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갈망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사이코패스의 고백

야간시력

원제 JEG KAN SE I MØRKET

지음 카린 포숨 | 옮김 박현주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4년 12월 10일 | ISBN 9788956608266

사양 변형판 150x210 · 268쪽 | 가격 12,000원

분야 해외소설

책소개

사랑을 갈망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사이코패스의 고백

시적이고 탁월한 문장, 스산하고 매혹적인 이국의 감성

정적이면서도 타이트한 플롯과 스타일

글래스 키 수상 작가 카린 포숨의 걸작 북유럽 스릴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스릴러의 여왕’ 카린 포숨 신작 장편 《야간시력》은 살인을 저지른 한 중년 남성의 시점으로 악의와 선의를 동시에 갖춘 인간 내면의 심리와, 극한의 고독이 초래하는 참혹한 불행, 복지사회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담고 있다. 노르웨이의 한 작은 마을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과 한적한 호수를 배경으로 냉혹한 남자 간호사의 뒤틀린 내면 묘사와 이어지는 우발적 살인사건이 팽팽하고 밀도 있게 그려진다. 북유럽 스릴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자극적인 사건과 화려한 수사 기법 중심인 미국식 스릴러와 달리, 평범해 보이는 한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해 나가는 동시에 그가 벌인 행적을 낮은 톤으로 정교하게 전달하며 끝까지 숨통을 조여 오는 듯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1995년 발표한 장편 《이브의 눈》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로 등극한 카린 포숨은, 이후 발표한 여러 작품들로 북유럽 최고의 추리문학상인 글래스 키 상과 북셀러 상 등을 받으며 이른바 북유럽 스릴러의 지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스노우맨》으로 이미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 요 네스뵈 역시 거장으로 깍듯이 대우할 만큼 북유럽에서 카린 포숨과 그의 작품에 대한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파헤친 심리 스릴러의 신세계

이 소설은 무엇보다 주인공 캐릭터가 인상적이고 내면 묘사가 탁월하다. 겉으로는 평범한 요양병원 간호사처럼 보이는 주인공 나는 사이코패스다. 그러나 그간 우리가 흔히 접했던, 감정이 모두 증발되어 기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이성의 사랑을 갈망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뢰와 호의를 무시하는 이를 증오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감정선이 남아 있는 사이코패스다. 특히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들통날까봐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마음에 두고 있던 여인에게 진지하게 고백을 하는 등 그동안 봐왔던 어떤 사이코패스 캐릭터보다 강렬하고 독특하게 느껴진다. 주변 인물이나 살인 대상에 대한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며 독자 역시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구든 장점이 있다. 누구든 재능이 있다. 누구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썩어빠진 개인이란 존재하고, 나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선 정신이 나갈 정도까지 심술궂게 바뀔 수 있는 썩어빠진 개인. 하지만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낼 수 있다. 예의범절과 다정함, 친절을 흉내 낼 수 있다. 힘든 건 나쁜 충동을 억누르는 것이다. 종종 내가 통제력을 잃으면 일어날 일, 실제로 간간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 12쪽

또한 플롯의 긴장감과 흡입력을 끝까지 잃지 않으면서 군더더기 없이 사건과 심리가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어 이야기에 탄력을 더한다. 도입 부분에 다소 장황하게 이어지는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결과적으로 사건을 끌어나가는 중요한 단서들로 작용한다. 결정적인 순간 들킬 위험에 처하거나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을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서술하는 부분, 주인공의 상황이나 심리가 급반전을 겪는 부분 등은 특히나 섬뜩하고 강한 인상을 안겨주며 북유럽 심리 스릴러의 힘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의심이 서린 특별한 번득임. 나는 그런 것들에 무척 민감하다. 두 손을 펴고 손바닥을 살폈지만 살인의 흔적, 사악한 의도, 아른핀에게 느꼈던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잔주름에서 죄의식도 보이지 않았다. 내 손은 아주 깨끗했고 심장은 부드럽게 뛰었다. 회한도 없었다. 오직 경탄뿐이었다. 사건이 그렇게 빨리 일어나버렸다는 데 대해, 내가 완전히 끓어올라도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는 데 대해.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내가 정말로 살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고 회색 리놀륨 복도 바닥을 터벅터벅 걸었다.” – 126쪽

 

“고독해도 괜찮다.

다만 고독해도 괜찮다고 말해 줄 또 다른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고독의 잔혹한 결과물

오노레 드 발자크는 고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고독해도 괜찮다. 다만 고독해도 괜찮다고 말해 줄 또 다른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분명, 고독의 유전자를 타고난 듯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그 또한 자신의 고독을 이해해 줄 타인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고독을 나눌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을 바란다. 고독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다는 태생의 역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간시력》의 주인공 릭토르도 이렇게 역설적으로 고독한 사람이다. 그는 항상 곁에 있어 줄 여자, 타인을 원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고독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삼고 있다.

보통 소설이 1인칭으로 서술되면, 독자는 화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그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러나 《야간시력》을 읽는 이들은 주인공인 릭토르와 일치감을 느끼는 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분명, 릭토르는 소위 말해 사이코패스(혹은 정의에 따라 소시오패스)처럼 보이며, 그의 가학적 행동은 분명 한 인간이 고독했다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친 점이 있다. 그는 요양원에서 무력한 환자들을 괴롭히며 즐거움을 느끼고, 공원에서 만나는 낯선 타인들의 잔혹한 운명을 상상한다. 재난을 만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고, 유일하게 인간적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자 차갑게 응징한다. 또한, 릭토르 본인도 인정하듯이 그에게는 자신의 이런 가학적 성향을 설명할 만한 다른 전사(前史)도 주어져 있지 않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가 될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에겐 남에게 호감을 살 만큼 특별한 장점은 없었지만, 자신의 폭력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주인공인 릭토르는 사회적으로 분명 부적합한 인간이며, 사랑을 갈구하는 만큼 선뜻 사랑을 주고 싶지는 않은 인물이다.

이런 거리감에도, 작가인 카린 포숨은 남과 다른 릭토르에게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의 고독을 끌어낸다. 이 소설은 릭토르가 자신의 외로운 일상을 기술하는 전반부와 범죄가 일어난 후의 사건을 기술하는 후반부로 크게 나뉜다. 릭토르가 평범한 인간처럼 살아가는 전반부에서는 외려 그 악의 평범성 때문에 전율하고 그에게서 멀어진다면, 정작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이후의 릭토르는 동감하기 쉬운 인간이다. 그가 자기의 자리를 찾고 받아들여지려고 애쓰는 모습은 인간적인 동정을 자아낸다. 이는 우리가 한 번 이상, 혹은 수없이 시도했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절대로 남에게 보이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연에 내재한 모순, 누구나 고독하다는 명제와, 그럼에도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감정적 기술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해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야간시력’이라는 특별한 시각적 능력이다. 세상의 사물을 인식하게 해주는 에너지의 핵심은 빛이지만, 그 빛이 결핍된 상황에서도 사물의 형태를 감지할 수 있다. 릭토르는 다른 사람과 공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다른 기술과 감정은 부족하지만, 빛을 잃은 사물을 감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그가 말한 “죽음에 이끌리는 태도”도 이 야간시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메스테르 호수 옆 공원의 조각상, ‘웃는 여인’과 ‘우는 여인’처럼 인생에는 밝음과 어둠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낮과 빛, 웃음 속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세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듯이 밤과 어둠, 울음은 항상 곁에 있다. 그리고 분명 어떤 사람은 어둠과 울음 속에서 더 잘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인 ‘나는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다’가 뜻하는 의미도 이러할 것이다.

사회의 규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의 눈을 통해 세계의 의미를 꿰뚫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소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이를 범죄소설의 요소와 결합하는 것을 요즘은 흔히 노르딕 소설의 경향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야간시력》은 현재 노르딕 범죄소설의 심리 연구적 면모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린 포숨에게 유명세를 안겨 주었던 ‘세예르 경감 시리즈’와는 분리된 스탠드-얼론의 소설이지만, 작가가 꾸준히 추구했던 어둠과 눈(眼)이라는 주제는 공유하고 있다. 또, 스릴러적 요소로 구성된 《야간시력》은 비교적 가벼운 분량이기는 하지만 북유럽 사회가 겪는 문제들을 우회적으로나마 충실히 담고 있다.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치료와 보호, 보장연금으로 살아가는 한부모 가정이나 무연고 은퇴자, 타인의 불행에 대한 무관심, 사회 불안요소로 간주하는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처우 등의 질문들이 은연중에 제기되어 있다. 사회면에 자주 언급되며 민감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존엄사 또한 주요 소재로 다루어진다.

《야간시력》을 읽으면, 결국 범죄소설이란 어둠을 바라볼 수 있는 소설가의 시선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지나쳐 가는 공원의 풍경에서 사회 문제를 포착하는 자, 죽음을 향한 어두운 욕망을 이해하는 자, 우는 여인에게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가 소설가라고 카린 포숨은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울음을 보지 않으면 웃음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어둠의 모습을 명확히 직시하지 않으면 빛 속에 설 수도 없다는 것을. 마지막에 이르러, 릭토르가 맞은 비극적 결말은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이지만, 그 어둠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가 바라볼 더욱 어둡고 검은 풍경을 나 또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릭토르가 몰랐던 것은 누구나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어둠이 얇은 얼음과 같다는 것을 알고, 그 속에 발을 내딛지 않을 뿐이다. 모두가 고독을 알지만, 그 안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가끔 그 노력은 헛되기도 하지만, 그 노력만이 우리를 삶의 수면 위로 올려놓는다.

- 박현주 ‘역자 후기’ 전문

 

∎ 해외 서평

- 이 어둠의 신작을 통해 보여 준 긴박감 넘치는 묘사와 인상적인 심리 통찰은 가히 극찬받을 만하다. – NRK(Norwegian Broadcasting, 노르웨이 방송)

- 카린 포숨의 문장들은 생생하고 크리스탈처럼 투명하며 군더더기가 없어, 작품 안에서 그 내용과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리듬을 자아낸다. - <Dagbladet>(노르웨이 일간지)

- 독자들은 독보적으로 능란하게 구사하는 언어와 강렬함으로 인해 끝없이 내몰린다. - <Dagsavisen>(노르웨이 일간지)

작가 소개

카린 포숨 지음

1954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시집을 내면서 등단했다. 1995년에 발표한 범죄소설 《이브의 눈》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1996년에 발표한 《돌아보지 마》로 북유럽 최고의 추리문학상인 글래스 키 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7년에는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를 발표해 북셀러 상을 받았다. 다른 작품으로는 《야간시력》,《악마가 양초를 붙들고 있다》, 《광인의 집》, 《사랑스러운 푸나》, 《검은 시간》, 《요나스 에켈》, 《11월 4일 밤》 등이 있다. 카린 포숨의 소설은 유럽과 미국 등 34개국에서 번역·출간되었고, 많은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박현주 옮김

소설가, 전문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 《나의 오컬트한 일상 : 봄 여름 편》 《나의 오컬트한 일상 : 가을 겨울 편》 《서칭 포 허니맨 : 양봉남을 찾아서》, 에세이 《로맨스 약국》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를 썼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트루먼 커포티 선집,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과 에세이, 《야간시력》 《추방》 《바바리안 데이즈》, 《조용한 아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하우스프라우》로 제1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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