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경 소설 <마리의 사생활>
#1. 은행나무 노벨라 네 번째 시리즈
사랑의 시작은 우리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부터가 아닐까
얇고 예쁘면서도 트렌디해서 더 눈길이 가는 노벨라 시리즈! 네 번째 책인 <마리의 사생활>을 소개합니다. <마리의 사생활>은 ‘20대 중반 여성인 제가 딱 타겟 독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짧지만 굵게 여운을 주는 중편소설입니다. ‘마리’라는 세련된 이름과 ‘사생활’이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 조합의 정체는 무엇일지 궁금하시죠. <마리의 사생활>을 두 줄로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단단하게 닫힌 마음에 마리가 빛처럼 들이쳤다
관계의 시작과 끝이 서툰 당신을 위한 이야기
#2. ‘말희’와 ‘마리’
혼자 오래 산 독거남녀, 부모님 곁을 떠난 적 없는 캥거루족이 낯선 타인과 룸메이트로 살게 되면서 각자가 꿈꾸는 홈쉐어(HOME SHARE)를 한다는 예능프로그램입니다. 점점 늘어가는 1인 가구의 추세와 함께 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에 취지가 있는데요. 과연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대뜸 같이 지내면 안 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이야기는 주인공 ‘하나’의 집에 ‘마리’가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엄마와 나, 이렇게 둘만 외톨이로 남았다고 생각하던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마리 때문에 어리둥절합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전혀 교류가 없었던 마리의 방문은 하나에게 전혀 예고되지도, 증후가 발견되지도 않았던 사건이죠. 게다가 자신의 어릴 적 친구는 못생기고 존재감 없던 ‘말희’였고요. 자신이 쓴 기억도 없는 편지 뭉치를 가지고 와 그녀의 친구였노라 증명하는 마리 때문에 하나는 잊고 있었던 자신의 예전 모습과 기억을 차차 떠올립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따위, 생각만 해도 귀찮게 느껴졌다. 내 삶에 마리가 끼어들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그게 다였다.”
-본문 21쪽
낯선 사람과 하하 호호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누구나 낯을 가리고 누구나 자신만의 틀과 벽이 존재합니다. 저는 상대가 언니, 오빠인데도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면 그때서야 ‘아, 내가 이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구나!’ 싶은데요. 말을 편하게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는 표시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쑥! 상대가 나의 틀에 균열을 만든다면 당연히 불쾌할 것 같기도 하고요.
오히려 본인보다 엄마에게 살갑게 잘 어울리는 ‘마리’를 보면서 ‘하나’는 불만이 많습니다. 그런 하나에게 하나의 절친한 남자인 친구인 ‘상준’은 “너는 …… 곁을 주지 않잖아.”라고 말해요. 상준이 보기에도 마리는 남들에게 곁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벽이 있던 아이입니다.
마리는 그런 성격입니다. 남들의 눈엔 차갑게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삶의 허무함을 일찍 깨달아버려서 변화를 무서워하고 보살핌으로써의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입니다. 난 청소년 시절에 다른 애들에게 어떤 느낌과 이미지로 자리매김 되어 있을까요? 나도 하나같은 이미지로 타인에게 자리잡혀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봤습니다.
#3. 잊고 지낸 나의 꿈과 가족
학창시절에 한 학기에 한 번씩 장래희망을 적어서 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사실 막연하게, 그렇지만 용감하게 장래희망을 써내려갔는데요. 점차 현실을 알아가고……저만 이런 건 아니겠죠. 저는 <마리의 사생활>을 보면서 제 학창 시절의 꿈과 친구들, 그리고 그들에게 기억된 나는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봤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노래를 흥얼 흥얼거렸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워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사실 저는 아직 청춘이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예전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점점 나이가 들수록 ‘곁을 주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조건 없이 타인을 대하고 판단한다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마리의 사생활>의 주인공 하나에게도 꿈이란 허무하게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자자, 그런 시시한 꿈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고요. 그런 무모한 꿈을 꾸기에 우리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잖아. 안 그래? 네 꼴을 좀 봐. 살 곳이 없어서 초등학교 동창에게 얹혀살고 있잖아.”- 본문 105~106쪽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기도 하죠. 특히 저는 ‘긴장과 불안으로 인한 피로가 싫어서 도망쳐왔는데 또다시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모순 사이에서 어리둥절’해하는 마리의 모습을 보면서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 옆에 가까이 있어서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비춰줍니다.
지금껏 엄마가 나의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엄마의 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본문 123쪽
#4. 여자의 적은 여자
혹시 마리는 무슨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닐까? 단지 남자를 피해 숨을 곳이 필요했던 걸까? 엄마와 나에게 그리고 상준에게 몹시 살갑게 구는 것도 어쩌면 뭔가를 감추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나하나 곱씹어보니, 마리는 마리가 아니라 말희 같기도 했다.
-본문 101쪽
마리가 나타난 이후에 하나에게 의구심, 분노, 질투, 오해의 감정들이 우수수 쏟아집니다. 아마 위 구절에 대해서는 남성 독자분들은 이해가 잘 안 가실 수 도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여자의 마음 파악하는 거라고 하잖아요(웃음)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는데, 복잡한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시는데 남성분들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의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였지만 존재감이 없었던 못생긴 ‘말희’, 그리고 대뜸 하나의 집에 찾아와 하나가 자신에게 써주었노라고, 그래서 그 편지에 용기를 얻었다는 당당한 ‘마리’. 그 사이에서 하나는 과거의 꿈, 현재의 사랑, 엄마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정의 내려봅니다.
부재중에 느껴지는 타인의 큰 존재감, 타인에게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언젠가부터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금기처럼 여겨진 우리의 이야기 <마리의 사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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