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오에겐자부로상 수상작
오레오레
“소설적 상상력과 리얼리티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오에 겐자부로)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선택한 후계자
호시노 도모유키의
발칙한 상상과 사회 비판을 접목시킨 일본 현대문학의 쾌거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작가 생활 50년을 기념해 2006년에 ‘오에겐자부로상’을 만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이 출간되는 책들 가운데, 매년 단 한 권을 직접 선정해 ‘문학적 작품’으로서의 가능성과 성과를 인정하는 것. 2010년에 간행된 약 120편의 작품 중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호시노 도모유키의 화제의 소설 《오레오레》(은행나무 刊)가 우리나라에 출간됐다.
이 작품은 사소한 장난을 계기로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비현실적 설정은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스토리 전개를 바탕으로 읽는 이를 설득하고, 이에 더하여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인간 사이에서 사라진 신뢰와 배려 등 이 시대의 안타까운 모습을 영리하게 비판한다. 《오레오레》는 점점 사라져가는 소설적 상상력과 문학성을 모두 갖춘, 현대 일본문학이 낳은 신선한 이정표이다.
오레오레 俺俺 : 일본어로 ‘나’라는 뜻의 ‘오레(俺)’를 두 번 연달아 쓴 말로, ‘나야, 나’라는 의미.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야, 나”라고 말하며 아들인 척 흉내를 내 노년층의 돈을 뺏는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 일명 ‘오레오레사기’가 성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말이다. |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된 악몽 같은 세상
나, 히토시는 평소처럼 맥도날드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휴대폰이 내 쪽에 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그것을 들고 나와버렸다. 벨이 울렸다. 휴대폰 주인의 엄마다. 무시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고 있었고, 아들인 척 술술 거짓말을 내뱉었다. 돈이 필요하다고. ‘전화 속 엄마’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자기 아들 다이키’를 위해 돈을 보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화 속 엄마가 나를 ‘다이키’라고 부르며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당황한 나는 2년 동안 찾지 않은 나의 진짜 엄마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거기엔 다른 남자가 ‘나’의 행세를 하며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나예요. 히토시요”를 열심히 외쳤지만, 엄마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히토시는 점점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왜곡된 기억을 처음부터 사실인 양 이야기한다. 또 히토시는 처음에는 다이키가 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츠시, 히로미 등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물론 소설 속 누구도 그것에 일말의 의심 따위 품지 않는다. 히토시 자신조차도. 이쯤 되면 독자 역시 히토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히토시는 처음부터 히토시였을까?’
“나는 나를 삭제해버렸다”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린 현대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이 소설은 한마디로 ‘끝없이 내가 증식하는 이야기’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가 되어 있고, 그 ‘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물론 서로 ‘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나’를 만나 안정을 찾다가도 이유 없이 나는 ‘나들’을 서로 죽이게 된다.
작가 호시노 도모유키는 나와 다른 남은 전부 적으로 몰아가는 인터넷 문화 등 ‘나’만을 강조하는 현대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위화감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중심적이라는 의식 자체는 물론, 심지어 자신도 사라진 상황. 자기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 같은 것도 생각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믿을 수도 없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나아’라고 생각하며 나만을 지키려는 모습이 21세기 들어 현저해졌다.”
어느새 ‘다이키’로 살아가는 히토시, 맥도날드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히토시, 다른 ‘나’들과 있을 때 ‘오프’가 될 수 있기에 지금의 비정상적인 현실에 만족하는 히토시. 그 히토시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살아가는, 실은 너무나 외로운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의 무대배경이 되고 마는 인간 관계의 허망함, 나는 이 사회에서 누구와도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무한 경쟁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비꼬고 있다. 리얼한 현실을 기반으로 한 기발하고 발칙한 작가의 상상력 넘치는 《오레오레》 속 사회는 결국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악몽이다.
세상이 온통 속물들로 가득 차 있다 보니, 자기들이 얼마나 괴물인지 전혀 모르며 사는 거야.
평범한 사람이란 게 사실은 제일 괴물인 거지.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어떻게 개성적인 삶을 배울 수 있겠어?
“나는 나를, 나만큼은 믿고 싶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나’라는 존재에 대한 희망
《오레오레》 속 현실 모습은 결코 밝지 않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테마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그 이면으로 제기하는 사회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오히려 일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경험하는 친구나 가족과의 지극히 평범한 대화나 때때로 터져 나오는 유머 등을 타고 ‘자기 증식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문학성을 강조한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타파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 중 하나다.
히토시의 상황은 후반부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세상에는 온통 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삭제’라는 이름으로 나를 죽이기 시작한다. 암울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 안에서 희미한 희망의 빛을 던진다. “원래 작품이 어둡게 끝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다른 엔딩을 생각했다”는 호시노 도모유키. 현실은 암울하지만, 어딘가 돌파구가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본문 마지막 페이지가 주는 은근한 여운은 짧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아, 잠깐. 왜 이렇게 가슴이 벌렁거리지?
내가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필요했었던 적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내 인생에 언제 이런 적이 있었는가.
내가 허기 속에서 찾아 헤맸던 건 먹을 것 따위가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이 감각이었다.
제1장 사기 詐欺
제2장 각성 覺醒
제3장 증식 增殖
제4장 붕괴 崩壞
제5장 전생 轉生
제6장 부활 復活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