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인간이 이름 붙인 추상적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

질병, 영원한 추상성

지음 최은주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4년 9월 26일 | ISBN 9788956607993

사양 변형판 107x177 · 176쪽 | 가격 8,000원

시리즈 마이크로 인문학 5 | 분야 종교/인문

책소개

질병은 인간이 이름 붙인 추상적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
―‘삶’으로서의 질병, 인간이 부여한 그 역사를 좇다

 

일상 속 가장 흔한 위험인 ‘질병’. 수술을 받아서, 이름도 복잡한 약제를 한 움큼 삼켜서, 운동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야 할 상태로 간주된다. 현대사회에서는 마치 젊음이 건강이며, 건강이 정상인 듯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와 대척점에 있는 질병은 비정상인 것일까?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먼 옛날에는 질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아픔, 쓰림, 불편함 등의 증상들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인간이 증상을 분류하고 여러 증상을 묶어 하나의 병으로 명명함으로써 비로소 질병이 탄생한 것이다. 이때부터 병증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생의 과정이 아니라, 건강이라는 이름의 정상 상태로부터 구분된 비정상적인 상태로 지정되었다.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 『질병, 영원한 추상성』은 이러한 질병의 추상성에 주목한다. 저자는 15편의 문학 작품들을 통해 병증과 고통이 역사와 문학, 삶 전반에 걸쳐 어떻게 다양하게 인지되어 왔는지, 사회와 일상에서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지 보여 준다.

 

질병은 시대마다 탄생하고 유행하는 것이다

 

‘건강’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것처럼, ‘질병’의 기준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책에 인용된 “난시와 근시의 결점이 농경사회나 목축사회에서는 정상일지라도 항해사나 조종사에게는 비정상이다.”라는 캉길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같은 증상이라도 시대의 필요에 따라 질병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질병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이 이름을 부여하고 특질을 규명한 역사만을 갖는다. 이에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로부터 우리나라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들어 인간이 질병에 부여한 역사를 좇는다.
소포클레스의 서사시 『오이디푸스 왕』에 등장하는 질병은 윤리적인 과오에 대한 징벌이었다. 샬롯 브론테의 『빌레트』의 독신녀들은 처녀도 가부장제의 현모양처도 아니라는 이유로 질병을 부여받아 ‘불능’하게 묘사된다. 『댈러웨이 부인』의 셉티머스는 신경쇠약으로 인해 낙오자로 분류되어 사회적으로 숨겨지는 ‘요양원행’을 지시받는다. 『인형의 집』에서도 『드라큘라』에서도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서도, 질병은 저주, 비정상적인 상태, 사회적으로 배척받아야 할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페스트』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와 같이 개인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는 전염병에 이르면 질병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 된다. 병의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삶이 파괴되는 양상 자체가 질병이며, 병증을 통해 인간의 치부가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지 여실히 그려진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는 콜레라와도 같은 상사병, 노화의 온 과정에 거친 기다림, 콜레라를 빌미로라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사랑 등이 등장한다. 평생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프리다 칼로처럼, 자잘한 고통을 달고 살아가게 되는 노인들처럼, 질병은 곧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이 책은 삶으로서의 질병에 관한 것이다. 질병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개인의 삶에 두루 나타나면서 여러 가지 해석학에 맞춰져 의미화되었다. 구조화된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에서 비정상으로 분리되었고, 무엇보다 의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치료약 덕분에 제약회사와 대중매체에 의해 질병이 만연하였다.
_본문 중에서

 

\질병은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이기도 했고,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을 제외하는 구실이기도 했다. 원인 모를 떼죽음도, 속쓰림도, 수줍음 많이 타는 사람도, 노화의 증상들도, 모두 의사들이 ‘진단’하기 전까지 인간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마치 그 유명한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페스트로, 위 식도 역류로, 사회 불안장애로, 류머티즘, 알츠하이머, 동맥경화와 같은 각각의 병명으로 이름 붙여지는 그 순간 질병이 탄생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병명이 정해졌기 때문에 질병이 삶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배척되는 것이다. 질병의 명명은 일상을 의학기술의 기준에 맞추어 비정상으로 만든다.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더 악화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지는 것이다. 이 위험에 대한 공포는 대중매체에 의해 확산되고 보험, 영양제, 헬스클럽, 건강식품 같은 자본주의의 굴레를 키워나간다.
이에 저자는 내 몸과 내 병증에 대한 진단이 의학기술과 대중매체의 신화가 아닌 오로지 나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의학기술의 틀이나 의사의 진단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내 고통에 관여하여 질병으로 나타나는 내 고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기술과 대중매체가 강요하는 건강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는 모두 질병 보유자가 된다. ‘내’가 느끼는 고통, ‘내’가 골라내는 비일상성을 생각할 줄 알아야만, 질병이라는 추상성의 세계가 조성하는 위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우리는 모두 질병 보유자?
.. 시빌과 스트럴드브러그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잠정적 환자 상태

1장 야누스의 얼굴
.. 죄와 벌
.. 의도된 해석

2장 그녀에게 생긴 일
.. 새로운 세계
.. 윙 비들봄의 손
.. 법의 개입과 개인의 선택

3장 직소퍼즐 같은 몸
.. 어머니, 한 여자
.. 침묵의 세계

4장 도시를 폐쇄하라
.. 말, 말, 말
.. 장님의 우화

5장 콜레라와 상사병
.. 노년의 법칙

6장 아브라카다브라
.. 날건 말건?!

7장 뫼비우스의 띠
.. 불신과 맹신

Micro Note

작가 소개

최은주 지음

건국대에서 영미문학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건국대와 백석대에 출강하고 있다. 어린 시절 많이 아팠던 경험 때문에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의학적·사회문화적 해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인문학 강의를 하였다. 지금은 빅토리아 시대 문학의 질병서사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인정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의 ‘좋은 삶’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현실과 예술적 기능으로서의 자살 이미지」, 「대도시 삶에서의 관계의 운명과 감정의 발굴」 등의 논문과 『그로테스크의 몸』(공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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