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일도 아니고, 숙제도 아니고, 완성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정말 쓰고 싶어서 쓴 소설입니다.”
<고마네치를 위하여>의 조남주 작가 인터뷰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 이후의 삶을 살아낸다는 뜻인지 몰라…
세상의 속도와 셈법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좌절, 눈부신 상처의 기억을 따뜻한 시선으로 더듬는 웰메이드 성장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
모범적인 성장소설이나 성장소설의 뻔한 한계를 내적 진실성으로 극복한 작품. _박범신(소설가)
혐오와 수치심 주고받기가 일상화된 오늘, 나에겐 이 소설이 가장 저항적이고 가장 폭발력 있게 다가왔다. _이기호(소설가)
• 수상 통보를 받았을 때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집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도시가스 점검원이 와서 안전점검 중이었고, 그사이 택배 기사가 인터폰 호출을 하고, 택배를 갖다 주고……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전화를 못 받았고요. 얼마쯤 있다 다시 당선통보 전화를 받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 2011년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셨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문학상 수상인데요, 처음보단 덜 떨리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사실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을 때는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상태였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놀라고 기뻐해주어서 그때부터 저도 기쁘고, 떨렸던 것 같고요. 이번에는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상을 받았다는 자체로도 기뻤지만 출간할 수 있다는 게 더 기뻤습니다. 꼭 책으로 내고 싶은 소설이었습니다.
•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시고 오랫동안 방송 작가 생활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소설을 써야겠다’라고 결심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출산과 동시에 10년 가까이 하던 일을 쉬게 되었는데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고, 뭔가 쓰고 싶었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제도, 구성도, 인물도 제대로 잡아 놓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첫 문장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어떤 소설인가요?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서울 변두리 어느 달동네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고마니’는 코마네치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체조선수를 꿈꾸던 소녀였지만, 지금은 30대 후반의 백수 아가씨고요. 아파트 입주민이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인 어머니와 늘 망하기만 하는 장사꾼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요. 실패와 좌절 이후의 삶을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한 태도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 이번 당선작 《고마네치를 위하여》가 데뷔작 이전에 처음으로 쓴 소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놓지 않고 계속 잡고 계셨던 데는 특별한 애착이나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다섯 살부터 결혼 전까지 살던 동네가 소설 속 S동 같은 곳이었습니다. 재개발이 결정되자 친정 부모님이 집을 팔고 변두리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그즈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요. 2년 정도 썼습니다. 수정 방향을 잡지 못해 이후로 3년을 그냥 덮어두고 있었고요. 그러다 작년에 길에서 분양 광고 전단지를 받았는데 바로 그 동네였어요. 전단지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때 문득 초고 상태로 묵혀두고 있었던 소설을 고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도 아니고, 숙제도 아니고, 완성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정말 쓰고 싶어서 쓴 소설입니다. 쓰면서 막연했던 질문들도 정리가 되었고, 답도 조금은 찾은 것 같고요. 그러는 동안 깊은 애정이 생긴 것 같습니다. 끝까지 잘 써서 세상에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위악적이고 자기내면의 문제에만 골몰하는 요즘 소설의 인물들에 비해 《고마네치를 위하여》 속 등장인물들은 너무 선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 문학이 잠시 외면했던, 이렇듯 선한 사람들을 소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소설 속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지,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이 인물들이 선한 줄, 몰랐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누군가를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니고, 아무 설정이나 계획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인물들입니다. 선량하고 정의로운 방향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경제력이나 교육 수준과 무관한 특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요. 그 감각이 선천적인 것인지, 교육이나 훈련에 의한 것인지, 특별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인지, 늘 궁금합니다.
•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 또는 문학적 포부에 대하여……
질문이 생겼을 때 소설을 씁니다. 나이가 들어도 질문이 멈추지 않고, 그래서 계속 소설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하나 더 있다면, 이제까지 발표할 지면이 약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들을 써왔는데 그게 좀 외로웠달까 막연했달까 그랬습니다. 파일로만 저장되는 소설이 아니라 책으로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일단 잘 쓰는 일이 우선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