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에 오른 독서토론회! 고광률 작가 <오래된 뿔>

부산 영광도서 독서토론회는 지역문학행사로는 보기 드문 장수 프로그램. 지난 1993년 3월 출범했으니 횟수로 20여 년이 되어가고, 이번 11월 모임이 159회째였다. 다녀간 작가들만 해도, 황석영, 이문열, 유홍준, 신경숙, 조정래, 장정일 등 웬만한 작가들은 다 다녀갔다. 출판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문학토론모임이 활발한 유럽의 경우에도 이렇게 오랫동안 독서토론회를 이어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이번 기네스는 부산시가 직할시 승격 50년을 기념하여 시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것으로, 부산 시민들에 의해 이 독서토론회는 ‘부산의 보물, 기네스 TOP10’ 중 4위로 선정되었다. 부산 시민들의 이 토론회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서울의 대형서점에서 하는 강연회나 사인회보다 이런 지역의 작은 독서토론 모임이 훨씬 열기 넘치고, 감동 있고,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고 느껴진다. 또한 서점이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고 지역문화 창달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참 좋다. 좋은 작가님들을 만난 덕분에 본 편집자는 올해 이 전통과 역사의 독서토론회에 두 번째 참석이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또 얼마나 날카로운 비수를 날려주실지 기대 반 호기심 반…

11월 28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문학평론가 권유리야의 사회로, 여성인권살림운동가 변정희, 생활기획공간통대표 박진명을 토론자로 하여 159회 부산 영광 독서토론회가 시작되었다. 스산하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이 참석했다. 지역의 한 서점이 중심이 되어 이렇게 오래도록 한결같이 문학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것도 대단하지만, 이토록 뜨거운 열기로 참석하고 호응해 주는 주민들도 대단하다.

토론은 권유리야 사회자의 “이웃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그 모습 어디에 이런 뿔이 숨어 있을까 놀랍다”는 농담으로 시작되었다.

- 집필 동기는?
80년대는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저도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1993년에야 광주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조선대학교 교정에서 운명처럼 “음모는 마침내 엄청난 피를 부르며 질주하고 있었다.”라고 쓰인 종이쪽지를 주웠는데, 그때 5.18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일 때문에 계속 쓰지 못하다가 2004년 대통령 탄핵사건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반성, 용서, 화해하지 않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교직원이라 방학을 이용해 42만에 폭풍 집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랜 시간 퇴고의 과정을 거쳐 이번에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  싸이의 말춤, 스마트폰에 열광하는 무이념의 시대에 5.18광주를 소설화한 이유는?
대전대 신문방송과 쪽에서 근무해서 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데, 학생들이 한국의 근현대사에 너무 무지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사실 주변에서 안 팔린다고 많이 말렸습니다. 그때 저는 교직원이라 돈에 대한 부담은 덜하기에 안 팔리는 소설 써도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안 팔리는 소설이니까 내가 써야 한다고.. 실은 다음번 소설도 6.25때 노근리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 중인데….(웃음)

-  5.18 이야기를 87년 6월혁명 이후 시점으로 쓴 이유는?
실체험이 없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객관적 시각, 즉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고 싶었습니다. 또 2012년 현 상황의 시점에서 그 당시를 짚어보자는 의도였습니다.

-  작가의 체험이 녹아든 부분이 있는지?
저는 소설을 쓸 때 개인적 이야기는 될 수록 담지 않는 주의입니다. 소설 속에 제 체험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5.18 이야기는 나중에야 알게 되어서 부채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후 많은 자료 연구를 통해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5.18 관련자료부터 부검, 사냥, 골프에 대한 것도 모두 자료로 섭렵했습니다…대학 때는 독고다이였고, 수업도 안 듣고 책만 읽었습니다. 아, 학생기자 출신이었는데, 그런 면이 조금 들어갔을 수도 있겠네요.

- 죽은 박갑수가 기자일 필요가 없는데 왜 굳이 기자로 설정했는지?
기자, 정치인, 대학생, 장군의 관계설정은 의도된 캐릭터 설정이었습니다. 즉, 각기 교육, 언론, 정치 분야를 대표하는 것이죠. 그런 부분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역기능을 파혜치기 위해 그런 등장인물을 설정한 겁니다.

- 거대담론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인데?
5.18을 박갑수 한 개인의 입장에서 새롭게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거대담론이 아니라 개인사적 역사랄까요. 한 개인의 죽음을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다 보니, 사유보다는 사건 전개에 중심이 가 있습니다.

- 소설이 영상미가 넘치고, 무협지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읽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드마라틱한 기법, 추리기법 등 당의를 가미했습니다.

- 소설 집필하실 때 사모님은 어떻게 내조를 하시는지요?
따로 내조하는 건 없어요. 다만 글 쓰러 어디 가고 싶어 할 때 그냥 내버려둡니다.

- 소설이 권선징악의 결론이 아니어서 충격이었다. 소설 속 학살 장면들이 정말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소설 속에서 우명순의 교도소 집단윤간사건은 상상력입니다. 하지만 다른 장면은 모두 역사적으로 검증이 끝나 있는 사실입니다. 우명순 윤간장면 역시 실제로 그와 똑같은 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역사적 사실을 개연적으로 따져봤을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이죠. 저는 소설에서 개연성을 무척 중시합니다.

- 4선 장상구가 빼돌리려 했던 비밀자료의 정체는 무엇인가?
5.18의 생생한 기록이 모두 공개되지 않았을 거라는 전제로 한번 생각을 해본 것이죠. 그것을 장상구가 가지고 있고, 그 자신의 범죄와 상쇄시킬 수 있는 쇼부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가령 미국의 방조 내지는 동조를 증명하는 자료 같은 것이겠죠. 소설 속에서 장상구가 비공식적으로 미국 군대에서 활동했다는 장치도 그런 이유에서 넣은 겁니다.

- 뿔의 의미는?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작가의 생각?
제가 책의 날개에 이렇게 썼습니다. “일일이 분노하면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느냐고 합니다. 분노하지 않아서 세상이 험해졌다고는 생각지 않는 모양입니다. 세상사가 우리를 잘 길들인 때문일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버린 뿔이 우리와 ‘그자’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뒤적여보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뿔이란 것은 분노와 저항을 상징하는 뿔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뿔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말하면, 저는 선과 악은 나눠져 있지 않고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세상을 가르고 세상을 잘못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작품 속에서 말하는 것도 단죄의 의미가 아니라 반성과 용서와 화해로 해결하고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 양창우가 장상구 차를 가로막으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탈바꿈하는데?
자기 시대 관련된 일을 자기 선에서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가 하지 않으면 그 일은 나중에 갑수의 아들 민우가 하게 되겠죠. 그걸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이렇게 부산 영광도서 독서토론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토론회 끝에는 추첨을 통해 30명에게 작가사인본 책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작가님의 사모님도 추첨에 뽑히셔서 도서상품권을 받아갔다는…^^

처음엔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는 게 꺼려져 독서토론회 참석을 망설였다는 고광률 작가. 이번에 독자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참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사모님은 이런 독서토론회 모임이 전국 각지에 있어서 한 바퀴 돌면 좋겠다고…

좋은 자리에 초청해 주신 부산 영광도서 측에 감사드린다.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독서토론회라는 문학행사를 20년간이나 지속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굳건한 뿌리를 내린 만큼 앞으로도 흔들림없이 부산의 문학사랑방 역할을 계속해 주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렇듯 문학의 텃밭을 일구는 작은 문화모임이 전국적으로 더 많아지기를…. 동네 서점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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