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의 세상에 페터 비에리가 말하는 문학의 힘, <자기 결정>

자기결정_편집후기_배너

결정장애.
사실 성격적인 특성에 ‘장애’라는 말을 넣는 것은 상당히 안 좋은 표현인 걸 알면서도 사소한 것조차 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유부단한 특성을 뇌까릴 때 이처럼 희화화할 수 있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자신이 결정을 못하는 것의 정도가 참담하여 실제로 인격 장애의 일종이 아닌가 초록창 지식인을 뒤적인 적도 있을 거예요.

건너건너 전해들은 어떤 분은 음식점에 갔을 때 메뉴를 정말로 정하지 못해서 옆 사람이 시키는 것을 무조건 따라 시키신다고도 하더라고요. 든짱 또한, 사전 지식이 없는 음식점에 가서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민하면서, 혹은 일단 친구는 만났는데 어느 음식점에 가얄지 몰라 고민하면서 친구와 함께 서로 또 각자 자기 자신을 결정장애라고 자책하곤 합니다.

#뭘_먹을지_정말_고를_수가_없다  #까만_건_글자요_하얀_건_종이

#뭘_먹을지_정말_고를_수가_없다 #까만_건_글자요_하얀_건_종이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결정장애’라고 부를 때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들은 사실 너무 사소한 것들이라서 ‘장애’라며 웃어넘길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정말로 공들여서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들. 내가 지금 식사로 내가 스파게티를 먹을지 라자냐를 먹을지, 면을 먹을지 밥을 먹을지, 영화관에 가서는 로맨틱 코미디를 볼지 수퍼 히어로물을 볼지는 어찌 보면 서너 시간의 기분을 좌우할 뿐이니까요.

그 결정들이 틀려 봤자 포기한 라자냐의 겹겹이 쌓인 녹진함이 혀 끝에 맴도는 것만 같아 아쉬워하고 면을 먹고 나서 배가 빨리 꺼졌다고 조금 괴로워하거나 로맨틱 코미디를 보니 헤어진 연인이 생각나 차라리 쳐부수는 히어로물을 볼걸 하는 정도일 뿐이겠지요. 여름철의 회와 같이 찜찜한 것이나 아예 자신의 취향이 아닌 것은 알아서 피할 테니까요.

우리가 정말로 결정해야 할 것, 동시에 ‘결정장애’를 일으키지 않고 결정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이번 휴가로 어디에 갈까? 명절에 본가에 내려갈 것인가? 등등 한 계절에 속하는 결정에서부터, 취직을 할 것인가,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가? 결혼흘 할 것인가? 자식을 낳을 것인가?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갈 것인가? 집은 어느 지역에 구할 것인가? 마음 속 위시리스트였던 기타 배우기를 이번 가을에는 시작할 것인가? 이렇듯 삶의 한 분기를 바꾸고, 그에서 파생되어 삶의 방향성마저 온전히 바꾸는 결정들도 내려야만 하지요.

이런 결정들에 있어서 우리는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사실 앞서 말한 ‘결정장애’가 불러오는 고민들보다 고민할 것이 더 많아 결정하기 굉장히 힘든 요소들입니다.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결정을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요.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자살하려는 것을 살려놨더니 홀연히 붉은 코트만 남기고 사라진 여인을 좇아 곧 출발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선택은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뒤흔들어 놓지요.

(사실 장기 무단 결근이 삶을 안 바꿔놓기도 어렵...;;)

(사실 장기 무단 결근이 삶을 안 바꿔놓기도 어렵…;;)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썼던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가 이처럼 삶을 바꾸는 ‘결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난해 《삶의 격》에서 삶에 대해 가장 절실한 가치로 ‘존엄성’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그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한 조건으로 ‘자기 결정’을 내밀었습니다. 실제로는 《삶의 격》보다 먼저 쓰여진 책인 만큼, 두께감 있는 《삶의 격》을 읽기 전에 워밍업하셔도 좋을 듯한, 바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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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직조해나가는 수많은 결정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부제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삶을 구성하는 그 결정들은 바로 나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을 때라야 우리가 진정한 자기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맞이하는 무수한 전환점들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마음으로 결정할 때라야 진정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지요.

《자기 결정》은 2011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3일간의 강연을 토대로 쓰여져,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질문들에 답합니다.

자기 결정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자기 인식은 왜 중요한가?
문화적 정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진정한 ‘자기 결정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이때 페터 비에리는 소설가로도 활약하는 자신의 이력에 따라 우리가 삶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문학!을 꼽습니다. 우리 은행나무 독자 여러분들이라면 누구나 저도 모르게 즐기고 있을 자기 결정의 연습 과정이겠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인물들의 인생 속에 자신을 녹여보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들의 결정으로 자기가 내렸을 결정의 결과들을 가늠해보는 것이지요.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읽기 교과서에 꼭 이런 문제가 나오던 것과 비슷합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거나, 너무 이해가 돼서 가슴이 아프다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그런 것들이죠.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또한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을 확률이 희박한 것들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문학의 장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황금방울새》의 시오처럼 미술관 폭파 사고 때문에 가장 애착을 가졌던 엄마를 잃고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된다거나, 《분노》의 아이코나 유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지명수배범은 아닐까 의심하게 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처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사건에 처한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면서, 내가 그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고민해보고, 또한 나와 같거나 다른 그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는지 확인해볼 수 있지요. 이는 인생에 있어서 결정의 힘을 실감케 하고, 나아가 그렇게 큰 힘을 지닌 결정에 있어 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할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한 ‘결정장애’를 일으키지 않고 내리는 결정들 또한 문학을 통해, 또 다른 매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분(?) 차이가 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사람이라면 미니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사랑이 어떤 결말에 다다를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고, 어느날 바람같이 나타난 인연을 잡아도 되는 것인지 스쳐지나갈 사람이라고 흘려보내는 것이 나을지 고민이 된다면 이런 내용을 다룬 차고 넘치는 영화 중 어떤 것을 보면서 생각해볼 수 있을 테지요. 하다못해 결혼이 파국에 치닫는 영화를 보면서 그래, 비혼이 답이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니까요 ㅎㅎ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무수히 검색한다거나, '판춘문예' 논란을 매번 빚는 네이트 판의 베스트 톡을 보면서 "저런 사람하곤 당장 헤어져야지!" "그런 일을 당하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식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결정의 무수한 시뮬레이션인 부분.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무수히 검색한다거나, ‘판춘문예’ 논란을 매번 빚는 네이트 판의 베스트 톡을 보면서 “저런 사람하곤 당장 헤어져야지!” “그런 일을 당하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식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결정의 무수한 시뮬레이션인 부분.

이런 자기 결정의 간접 체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황금방울새》의 시오를 보면서 그냥 그 그림 버리고 말지, 라는 생각이 번번이 들 때마다 든짱은 스스로가 참 책임감 없고 골치 아픈 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물론 정말로 완전히 제 일이라면 달랐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다른 사람의 영향에 구애받지 않고 진짜 나로 인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헤르만 코흐의 《디너》를 원작으로 올해 개봉한 영화 〈더 디너〉 자식이 살인을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기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지만, 이들의 고민과 결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또한 자신에게 닥친 일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생각해볼 수 있다.

헤르만 코흐의 《디너》를 원작으로 올해 개봉한 영화 〈더 디너〉
자식이 살인을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기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지만, 이들의 고민과 결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또한 자신에게 닥친 일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삶에 있어서 결정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사람, 그 결정에 내 생각이 들어가야 함을 깨달은 사람, 결정에 반영되어야 할 진정한 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된 사람은 앞서 예시로 들어보았던 실생활에서 우리가 처하는 무수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에도 의연히 임할 수 있겠지요! 내 삶에 진짜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삶에서 내리는 ‘자기 결정’에 크나큰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치면 소설이 읽는 즐거움을 넘어서서 각자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더욱 충실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든짱이 중언부언, 문학을 즐기는 은행나무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눌 점들을 늘어놓았지만 무엇보다 책을 함께 보신다면 참 좋겠죠! 이것저것 부록 다 합쳐서 108쪽 남짓 짤막한 책이니 소설을 읽으시면서 한 강의 한 강의 천천히 즐겨보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폰5s와의_비교 #얇습니다(엄격)(진지)

#아이폰5s와의_비교 #얇습니다(엄격)(진지)

마지막으로 짤막하게 덧붙이자면, 페터 비에리는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화에 속한 개개인들이 문화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기는 것은 곧 이 책을 사보실 독자님들께 대한 기만 행위 같으니(^^) 든짱이 느낀 생각을 말하자면..

든짱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을 2013년부터 3년째 성실하게 출석하고 있는데 사실 재즈는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매번 탑라이너인 쌀아저씨나 미카를 보러 간 정도.. 하지만 앞으로도 매해 갈 것 같고 다음주에 오픈하는 블라인드 티켓도 예매에 도전해보려고 하고 있지요.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는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재즈에 아는 음악이라 해도 보컬 듣는 맛에 마이클 부블레나 제이미 컬럼을 좋아하는 정도니까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재즈를 좋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정말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결국 잘 모른 채 스쳐갈 수도 있지만, 이 시점 든짱은 ‘재즈를 좋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정체성으로 삼은 것이지요!

여러분의 문화적 정체성은 어떤 것일지, 책과 함께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재미난 이야기 또 나누어요!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지음 페터 비에리 | 옮김 문항심
시리즈 일상 인문학 5 | 분류 인문 | 출간일 2015년 9월 21일
사양 변형판 146x216 · 108쪽 | 가격 9,000원 | ISBN 9788956609249
페터 비에리
1944년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났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버클리 대학, 하버드 대학, 베를린 자유대학 등 여러 곳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마그데부르크 대학 철학사 교수 및 베를린 자유대학 언어철학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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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선홍
    2015.10.08 1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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