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에게

지음 최영미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4년 3월 4일 | ISBN 9788956607504

사양 변형판 128x190 · 108쪽 | 가격 9,000원

분야 국내시집

수상/선정 제5회 이수문학상 수상작

책소개

허위와 탐욕의 한국 사회를 겨누는 불온한 시의 화살!
―제5회 이수문학상 수상작 《돼지들에게》 개정판 출간

2005년 출간되어 8년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던 최영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가 새로운 표지와 장정으로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성공 이후 펴내는 시집마다 대담하고 거침없는 언어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그의 시적 실험과 성찰은 《돼지들에게》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돼지들에게》는 크게 나누어보면, 풍자의 형식을 구현하고 있는 ‘돼지들에게’ 연작과 축구에 관한 시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시편, 그리고 일상의 절망과 재발견을 담고 있는 서정시편 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돼지들에게’ 연작은 일상 속 한국 사회의 허위와 탐욕을 비꼬는 세련된 메타포와, 쏜 화살처럼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언어들로 가득 차 있어 읽는 이에게 통쾌함과 뜨끔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2006년 “한국 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 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 이유를 구현한다”(심사위원 유종호)고 평가받으며 제5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던 이 시집은 우화적 분위기의 연작시들에 등장하는 ‘돼지’와 ‘여우’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진주’는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출간 당시 문단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 ‘시인의 말’에서 그는 당시의 논란을 의식한 듯 작중 의도를 일부 드러내며, ‘돼지’와 ‘진주’의 비유를 통해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약자에 대한 강자들의 횡포와 탐욕을 비판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시 속에 등장하는 돼지와 여우는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주무르는 위선적 지식인의 보편적인 모델이며, ‘<돼지의 변신>을 쓰기 전에 머릿속에 생각해둔 ‘아무개’가 있었으나, 시를 전개하며 나도 모르게 ‘그’를 넘어섰다’고 당시의 소회를 털어놓고 있다.

‘진주’를 탐내는 ‘돼지’와 탐욕스러운 ‘여우’, 우리 시대의 우화 詩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허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

_<돼지들에게>에서

‘돼지’와 ‘여우’, 그리고 ‘진주’로 비유되는 탐욕과 교활, 그리고 숨겨진 순수의 구조는 돼지와 여우, 진주의 러브 스토리로 풍자된다(<비극의 시작>, <여우와 진주의 러브스토리>). 진주를 탐내는 돼지와 여우의 탐욕스러움과 교활함은 진주를 은근히 유혹하는 대목에서 극에 달한다. 돼지와 여우, 진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층위로 읽힐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돼지와 여우로 상징되는 대상들에게 정파를 가리지 않고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위선에 가득 찬 지식인들뿐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일부 세력의 횡포와 탐욕도, 폭압적인 북한 정권도, 미국 제국주의도 모두 ‘돼지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 앨범에는 이십대가 없다
입학식과 졸업식만 있지 중간이 텅 비었다
셔터를 누르는 몇 초 만이라도 편안히 멈추어
나를 응시할 계절이 없었으니-
누가 누구와 친한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이미지에 불과한 종잇조각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할까봐
우리는 우리의 싱그러운 젊은 날들을,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을 기념하지 않았다.

_<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에서

‘돼지들에게’ 연작이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시인의 면모를 드러내주었다면, <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라는 작품은 시인의 진정성과 언어 조탁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 시인과 평론가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등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어느 날 시사 월간지 기자가 원고를 청탁하며 대학 때 찍은 사진을 달라고 부탁했고, 마땅히 줄 사진이 없었던 그는 이에 영감을 얻어 단숨에 시를 써내려갔다.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 ‘뻥 뚫린 부재’, ‘빼앗긴 봄날’ 등의 시어를 가만히 곱씹다 보면 뻥 뚫린 채 비어버린 시인의 한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려 절로 가슴이 저며온다.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_<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에서

3부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정신’에 실린 일련의 시들도 독특하다. 축구로 정치 세태와 인생을 풍자하는 그의 재치는 통찰 어린 시선에 힘입어 더욱 유쾌하게 읽힌다. 그녀에게 축구는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운동장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는 신선한 발견이며, 이미 너무 많은 위선과 거짓으로 덧칠된 세상에서 오로지 축구만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순결하고 공정한 장이다. 기꺼이 이 시집의 한 부가 바쳐진 ‘축구’란 장르는 어쩌면 관습을 파괴하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녀의 위험스런 모험과 닮은 듯 보이기도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씌어진 詩의 무늬

최영미 시인의 시는 해석 불가능한 시, 형식과 문법 파괴 등 이른바 전위적인 시들의 계보에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충분히 당혹스럽고 또한 강렬하다. 진정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솔직한 고백으로 씌어진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랑 그리고 운명에 대한 질문은 최영미 시의 근간을 이루며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한 끼의 밥을 위해 건들건들 건널목을 건너”(<건널목을 건너며>) 가는 사십대의 생활이 엄연한 현실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44년 동안 미역국을 끓여주시는 어머니의 성가신 애정에 콧날이 시큰해지는(<44년 전의 오늘>) 그런 일상의 힘들이 절망에서 우리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된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시인은 이야기한다. 때문에 “배반당하더라도/이 지저분한 일상을 끌고 여행을 계속하련다(<런던의 실비아 플래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최영미 시인에게는 ‘차가우면서 들끓는 시인’, ‘그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시인’ 등등 수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이 시집의 시들을 읽다가 나는 자칫 그 원고를 떨어트릴 뻔했다”는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그의 불온하며 강철처럼 단련된 시들이 2014년의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자못 궁금해진다.

산다는 건 내게 치욕이다.
시는 그 치욕의 강을 건너는 다리 같은 것.
내가 왜 어떤 항구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었는지,
돌아갈 고향이 없는 나그네처럼 떠돌았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나직이 풀어놓을 힘이 내게 남아 있으면 좋겠다.
해변에 엉거주춤 서 있는 저 가엾은 백로들도
훌훌 털고 비상할 때가 있으리라.

_<바람 부는 날>의 詩作 노트에서

 

 

■ 추천의 글

이 시집의 시들을 읽다가 나는 자칫 원고를 떨어트릴 뻔했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거짓과 속임수에 대한 가차 없는 공격이 나를 전율케 한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 시 한 편 한 편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체험된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_신경림(시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 고 세상에 폭탄선언을 하던 그가 오늘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멀리서 빛난다’고 한다. 그럴 때 그의 시편들은 형태 없는 아름다움 같고 단단한 허무 같다. 생은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라는 그의 시 속에는 비애스런 비명이 살고 있다. 참으로 육체와 영혼에 대한 어떤 문답이 서늘하게 박히지 않는 이 시대에 최영미는, 죄가 있다면 세상을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아프게 토로한다. _천양희(시인)

목차

1부 순진의 시련

돼지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여우
돼지의 변신
비극의 시작
여우와 진주의 러브스토리
돼지의 본질
권위란 2
앵무새들
최소한의 자존심
Korean Air

2부 내 영혼의 수몰지구를 찾아서

굳은 빵에 버터 바르듯
햇빛 속의 여인
서울의 방
대화 상대
알겠니?
황혼
바람 부는 날
한국 영화를 위하여
서른아홉
세기말, 제기랄
옛날 시인

3부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정신

축구는 내게?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남북축구대회에 나타난 반공의 딸
닮은 꼴
인생보다 진실한 게임
공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는다
나는 왜 수비수가 되었나
인간의 두 부류

4부 달리는 폐허 위에서

노트르담의 오르간
베르사유의 가을
“ICI REPOSE 여기 쉬다”
베니스의 유령
발자크의 집을 다녀와
런던의 실비아 플래스
외국어로 고백하기
지중해의 노을

5부 짐승의 시간, 인간의 시간

건널목을 건너며
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
산과 바다
시대의 우울
권력의 얼굴
짐승의 시간
44년 전의 오늘
이장(移葬)
육체와 영혼에 대한 어떤 문답
눈 감고 헤엄치기

시인의 말

작가 소개

최영미 지음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5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후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내가 사랑하는 시》를 출간했다. 2005년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를 발표했고, 산문집으로 《시대의 우울:최영미의 유럽일기》,《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번역서로 《화가의 잔인한 손 : 프란시스 베이컨》, 《그리스 신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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