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댓글부대 “팀 알렙” 찻탓캇에게서 온 편지
2012년 대선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에 지속적으로 악플을 달았던 강남구청의 댓글부대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10일 스스로 ‘댓글부대원’이라고 밝힌 온라인 여론조작업체 ‘팀-알렙’ 멤버 찻탓캇 씨가 은행나무 블로그에 꼭 게재해달라며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더 이상 진실을 왜곡하고 싶지 않다며 양심선언을 한 찻탓캇 씨의 기고문, 함께 읽어보시죠.
저는 온라인 여론조작업체 팀-알렙의 멤버로, 찻탓캇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습니다. 팀-알렙은 돈을 받고 인터넷 여론을 조작해주는 회사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이 운영한 댓글부대의 영광과 몰락 이후에 생겨난 민간 온라인마케팅 업체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몇 번 오르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들고 개인병원이나 의류 쇼핑몰을 찾아다니며 계약을 따냈고, ‘저격’이라고 부르는 은밀한 의뢰를 받아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대상에 따라 ‘다음 대통령은 누가 나은 것 같아? 아무개는 영 시원치가 않은데.’ ‘와~~~ 진짜 독하게 생겨 처먹었네요~~~’ ‘너 알바지?’ ‘못 배운 티가 졸졸~~~ 흐르네용~~~’ ‘한때 강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 나이트 죽순이’라는 식의, 확인하기 어려운 모함도 자주 동원하는 수법을 주로 썼습니다.
저희의 단골 의뢰인 중 ‘합포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조직인진 모르겠는데, 합포회가 의뢰한 것 중 노동자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가장 슬픈 약속>의 흥행을 저지하라는 게 있었습니다. 아마 보고 감동하신 분들도 있을 텐데, 저희는 어렵잖게 그 영화를 망가뜨렸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큰 자부심을 느꼈지요.
합포회는 팀-알렙에게 몇몇 사이트를 불러주면서 그곳을 반영구적으로 타격을 입히면 거액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강남 및 신도시 ‘아줌마’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유명한 여초사이트 ‘줌다카페’였습니다. 왜 광우병 시위 때 유모차 부대를 조직해 내보냈던 그곳 말입니다. 그 사이트를 관찰하던 저는 이곳 역시 폐쇄성과 사이트 규칙 때문에 속으로 곪아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자신에게 벌점을 줄 수 있는 다른 회원들에게는 무조건 칭찬만 하고 커뮤니티 밖의 적에게는 그만큼 가혹해지는 문화가 형성돼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외부의 적이 일베와 시댁이었습니다. 비공개게시판에서는 ‘면상놀이’라는 게시물들이 유행이었는데, 자기 셤니(시어머니)와 시뉘(시누이)의 사진을 찍어 올리면 다른 유저들이 그 얼굴을 욕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이런 놀이 게시물을 일베에 폭로해 두 사이트가 서로 싸움을 벌이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그런 게시물 유출자의 가짜 신원정보를 슬쩍 흘려 줌다카페 회원들이 신상털이를 하게끔 유도했습니다. 미리 짜놓은 가상 인물에게 온갖 사이버 폭행이 가해지자 관련 증거를 모아 경찰에 고발했고, 300명이나 되는 회원들이 사이버명예훼손 처벌을 받게 된 줌다카페는 둘로 쪼개졌습니다. 이후 그곳은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최근 댓글부대 사건이 또 터진 모양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무원까지 동원한 민심왜곡. 소설 같은 얘기군요. 진실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댓글부대》라는 소설의 표지 이미지를 함께 게재했더군요. 팀-알렙의 소행은 아닙니다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나라 인터넷에 뿌리를 내린 ‘댓글부대’의 규모와 능력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겁니다. 설마 하는 동안 제3의, 제4의 댓글부대가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백 년 전 나치 독일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가 한 말인데, 제가 몸담았던 ‘팀-알렙’의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섬뜩합니까? 저도 무섭습니다. 지금의 인터넷 세계는 언제든 당신을 포섭하고 속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는 제가 드릴 말씀은 이제 그것뿐입니다.
찻탓캇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