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언어로 역사와 기억, 인종에 대해 탐구해온 시인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퓰리처상 수상 시집

네이티브 가드

원제 Native Guard

지음 나타샤 트레스웨이 | 옮김 정은귀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2년 10월 12일 | ISBN 9791167372222

사양 변형판 140x209 · 104쪽 | 가격 12,000원

분야 해외시

책소개

역사에서 지워지고 기억에서 잊힌 존재들
그 이름 없는 무덤 앞에 시로 쓰는 비문

자신만의 언어로 역사와 기억, 인종에 대해 탐구해온 시인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퓰리처상 수상 시집

가장 중요한 현대 미국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대표작이자 퓰리처상 수상 시집 《네이티브 가드》가 출간되었다. 2000년에 발표한 첫 시집 《가사 노동(Domestic Work)》으로 릴리언 스미스 문학상과 미시시피 예술원상, 카베 카넴상을 모두 수상하며 데뷔와 동시에 시인으로서 이름을 알린 나타샤 트레스웨이는 이후 《네이티브 가드》를 포함하여 네 권의 시집을 발표했고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연속으로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되었다. 2020년에는 회상록 《메모리얼 드라이브》로 애니스필드 울프 문학상 논픽션 부문, 남부 문학상 논픽션 부문, 조지아주 올해의 작가 회상록 부문을 수상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며 시인이자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단단하게 다졌다.
《네이티브 가드》는 살해당한 어머니의 이야기와 보수적인 남부에서 혼혈로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리고 남북전쟁 당시 참전했으나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한 최초의 공식 흑인 부대 네이티브 가드의 이야기를 엮어 쓴 시 26편을 담은 시집이다. 미국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흑인 병사들의 희생, 남부에서 시인 자신이 겪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인종차별,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처럼 마주하기 불편한 주제를 우아한 형식으로 풀어낸 시들은 “총검처럼 날카로운 서정시”, “가슴 깊이 감동적인 비가”와 같은 찬사를 받으며 퓰리처상에 선정되었다.

망각된 나의 기억, 쓰이지 못한 우리의 역사
지워진 이야기를 다시 기록하는 일

나타샤 트레스웨이는 오래전 한 인터뷰에서, 역사에서 삭제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공공의 역사적 기록뿐만 아니라 가족사에, 가족 내에서조차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에, 침묵 또는 망각 속에 남겨지는 것들에, 그리고 우리가 듣게 되는 이야기 사이사이 존재하는 틈에. 그런 이야기들을 복원하거나 복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네이티브 가드》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공적인 역사에서 지워졌거나 누락된 존재들, 사적인 역사에서 의식적으로 망각된 기억들을 발굴하여 엮은 이 시집은 침묵당하고 삭제당한 존재들과 목소리들을 되살린다는 시인의 철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집을 여는 서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론들’에서 시인은 지워지고 잊힌 이들을 찾아가는 길 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미시시피 49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려보라, 일
마일 일 마일씩 표지판은 당신 인생의

매 순간을 째깍째깍 표시해주고.
(…)
당신이 지니고

가야 하는 것만 가지고 오라―두꺼운 기억의 책,
여기저기 비어 있는 페이지들. _’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론들’ 중

목적지는 미국 남부, 준비물은 빈 페이지가 있는 기억의 책이다. 시인은 엄마가 허망하게 죽은 곳, 미국 남북전쟁 때 참전했지만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한 흑인 병사들이 이름도 없이 묻힌 곳, 시인 자신이 흑인과 백인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인종차별을 겪은 곳으로 돌아가 정당하게 기록되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비어 있는 페이지에 적어 넣는다.
그렇게 완성해나가는 책은 시인 자신의 개인사와 미국 남부 흑인의 소외된 역사를 함께 엮어 쓴 새로운 역사서다. “시인에게 개인의 비극은 공적인 역사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옮긴이의 말) 보수적인 미국 남부에서 흑인 여성으로 태어난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어머니는 당시 불법이었던 백인과의 결혼을 감행하고 유능한 커리어우먼으로서의 길을 걸으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지만 백인 남편과의 이혼 후 재혼한 남편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시인은 너무 고통스러워 의식의 영역 밖으로 밀어두었던 이 기억을 되찾아와 개인의 역사에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곳에 써 넣는다. 지극히 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공적인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와 가정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다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어머니의 이야기는 시인 개인에게도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나타샤 트레스웨이와 그의 어머니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안전하리라 믿었던 곳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부정의와 불합리에 부딪혀 스러진 후 제대로 기억되지도, 기록되지도 못한 이들과 함께 묻혔다. “나는 지금 망자들의 이름 사이를 헤맨다: / 우리 엄마 이름, 내 머리를 누일 돌베개.”(19쪽) 어머니의 기억과 묘지를 찾은 시인의 발길은 자연스레 다른 망자들에게로 향한다.
어머니의 죽음이 망각되었던 것처럼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들도 있다. 남북전쟁 때 북부 연방 군대에서 최초의 공식 흑인 병사 연대로 인정받았던 ‘네이티브 가드’는 목숨 바쳐 싸우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공헌했음에도 미국 역사에서 완전히 누락되었다. 시인은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네이티브 가드에 속한 병사가 되어 일기를 쓰는 방식을 택한다. 당사자가 자신을 지운 역사 속에 자신의 존재를 직접 기입하게 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항은 꼭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항복의 백기를 들었는데 학살당한 경우―
포트필로에서 발생한 흑인 집단 학살; 우리의
새로운 이름, 아프리카 군단(Corps d’Afrique)―우리에게서
네이티브를 가져가는 단어들; 촌뜨기들과 자유민들―
자기 고향 땅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병자들, 불구자들,
잃어버린 모든 팔다리, 그리고 남아 있는 것들: 환상-
통, 텅 빈 소매에 떠도는 기억; 게티즈버그에서
돼지에게 먹힌 사람들, 무덤에 아무 표지도 없는
사람들; 모든 죽은 편지들, 대답 없는;
시간이 침묵하게 하고 말 사람들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전쟁터 아래에는, 다시 초록이 일고,
죽은 자들은 썩어가고―까맣게 잊고서, 우리가
밟고 있는 뼈의 발판. 진실을 말하자면. _’네이티브 가드’ 중

전쟁터에서 목격한 것들을 읊는 흑인 병사의 목소리는 일기라는 사적인 글쓰기 형식을 통해 더욱 솔직하고 꾸밈없는 증언이 된다. 이렇게 공적 역사는 사실 개인사와 다르지 않음을, 권력이 선택적으로 기록하고 엮어 ‘역사’라 이름 붙인 개인들의 이야기 밖에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도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북전쟁의 현장에서 다시 지금의 미국으로 돌아온 시인은 국가가 역사에서 지워버린 존재들, 사회가 추방해버린 존재들을 불러내어 목소리를 부여한다. ‘네이티브 가드’의 흑인 병사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가져와 그 위에 자신의 일기를 겹쳐 썼듯이, 약자들을 외면하고 소외시킨 이들의 흔적이 가득한 곳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겹쳐 쓴다. 여전히 강자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공고한 곳, 자신을 타자화하는 곳에서 시인은 원래 기록되었어야 마땅한 사람들, 말들, 사건들을 발굴하여 새로운 역사로 써 내려간다.

길들도, 빌딩들과 기념비들도 다
남부 연합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진 곳,

그 오래된 깃발이 아직도 걸려 있는 곳, 나는 돌아온다
미시시피로, 내 존재를 범죄로 만들어준

주(州)로―물라토, 혼혈―내 원래의 땅에서
내가 네이티브인데, 이곳에 그들은 나를 묻을 것이다. _’남부’ 중

토박이면서 속박된 이들
모든 슬픔과 고통을 함께 앓아야 하는 이들

“1966년생의 시인이 먼 미국에서 쓴 남부의 역사가 이곳 한국에서 어떤 독자를 만나게 될까? (…) 그 이야기는 오늘, 이 땅에서 한국어의 옷을 입고 누구에게 가닿을까.” _’옮긴이의 말’ 중

시인의 개인사와 미국 남부 흑인의 역사는 우리와 상관없는 것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타샤 트레스웨이는 “내가 쓰는 글 속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 그들의 특정한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그들에 대해 무언가 알게 되고, 그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를, 그로 인해 인류 공동체를 확장할 수 있기를 원한다”라고 한다. 끔찍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된 시인의 어머니나 남북전쟁에서 싸운 흑인 병사들의 이야기는 멀게 느껴질 수 있으나, 가정 폭력에 고통받다가 목숨을 잃은 여성과 국가권력에 의해 억압당하고 지워지는 약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렇게 목소리를 뺏기거나 잃은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그 행위를 통해 그들에게, 또 그들 안에 있는 우리에게 힘을 준다. 미시시피 49번 고속도로 위로 초대받은 독자들은 이 여정을 따라가며 시 속에 그려진 존재들의 삶을 목격하고, 단순히 지켜보는 것을 넘어서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에 함께하기를 요청받는다.

사전을 찾아보면 ‘네이티브’의 첫 의미는, 놀랍게도, ‘토박이의’가 아니라 ‘노예나 속박의 상태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 나, 우리 각자, 우리 모두는 이 땅을, 내가 눈감고 있는 내 안의 모순들을, 외면하고 있는 이웃의 슬픔을, 국가의 운명을, 꾸밈없이, 속절없이 함께 앓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가드’가 되어야 할 것이다. _’옮긴이의 말’ 중

 

■ 추천의 말

“유창하게 쓰인, 가슴 깊이 감동적인 비가.” _맥신 쿠민(퓰리처상 수상 시인)

“이 시들의 우아한 형식은 마주하기 불편한 주제를 감춘다. 트레스웨이는 남부의 모순들을 아주 단단하게 통제된 구절 안에 담는 재능이 있다.” _〈워싱턴포스트〉

“층층이 이루어진, 뼈와 유령으로 가득한 역사를 꿰뚫고 밝혀 보이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는 트레스웨이의 신념이 드러나는 시집.” _〈세인트루이스포스트디스패치〉

목차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론들 · 10


남부의 초승달 · 15
나르시서스속(屬) · 17
묘지 블루스 · 19
몸이 말할 수 있는 것 · 20
사진: 1971년 눈 폭풍 · 22
증거란 무엇인가 · 23
글자 · 24
당신 죽음 후에 · 26
신화 · 27
해 질 녘에 · 29


순례 · 33
다큐멘터리의 장면들 미시시피의 역사 · 36
1. 킹 코튼, 1907년
2. 상형문자, 애버딘 1913년
3. 홍수
4. 늦었다
네이티브 가드 · 42
다시, 그 들판 · 50


목가 · 55
혼혈로 태어나는 것 · 56
어머니는 다른 나라를 꿈꾼다 · 58
남부의 역사 · 60
블론드 · 61
남부의 고딕 · 63
사건 · 64
섭리 · 66
기념비 · 68
네이티브 가드를 위한 비가 · 70
남부 · 72

주해 · 75
감사의 글 · 78
옮긴이의 말 | 증언과 애도: 역사를 발굴하는 시의 힘 · 80

작가 소개

나타샤 트레스웨이 지음

1966년 미국 미시시피주 걸프포트에서 태어났다. 홀린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문예창작으로,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에서 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총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첫 시집 《가사 노동(Domestic Work)》(2000)으로 릴리언 스미스 문학상과 미시시피 예술원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아프리카계 시인의 데뷔작에 수여하는 카베 카넴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2006년 발표한 세 번째 시집 《네이티브 가드》로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미 시시피주 계관시인으로 활동했으며,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연속 미국 계관시인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2019년부터 미국 시 인 아카데미의 총장으로 재임 중이며 현재는 노스웨스턴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은귀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시를 통과한 느낌과 사유를 나누기 위해 매일 쓰고 매일 걷는다. 때로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과 시가 그 말의 뿌리가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믿음의 실천을 궁구하는 공부 길을 걷는 중이다. 시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산문집 《바람이 부는 시간: 시와 함께》 (2019)를 출간했다. 우리 시를 영어로 알리는 일과 영미시를 우리말로 옮겨 알리는 일에도 정성을 쏟아, 앤 섹스턴의 《밤엔 더 용감하지》(2020)를 한국어로 번역, 출간했고,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Fifteen Seconds Without Sorrow)》(2016), 이성복 시인의 《아 입이 없는 것들(Ah, Mouthless Things)》(2017), 강은교의 《바리연가집(Bari’s Love Song)》(2019), 한국 현대 시인 44명을 모은 《The Colors of Dawn: Twentieth-Century Korean Poetry》(2016)를 영어로 번역, 출간했다. 힘들고 고적한 삶의 길에 세계의 시가 더 많은 독자들에게 나침반이 되고 벗이 되고 힘이 되기를 늘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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