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책 읽기, 디너를 소개하다!

# 1.

 

‘즐거운 책 읽기’라는 교양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야구 중계를 제외하면 퇴근하고 나서도 딱히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 저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또한 요즘에는 다양한 출판사에서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는 스마트폰으로 야릇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도 가끔 듣고 있지요. 최근에는 이정명 작가의 신작 장편 <별을 스치는 바람>을 KBS 라디오 소설극장에서 성우들이 낭독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답니다. (여담이지만, 소설극장에서 ‘윤동주’ 역을 맡은 성우분께서는 작품에 감동하여,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으로 이정명 작가님의 사인을 받으러 오시기도 했었다는 이야기가 …)

매주 화요일 밤 깊은 시간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 “오늘의 책”이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지난 14일 방송에서는 바로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디너>가 선정되어서 세 분의 패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답니다. <디너>가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반갑게도 은행나무의 다른 책이 함께 소개되었는데요,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별을 스치는 바람> 입니다.

역사적인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합성한 신조어 팩션[Faction], 즉 역사적 사실에 가공의 이야기를 덧붙인 소설 장르가 유행이라며 <디킨스의 최후>, <경성탐정 이상>과 함께 소개되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영구의 대표 작가 찰스 디킨스를 다루고 있는 <디킨스의 최후>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구요.. 그 외에도 새롭게 출간된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작가와의 인터뷰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50분을 꽉 채워서 방영하고 있는 ‘즐거운 책 읽기’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시청해보시기 바랍니다.

# 2.

 디너 (헤르만 코흐/은행나무)   리뷰보기

네덜란드의 국민작가 헤르만 코흐의 대표작 디너, 이미 <디너>가 우리에게 던지는 결정적 질문 이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블로그 포스팅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노숙자를 구타해 죽인 열다섯 살 소년, 과연 그 아들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아이의 부모가 한 레스토랑에서 모여 논의하는 바를 그려낸 소설이 바로 <디너>이지요. 네덜란드를 비롯한 전 유럽에서 백만 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합니다.

앞서 팩션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렸는데요, <디너>라는 소설 역시 픽션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믿기 어려운 일이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서투른 구글링에 의하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두 아이에게 법원은 징역 17년을 선고했다고 하며, 그들의 범행이 담긴 동영상은 지금도 youtube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 사건은 2005년 12월 16일에 일어났으며, 그 당시의 영상은 TV에서도 방영되었습니다.(다소 충격적인 영상이니 주의하시고 재생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과연 조승연 작가는 왜 <디너>를 추천하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과연 조승연 작가는 왜 <디너>를 추천하게 되었을까요??”이것은 착한 짓이고 저건 나쁜 짓이다. 사실 그 경계가 애매할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그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 역시 어떠한 선택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될지 몰라도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줌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편견, 도덕적 오만, 나쁜 게 뭐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줄 안다는 생각을 화끈하게 부셔주는 그런 소설입니다.

 

# 3.

간단한 책에 대한 소개에 이어 <디너>의 북트레일러도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지는 저녁 식사, 포도주와 랍스터가 등장하는 그곳에서 바로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책의 목차 역시 독특합니다. [아페르티프(Aperitif, 서양 요리의 정찬에서 식욕 증진을 위하여 식전에 마시는 술)], [애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 [소화제], [팁] 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과연 이러한 구성을 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조승연 작가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사실 이것은 구성이 아니라 이 책의 핵심이에요. 유럽에서 또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고위층이 고급음식점에 가서 절차에 맞게 완벽하게 갖추어진 구성 안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것은 현대 소비사회가 가진 모든 가식을 한군데다 모아놓은 거거든요. 이러한 식사 환경을 여러 번 겪어 본 유럽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족끼리 모여있는 데에도 서로 근본적인 이야기를 서로 못하게 되지요. 그 이유가 뭐냐. 이게 서양사회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현대 사회의 소비적 가식, 옷을 챙겨 입고 어떤 절차에 맞추어서 고상한척하면서 비싼 것을 소비해야 하는 그 사회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고 남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제한되고 또 우리 자녀 문제라든지 인종차별문제 환경적인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직접적으로 접근을 못 하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고 있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급 음식점 외에 다른 어떤 세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4.

나이스 가이 에디 : “C’mon, throw in a buck(자, 어서 돈 내).”
미스터 핑크 : “Uh-huh. I don’t tip(어, 난 팁 같은 건 안 줘).”
나이스 가이 에디 : “Whaddaya mean, you don’t tip(팁을 안 주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미스터 핑크 : “I don’t believe in it(난 그런 거 믿지 않는다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저수지의 개들> 중에서

처음 원고를 읽기 시작했을 때,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인용된 대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책을 읽고 나서도 그 대사를 서두에 배치한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에 너무 몰입했기에 차마 그 대목이 왜 인용되었는지 물어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인상 깊었던 대목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패널로 등장한 세 명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시금 스티브 부세미(네,, 미스터 핑크 역을 바로 스티브 부세미가 연기했지요)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과연 헤르만 코흐는 어떠한 의도로 이렇게 작품을 시작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이슈에서 조금 비켜서서, 왜 이 책이 유럽에서 백만 부 이상이 팔렸는지 고민해보면서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드네요. 물론 오랜만에 <저수지의 개들>도 다시 한 번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아마도 다시 즐거운 책 읽기가 시작될 것 같네요.

 

“도덕의 기준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빛나는 희비극. 독일의 소설이 통찰이나 우울함에 중점을 두고 즐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네덜란드 소설은 배후에 숨겨진 재미, 블랙유머로 전복시킨다.”

_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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