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이제는 세상을 버티지만 말고 느껴도 보기를, 나 또한 그렇기를”
<집 떠나 집>의 하유지 작가 인터뷰
주인공 오동미가 정착한 골목길의 삶은 현실의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고단하다. 그러나 인물들은 쉬이 좌절하거나 엄살떨지 않는다. 고만고만하게 사랑하고 자질구레하게 다투고 유머를 잃지 않은 채로 노동한다.
그들의 삶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현명하므로,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은 어느 순간 숭고해지고 결국엔 우리로 하여금 이 지옥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 살아가야 할 이유들을 숙고하게 만들고야 만다.
비참한 현재보다는 나은 상태, 정의로운 사회, 우애 넘치는 공동체. 저들과 함께라면, 흔히 ‘헬’이라고 부르곤 하는 이 땅에서 사는 것도 별로 두렵지 않을 듯하다.
_김형중 (문학평론가)
2016년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작인 <집 떠나 집>은 일상의 사소한 길목에서 마주치는 외로움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소설입니다. 그만큼 잔잔하고 소박하지만 그속에서 읽히는 인물의 삶이 나의 삶, 혹은 내 주변의 삶이기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인데요~ 그래서 JIN양은 이 소설을 “MSG가 첨가되지 않은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자, 이제 하유지 작가를 만나서 <집 떠나 집>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 소설가 지망생에서 소설가가 된 지금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더불어 수상금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도…
→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 낮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았어요. 잠결에다가 모르는 휴대폰 번호라,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택배 기사님인 줄 알았어요. 이런 상황이라 얼떨떨한 나머지 마음껏 기뻐할 순간을 놓치고 너무 침착하게 굴었습니다.
책이 나왔는데도 아직 ‘내가 소설가가 되었구나.’라는 실감이 확실히 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작품을 써야 할까 고민할 때, 예전보다 마음이 무겁기는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쓴 글의 독자는 저 자신과 남편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글을 읽는 사람이 그보다는 많아지게 되었으니까, 독자를 의식하게 되고 긴장하게 됩니다.
상금의 일부는 예금해두었어요. 나머지는 생활비와 잡비 등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중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르륵 사라지고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을 구성하기 된 계기가 특별히 있는가?
→ 예전에 몇 달에 걸쳐 짧은 이야기를 여러 편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렇게 쓴 이야기 중에서 마음에 드는 몇 편을 골라서 긴 이야기로 재구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쓴 소설이 <집 떠나 집>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처음 썼던 짧은 이야기들의 흔적이 많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인물과 사건을 채워 넣게 되었지만요.
제목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제목을 그렇게 정한 의미와 이유에 대해 듣고 싶다.
→ 이 소설은 동미가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동미는 집을 나가 ‘모퉁이’와 ‘만나’에서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런저런 일을 겪죠. 그리고 갑갑한 고시원을 벗어나 나리네 집에서 자기 방을 얻고요. 몇 달 뒤에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는데요, 이렇게 달라진 모습이야말로 동미에게는 새로운 ‘집’이 아닐까요?
취업 준비생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구절들이 많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으면 좋겠는가.
→ 생각지도 못한 곳이 길이 되기도 한다는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어요. 꼭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어야만 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덤불로 덮여 있고 잡초가 무성해도, 걷다가 다리가 긁히고 모기에 물려도, 이곳을 지나 저곳으로 가게 해준다면 거기 역시 길이죠. 저도 20대 끝자락에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재취업이 되지 않아 무척 힘들었고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리랜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길이었어요. 글을 쓸 시간을 좀 더 얻게 되었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해서, 원하는 연봉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쓸모없다, 실패했다’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쭉 뻗은 고속도로나 국도만 길은 아니잖아요? 오솔길도, 골목길도 내 삶 속에 있는 소중한 길이죠. 이 책이 각자의 삶 속에 있는 골목길과 오솔길을 잠깐이라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설 속 배경은 여름이지만, 봄이 성큼 다가온 요즘에 <집 떠나 집>을 읽으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계절을 타는 탓도 있겠지만, 인물 간의 ‘생계형 밀착 로맨스’가 드러나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그중 썸을 타는 중인 동미와 선호의 떡볶이 데이트가 인상적이었다. 딱딱한 만두 때문에 난처해하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슬그머니 뜨끈한 떡볶이 국물을 몇 숟가락 부어주는 남자라니. 역시 이런 사소한 배려에 여자들이 훅~ 넘어가는 것 같다. 이런 로맨틱한 에피소드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지 궁금하다.
→ 연애 시절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가 알려준 방법입니다. 지금 제가 사는 인천에 만두와 쫄면으로 유명한 분식점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튀김만두를 먹는데 테두리가 너무 딱딱하다고 투덜거렸더니, 떡볶이 국물에 만두를 불려서 먹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때 일을 기억해두었다가 소설에 썼답니다.
<집 떠나 집>에서는 큰 사건도 갈등도 없다. 우리 모두가 충분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소재를 얻었을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 소재를 얻었는가.
→ 예전에 커피숍이나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 보니, 저와 같은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토막이 들리면 그것을 토대로 저만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려보기도 했죠. 또 그 시절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을 활용하기도 했고요. 자전거 타기를 배운 이야기나 토끼 파이 이야기는 저와 남편이 연애할 때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부분입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독자들에게 어떤 이미지 어느 작품의 경향을 말해도 무방하다.
→ 앞으로 당분간은 작품을 많이 써서 독자와 자주 만나고 싶어요. 그동안 제 안에 쌓아둔 이야기들이 이제 출구를 찾았으면 합니다.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으로 다가가면 좋겠어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