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 그리고 비밀 친구에는 뭔가 비슷한 점이 있다!

주말과 어제, 스피드스케이팅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스포츠에 문외한이고, 국민적 행사에 가까운 월드컵, 올림픽에도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저이지만 최근 이승훈 선수에게 자그마한 관심이 생긴지라 약간의 기대를 하며 스피드스케이팅 5000미터 경기를 지켜보았죠.

5000미터, 라고 말로 하는 건 쉽지만 무려 5킬로미터입니다. 5킬로미터의 거리를 스케이트를 타고 질주하는… 그런 경기이죠. 단시간에 승부를 내고, 서로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는 쇼트트랙과는 다분히 다른 성격의 경기인데, 그런 차이를 7개월의 훈련만으로 극복하고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둔 이승훈 선수. 과연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맨 마지막 번호인 이승훈 선수의 경기 모습을 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지만 웬걸, 생각보다 매 경기가 흥미진진했습니다. 5천 미터라는 기나긴 거리, 그 거리를 꾸준한 속도로 주파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나는 선수들. 자신의 본래 실력뿐 아니라 강한 정신력, 적당한 운, 적절한 체력 안배 등 모든 것이 받쳐줘야만 가능한 승리인 것이죠.

그러면서 문득, 이 ‘스피드스케이팅 5천 미터’라는 종목 자체가 하나의 잘 쓰인 (대하)장편소설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유정 작가님의 <28>이나 <7년의 밤>처럼, 거의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긴 분량 동안 독자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그런 끈질긴 흡인력이 느껴지는 작품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스피드 스케이팅 5000미터 경기와 <28>, <7년의 밤>에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길지만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호흡, 박진감, 흡인력. 그 세 박자를 고루 갖춘 정유정 작가님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압도감이, 바로 이 5000미터의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에서 느껴졌다고 하면 너무 멀리 나가는 것일까요. 어쨌거나 이승훈 선수는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중요한 건 메달의 유무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떤 결과를 냈느냐 아닐까요. 혹독하고 기나긴 싸움을 계속하며 자신을 끝없이 단련해온 선수들이 이뤄낸 값진 결과를 볼 때마다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이상화 선수의 경기를 보았는데요,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괜히 여기저기서 ‘갓상화’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구나 싶은…) 또 하나의 전설을 이룩해냈죠. 그런데 이 500미터 경기는 5000미터와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요,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나 할까요.

사진만 봐도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지는… 정말 ‘갓상화’입니다.

순식간에 결정되는 운명, 매 바퀴를 돌 때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갈리는 승부, 단 0.01초의 차이로 놀랄 만큼 벌어지는 순위… 중반부를 넘어서면 어느 정도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5000미터와는 달리, 500미터 경기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승부의 향방이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갈리는 것이죠.

앞서 5000미터 경기에서 <28> <7년의 밤>을 떠올렸듯이, 500미터 경기를 보며 불현듯 떠오르는 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을 당시, 별다른 홍보 없이 오로지 북블로거, 서점 북마스터 등 독서가들의 입소문만으로 아마존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책.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너무나 궁금해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게 된다는 마약 같은 소설. 바로 얼마 전에 제가 편집해 출간한 프랑스 소설 <비밀 친구>라는 책입니다.

작가 엘렌 그레미용과 <비밀 친구>의 각국 표지. 작가님 미...미인이세요 *-_-*

<비밀 친구>는 기획 단계에 있을 때 저희 편집부에서 서로 공유해서 읽어본 뒤 만장일치로 계약을 진행한 책으로, 모든 편집부 직원분들이 하나같이 ‘일단 그냥 재미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셨더랬죠. 저 역시, 이거야말로 진정한 ‘페이지터너’구나 라고 느끼며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첫 장부터 정신없이 빠져들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무서운 속도감의 책. 정말, 5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과 똑같은 느낌의 ‘예측불가능한’ 소설이랄까요.

배경은 1975년의 파리입니다. 젊은 나이에 출판사 대표로 있는 주인공 카미유, 막 어머니를 여읜 그녀에게 여기저기서 조문편지가 날라 들어오죠. 그중 유난히 두툼해 보이는 봉투가 그녀의 눈길을 끕니다. ‘친애하는 …에게’로 시작되는 일반 편지와 달리,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은 그 편지에는 ‘루이’라는 남자와 ‘안니’라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언뜻 잘못 온 편지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카미유.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다음 화요일에 다시 편지가 날아오고, 이후 매주 화요일마다 편지가 오며 두 남녀의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로맨스 느낌으로 전개되던 이야기는 어느새 숨을 죄어오는, 섬뜩한 서스펜스로 흘러가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카미유는 편지의 진짜 주인을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누가 이 편지를 작성했는지 조사를 시작하고, 마침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거대한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강렬한 로맨스와 숨 막히는 미스터리의 완벽한 만남을 보여주는 <비밀 친구>. 일반 독자들에게도 대단한 호응을 얻었지만 엠마뉘엘 로블레스 문학상 등 5개 문학상을 석권하면서 또다시 저력을 보여주었는데요, 뤽 베송 감독이 영화로 제작하기로 예정된 이 소설, 5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처럼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진정한 ‘페이지터너’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편집부의 narh이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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