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오래된 뿔

Screenshot_4 5월의 광주와 6월 항쟁을 추리 형식으로 다시 바라 본 소설이 나왔다. 2012년 제17회 호서문학상 수상작『오래된 뿔』이 그것이다. 1980년부터 2004년까지 역동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기자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소재는 묵직하지만 추리소설의 흡입력과 속도감을 갖췄다. 스토리는 시간순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기억에 따라 뒤죽박죽 전개된다. 그 어지러운 퍼즐을 끼워 맞추는 건 독자의 몫이다.

『오래된 뿔』 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진 혹은 벌어지고 있는 권력의 음모와 야만을 뒤적여보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역사(과거)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거-현재-미래의 유기적 프레임 속에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과거를 방기한 사회 즉, 진실 규명, 반성 및 사과, 성찰 그리고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루지 못하는 국가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매우 고달프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돈이 가치 기준이다 보니 사람들은 경제 성장만으로 ‘지금-여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권력=지식=돈’인 세상에서 이것의 실체를 살피는 일은 중요하지요.

오랫동안 이 작품을 쓰고 다듬어 온 것으로 압니다. 얼마 동안 집필하셨나요?

1993년 6월 초에 광주 조선대를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5·18 관련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초고 집필을 했고, 2010년부터 3년간 전면 재작업을 했어요. 초고는 2004년 6월에 시작했는데 방학을 틈타 34일 만에 원고지 1000매 남짓한 분량을 썼어요. ‘폭풍 집필’을 한 것이지요. 그러고 5년 동안 틈틈이 공부를 다시 하며 깊이 들여다보다가 2010년 4월부터2012년 3월까지 원고지 3000매 분량으로 재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장을 담그는 기분이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 쓰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고, 또 부족한 공부를 하느라 오래 걸린 것이지요.

이번 소설에서 독자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아,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있었구나. 아, 우리가 이런 험한 역사 위에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현대사의 숨은 깊은 의미를 일일이 따로 찾아서 밝히려고 애쓰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이 소설을 읽으신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인물을 다각적인 관점으로 조명하고 있는데, 특히 관심 있게 봐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장상구와 최동우입니다. 우리가 장상구와 최동우 같은 사람을 많이 만들고 있지요. 그리고 섬기고 기리지요. 다음은 오 마담(우명순)입니다. 그녀가 깊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용서와 화해 그리고 희망을 찾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지요.

소설 내용은 무게감 있지만, 소설의 형식은 대중이 좋아하는 미스터리를 접목한 것이 독특합니다. 이렇게 소설을 구상한 이유가 있나요?

오늘날 현대인들의 키워드는 재미와 감동입니다. 유익은 그 다음이지요. 일단 재미가 없으면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지요. 당의정설(糖衣錠說)이라고 하지요. 달달한 재미를 많이 넣어 버무렸어요. 미스터리는 맵고 짠맛입니다. 일종의 흥분과 자극이지요.

소설 집필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균형과 중심에 관해 말하려고 고민하지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뜯어보고 생각하느라 힘듭니다. 상황과 맥락을 짚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우리가 찾아야 할 빛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이 싫은데 어둠을 찾아갑니다. 어둠을 깊이 들여다봐야 빛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장편소설도 5.18에 관련된 소설이었습니다. 5.18에 대해 상당히 천착하고 있는 듯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5·18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라는 거창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난 그때 스무 살이었으나,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분노하고 슬퍼했어야 하는데 알지 못해서 그것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내 자식들에게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의 관점을 퍼즐처럼 조합해 가는 이야기 전개가 독특합니다. 왜 이런 전개방식을 선택했나요?

우선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말을 하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은 선과 악이 버무려져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이 악을 통해서 선을 말하고, 악이 선을 통해서 악을 말하지요. 이 과정을 통해서 선이 악을 어떻게 만들고, 악이 선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틀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동참하는 재미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 이야기를 계속 쓰게 되겠지요. 현재, 정치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노근리 학살과 산내 학살을 소재로 한 소설은 구상이 끝났습니다. 계백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도 써볼 생각입니다. 난 계백의 황산벌 전투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걸 이해해서 소설로 써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라는 중편소설을 썼지만, 한국의 대학 교육과 관계된 묵직한 장편소설 한 편이 따로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소감 한마디 해 주세요. 거대담론을 다루다 보니 소설이 무겁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래도 무거웠다면 나의 한계이자 능력 부족 탓일 겁니다. 앞으로 고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독자 여러분께서는 처음이 힘들어도 끝까지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힘들지만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바쁘고 고된 세상에 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랜 부조리와 억압 속에서 우리가 버렸던 ‘뿔’ 이야기
지음 고광률
분류 국내소설 | 출간일 2012년 10월 18일
사양 변형판 150x210 · 388쪽 | 가격 12,000원 | ISBN 9788956606545
오랜 부조리와 억압 속에서 우리가 버렸던 ‘뿔’ 이야기
지음 고광률
분류 국내소설 | 출간일 2012년 10월 18일
사양 변형판 150x210 · 384쪽 | 가격 12,000원 | ISBN 9788956606538
고광률
1961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호서문학》(1987)에 최상규, 박범신 추천으로 단편 을, 17인 신작소설집 《아버지의 나라》(1991)에 단편 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장편소설 《오래된 뿔》로 2012년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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