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꾸다”

오후의 문장

지음 김애현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1년 1월 27일 | ISBN 9788956604244

사양 변형판 128x188 · 312쪽 | 가격 11,5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충실한 서사에 새로운 감수성의 무늬를 음각하는 작가
신춘문예 삼관왕 김애현의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첫 소설집

2006년 한국일보, 강원일보, 전북일보를 통해 신춘문예 삼관왕의 타이틀을 얻으며 등단한 김애현 작가의 첫 소설집 《오후의 문장》(은행나무 刊)이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의 등단작,,를 비롯하여 2008년 문예진흥원 창작 기금을 받은, 표제작인등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들은 “하나같이 젊음의 열정을 진중한 문제의식으로 곰삭인 서사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고인환 문학평론가). “서사 양식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감수성의 무늬를 음각하는 듬직한 작가의식”은 ‘감동과 재미’라는 두 가지 선물을 독자들에게 동시에 선사한다.

결핍된 존재들의 환상변주곡이 연주된다!
《오후의 문장》의 주인공들은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에서 조금은 모자란 이들이다. 혹은 넘쳐서 문제다. 아버지가 없는 대신 몸에서 빛이 나고, 키가 너무 작아서 어디 가서 대접도 못 받지만 자신을 열렬히 응원하는 아버지가 있고, 아내와 아들을 만날 수 없지만 그들과의 추억 속에서 사는 인물들. 이들은 해프닝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엔 살아내야 할 일상마저 버거워 한다. 그러나 언제나 “따뜻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작품세계 속 인물들답게, 점차 노력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격미달의 부원들이 모여 오케스트라를 꾸미는 것처럼 《오후의 문장》은 조금씩 자신만의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비록 삶이라는 악기를 다루는 데는 서툴지라도 그들의 연주를 듣는 것은, 마찬가지로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준다.
작가만의 문학적 소통, 그 첫 번째 방법은 ‘타인과 접속하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의 ‘광채’는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두운 아파트에서 나와 ‘친절한 금자 씨’와 접속한다. 광채의 유년의 기억 속에 친절한 친구인 금자 씨는 시력이 형편없어서 눈앞의 돈가스 조각도 포크로 찍어내지 못한다. 낮에 외출할 때면 커다란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 그러나 은근하게 빛나는 광채의 빛만큼은 금자 씨에게 해롭지 않다. 광채는 그녀의 방을 환하게 만들고 금자 씨는 광채를 감싸며 속삭인다.

“자, 이제 내 속으로 들어와 줄래요? ……나는 당신을 낳을 거예요.”

두 번째 방식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는 어린아이의 씩씩한 걸음처럼 안쓰러운 구석이 있으나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응원을 이끌어낸다.의 주인공은 “뭐든 열심히 한다. 이때껏 그랬”다. 다 큰 청년이지만 키가 중학생 정도인 그는 사촌동생의 소개로 FD보조 일을 하게 된다. ‘무조건 눈에 띄어라’는 행동강령 아래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러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주인공 ‘빠삐루파’ 역을 엉겁결에 맡게 되는데, 이 일이 참 만만치 않다. 인형탈을 쓰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연기하는 와중에 아토피 염증은 삶에 대한 환멸처럼 온몸에 퍼진다. 그래도 그는 뛴다. 키가 더 자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러닝머신 위에서 뛴다. 다리가 절단 나서 기저귀를 차야 하는 아버지의 응원을 받으며. 이들은 때론 빠삐루파가 주문을 외면 찾아갈 수 있는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기도 하지만 결코 자신이 붙박여 있는 현실을 잊지 않는다.

뭐여!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인터폰의 수화기를 든 채 아버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애비 기저귀값 벌려고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내 자식이 운동 좀 하겠다는데!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낸다(, 108쪽).

세 번째는 ‘나 자신을 되찾기’다. 의 주인공은 사촌지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신의 몸에 새겨진 혼돈을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는 인물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서로를 사랑했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해 못할 사랑이 자신의 출발점이라는 데서 오는 불안이 블로그에 낱낱이 기록된다. 자기 부정으로 보이는 기록들은 블로그를 드나드는 방문자들의 댓글에 의해 아주 조금씩 자기 이해로 바뀌어 간다. 블로그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에 대한, ‘근대의 산물’인 소설을 쓰는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작가는 새로운 매체 환경에 대한 촉수를 예민하게 치켜세우면서도, 바로 지금의 삶 또한 놓치지 않는다.
에서는 자아를 찾기로 결심한 이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종로 한복판, 사람들이 목적을 잃고 그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신동래퍼K가 나타난다. 그를 목격한 이들은 하나같이 ‘랩’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블로그에 이어 ‘랩’이라는 음악의 언어가 소통의 방식이 되고 소설 속 인물들은 ‘필이 통한’ 경험으로 인해 자신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감각적으로 겹쳐지고 드러나는 개인들의 면면의 인생사는 소설에 깊이를 더한다.

느리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들으려는 속성이 있다고 봐요. 빠르든 느리든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른 얘기는 그냥 흘려버리는 거죠. 쓰-, 윽(, 49쪽).

그거야 필받아서 그런 거지. 내 나이쯤 돼 봐, 가슴이 두 귀야. 귀로 알아들으면 뭘 해, 가슴이 못 느끼면 말짱 도루묵이지. 필은 그냥 여기에, 여기에 퐉! 퐉! 꽂히면 되는 거라구(, 69쪽).

“도구적 이성을 넘어서는 ‘필’의 언어”는 힘이 세다. 나이 많은 래퍼, 취업준비생, 전교 1등 중학생 소녀, 의처증 남편을 둔 아줌마, 모텔을 경영하는 아저씨 등 세대와 취향을 막론하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마음 한 구석을 찔러댄다. 래퍼K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지친 이들을 위로한다. 작가의 문학적인 언어는 이런 ‘필’을 꿈꾼다.

‘의미’의 속박을 넘어선 자유로운 문장
작가는 소설을 통해 자신을 되찾는 일은 결코 자신에게로 함몰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에게 열렸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이너리티의 합주곡으로 시작했던 음악은 타인에게 열리는 무한한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마무리된다. 이런 문학이 가능한 데에는 작가의 활력이 넘치는 문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작가는 문학적인 언어를 지녔음에도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표제작은 단순한 문장을 넘어 문학 이상의 것을 탐색한 ‘문장’을 고민하는 소설이다.에서 ‘필’의 언어를 꿈꿨던 것처럼에서는 ‘의미’의 속박을 넘어선 자유로운 언어, 문장을 그린다.

해가 지고 있다. 추장 딸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좀 의아했어요. 왜냐면 그 모래그림에는 해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산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바다처럼 보이는 것도 있길래 그날 아침, 바닷가풍경을 그렸겠거니 생각하던 참이었거든. 하지만 그건 그림이기 이전에 하나의 문장이었던 거요(, 141쪽).

사진작가가 찍은 ‘모래그림’에 걸맞은 문장을 찾던 대필 작가. 불륜인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사랑해’와 ‘미안해’ 사이에서도 알맞은 문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미안하다’를 연발하며 자신의 사랑이 불륜임을 끊임없이 낙인찍는 K. 결국 그와의 관계는 ‘싫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모래그림 사진 두 장은 전혀 다른 모양을 갖고 있지만 모두 “해가 지고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래그림을 그린 추장과 그의 딸에게는 문자를 공유하는 규칙이 없어서, 그들은 의미에 묶이기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문장을 표현한다. 주인공은 모래그림 사진집의 제목을 ‘오후의 문장’으로 짓는다.
여기에 또 다른 문장이 끼어든다. 새로 이사한 집에 낯선 여인이 방문하고 그녀는 신발장에 적힌 “미르, 헤르 어딨어”라는 문장을 지우지 말 것을 당부한다.

왜 하필 미르, 헤르 어딨어, 였니.
니네 엄마가, 널 잃어버린 니네 엄마가 그 문장에 갇혀버렸잖아. 꽁꽁 묶여서 꼼작도 하지 못한 채 거기, 그 문장에 갇혀 살잖아(, 139쪽).

잃어버린 아이의 마지막 문장인 그것은 여인의 일상을 무참히 깨어버린다. 전세금이 모자라 이사를 가야 했던 여인은 그렇게 아이가 남긴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인은 날마다 신발장에 적힌 그 문장을 보러 주인공의 집에 방문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일상을 깨어버리는 여인의 방문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글자도 모르는 아이가 새긴 낙서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주인공은 신발장의 문장을 자신의 글씨로 덧쓴다. 삐뚤빼뚤 아이의 글씨 위로 자신의 글씨가 겹쳐져도, 신발장의 문장은 여전히 의미 없는 낙서였다. 닿을 수 없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문장. 그러한 문학적 언어에 대한 소망을 작가는 소설로 구현했다. “우리 시대 소설의 운명”인 이런 불가능한 문학적 자유에 대한 갈망은 《오후의 문장》에서 단연 빛나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김애현의 소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선사한다.
타자와 소통을 꿈꾸는 교감의 언어, 정체성 탐색의 이야기 구조, 상실과 부재의 흔적을 좇는 서사, 박제된 일상 너머를 꿈꾸는 작가의식 등은 근대적 일상을 탐색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포착하느냐에 있다. 김애현은 근대적 일상을 ‘지금 여기’의 감수성으로 직조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매체 환경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소설 언어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해설(고인환 문학평론가) 중에서

작가 소개

김애현 지음

2006년 한국일보에 <카리스마스탭>, 강원일보에 <빠삐루파, 빠삐루파>, 전북일보에 가 한꺼번에 당선, ‘신춘문예 삼관왕’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등단했다. 2008년 <백야>로 문예진흥원 창작 기금을 받았으며, 2010년 첫 장편소설 《과테말라의 염소들》를 2011년에는 《오후의 문장》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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