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작가와의 만남-당신의 인생 그림책은 무엇인가요?

창의성이라는 말에 주눅드는 한국 어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는 최혜진 작가님. 창의성에 대한 키워드로 유럽 그림책 작가들을 바라본 10 편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었죠. 무려 ‘인터뷰 경력 10년’ 의 연륜, 6708km 어치의 열정과 현장감이 녹아 있는 <유럽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이번에는 작가님을 직접 만나 그 탄생 배경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어른들이 찾고자 하는 지혜, 그리워하는 근원적 에너지가 실은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 안에 모두 담겨 있음을 깨닫고 나는 전율했다. 공감 능력을 잃고 혐오와 조롱의 언어가 일상이 된, 벌레 먹은 한국사회를 해독할 성분이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럽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prologue 中

저는 2003년부터 10년 동안 패션지를 많이 내는 잡지사에서 피쳐에디터로 일했어요피쳐에디터는 패션과 뷰티를 제외한 모든 걸 다 하는 기자예요. 요리도 찍었다가 소설가 인터뷰도 했다가 인테리어 기사도 썼다가, 삶의 양식에 대해서 정말 잡다하게 취재하는 일이에요. 월간 잡지다 보니 한 달에 15일은 야근을 하며 밤을 샜죠. 그러다 2013년에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 보르도로 이사 가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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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안해도 돼! 이런 상태가 되니까 되게 좋을 것 같으시죠? 이것저것 자유롭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막상 보르도에 가서 주어진 의무가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이 닥쳤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느낀 건 우울함과 무력감이었어요.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삶의 터전을 옮기는 바람에 불어 공부를 못 하고 갔거든요. 처음 도착했을 때는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가게 된 서점 이름이 몰라’(mollat)예요. ‘몰라라는 가문이 120년 전에 만든 서점으로, 프랑스 독립서점계의 왕자 격인 곳인데 평수가 한 200평 정도였던 것 같아요. 엄청나게 크고요. 트람(보르도 시내에서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이 지나다니는 딱 중심에 있어서 시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서점이었어요. 외관도 하이패션 부띠끄처럼 잘 꾸며놔서 절로 시선이 가고 발길이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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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서점들은 서점 안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공간, 그러니까 햇빛이 가장 잘 들고, 제일 포근한 느낌이 드는 그런 위치에 있는 공간을 늘 아이들 용으로 내줘요. 어린이 책 코너를 발길이 가서 머물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로 해놓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도 서점을 가서 돌다 보니 제 눈길이 자연스럽게 어린이 코너로 갔던 거고요. 그건 뭐 제가 어린이 책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어요. 그림이 많으니까 불어를 못하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친근하게 느껴지긴 했지만요. 글씨 없는 책들부터 하나하나 보다가 어떤 그림책을 딱 만나서 우와, 하고 이게 뭐지? 한 거죠. 제 머릿속으로 인지하고 있던 어린이 책이 아니었거든요.한국에 있을 때도 저는 기사 아이템을 찾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서점에 갔어요. 근데 스쳐지나가면서 봤던 기억 속 어린이 책 코너는, 엄마들의 표정에서 근심의 아우라가 이렇게 막 퍼져 나오는 그런 공간이었어요. 프랑스 서점의 어린이코너에 갔을 때 정말 놀란 건 그것 때문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끌려오는 공간이 주는 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는 엄마들 표정. ? 내가 알던 서울의 엄마들하고 왜 이렇게 다르지? 싶더라고요. 그림책 보는 엄마들의 행복한 표정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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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빠져들고 나니 자연스럽게 만든 사람들이 궁금해졌어요. 직접 아뜰리에 찾아가서 붙잡고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나, 이런 것들을 물어보고 싶은 거예요. 제가 10년 동안 했던 일이 인터뷰였잖아요. 그때부터 16개월 동안 불어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23일 꼬박 25장 분량의 일 년짜리 연재 기획안을 짰어요. 어떻게 연재하고 출판한다 계획도 없이 그냥 막 짰던 거예요. 다행히 완성된 기획안을 전 직장에 있던 편집장님한테 보여드렸더니 좋다. 연재해보자.’ 하셔서 한 달에 한 명씩,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어요. 그림책 작가들의 창의력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저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 뼛속까지 성과주의에 찌든 영혼이에요. 그래서 이런 저의 솔직한 입장에서 그 프랑스 작가들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물론 열등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한텐 없고 저 사람한테 있는 것을 창의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창의성이란 것에 대한 저의 이해 수준이 굉장히 얕았던 거죠. 그래서 두 번째 인터뷰를 할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정형화된 서사가 없는, 마치 현대 미술 같은 책을 만드시는 에르베 튈레라는 작가님이셨는데, 그 때 제가  우리한테 없는 창의성을 만들려면 뭘 더 하면 됩니까?’ 라는 질문을 했어요.

심심해야 한다. 또 무언가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자극을 줬을 때 필요한 자극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아니오.’ 하고 말할 수 있는 게 창의성을 갖는 데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상상도 못했던 대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저는 창의성이라는 것을, 뭔가를 더하는 플러스로 접근했는데 이분은 마이너스를 얘기하신 거예요. 이후 자꾸 뭔가를 더하려고만 하는 관점들, 삶을 대하는 태도들을 돌아본 것 같아요. 한국의 아동도서는 시장은 규모로서는 정말 큰데 90퍼센트 이상이 전집으로 소모되거든요. 그중 팔리는 전집의 70 퍼센트 이상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더하려는 책들이에요.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어요.’ 라는 식의, 목적이 명확한 전집들이죠. 그게 몇 조 규모예요. 저는 한국 그림책 시장의 전집 문화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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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에 무슨 책을 넣었으면 아이에게 그 능력이 ‘짠’ 하고 부여되는 것처럼, 그림책을 무슨 레고 조립하듯이 생각하는 문화에 대해서요. 서른 중반인 제 친구들 보면 참 안타깝거든요. 의식 있고 자기 취향 명확했던 애들조차 애가 생기는 그 즉시 거실 벽면을 싹 치우고 전집을 탁탁탁탁탁탁 들여놓는 거예요.
저는 각자의 마음에 굉장한 울림을 주는 인생 그림책을 한 권씩만 엄마들이 제대로 만나면 한국 전집 문화의 기이함도 깨달을 것 같고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바라보는 시선도 굉장히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제가 준비해 해드리고 싶었던 얘기는 이정도로 정리된 거 같아요.

지음 최혜진 | 사진 신창용
분류 예술/대중문화 | 출간일 2016년 10월 20일
사양 변형판 175x216 · 312쪽 | 가격 17,000원 | ISBN 978895660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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