 것은 사라진다. 남편이 마트에서 산 음식은 다음 11월18일이 시작되면 다시 마트에 진열되지만, 그가 먹은 음식은 그대로 사라진다. 타라는 “토마스는 저절로 수선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흔적을 남기는 것은 나다. 나는 이 한정된 세계를 갉아먹는 존재, 하나의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느낀다.

소설은 타라가 써가는 일기처럼 구성돼 있다. 그는 첫 11월18일로부터 날짜를 세어가며 반복되는 날을 ‘#1’ ‘#2’ ‘#3’ 순으로 구분한다. 이때 타라에게 시간은 선형으로 흐르지 않고 부피로 누적된다. 1권에서는 타라가 느끼는 당황과 고독이 섬세하게 다뤄진다. 어느덧 ‘#365’를 맞고 1년이 지났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2권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2권에서 타라는 변화를 찾아 나선다. 유럽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계절을 경험한다. 마치 시간이 흐르는 듯한 변화를 공간의 이동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타라의 11월18일은 누적돼 ‘#1000’을 넘긴다. 타라는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여전히 공허하기도 하다. 그와 함께 남는 것은 그가 소비하고 난 쓰레기들뿐이다. 그리고 2권의 마지막, 소설은 어쩌면 타라처럼 시간에 갇힌 이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건넨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시리즈는 현재 덴마크에서 6권까지 나왔고 영미권에는 4권까지 번역 출간됐다. 1권은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올랐고,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3권은 올해 SF 문학상인 로커스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엔 이번에 1·2권이 함께 출간됐다. 책은 SF적 상상력 속에 관계와 고독, 한정된 세계와 소비의 문제까지 다양한 현실을 녹여낸다. 앞으로 시리즈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기대되는 것은 미스터리한 설정 외에도 이처럼 현실에 기반한 문제의식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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