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젊은 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청동정원

최영미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4년 11월 1일 | ISBN 9788956608099

사양 변형판 152x210 · 320쪽 | 가격 13,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4월에 이미 우리는 5월의 냄새를 맡았다……

섬세한 언어로 그려낸 청춘의 아픔과 사랑 그리고 절망

 

시인 최영미가 26년 만에 완성한 청춘소설 청동정원출간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최영미의 장편소설 《청동정원》이 출간되었다. 1994년 한 해 동안 5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이후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등의 시집과 산문집 《시대의 우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등을 펴내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 활동을 펼쳐왔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청동정원》은 2013년 여름부터 1년 간 계간 《문학의오늘》에 연재한 글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군사 쿠데타에 맞서 민주화의 불꽃이 뜨겁게 타올랐던80년대, 폭압적 정권에 맞서 앞장서지도, 그렇다고 뒤로 숨을 용기도 없었던 ‘경계인의 초상’을 그려냈다. 제목으로 쓰인 ‘청동정원’은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과 겹쳐지는 풍경을 묘사한 표현으로, 쇠와 살이 부딪치던 시대의 분위기를 은유한다. 소설가의 눈, 시인의 가슴으로 그려낸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젊은 날의 풍경이 작가의 섬세한 언어로 되살아난다.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작가는 퇴고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서사 구조를 재구성하여 연재 당시와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재 초 지면을 통해 작가는 이 소설의 초고를 1988년에 이미 써놓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훨씬 전이다. 그는 원고지 200장 남짓한 원고를 25년 동안 간직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고치고 다시 쓰며 여러 개의 파일이 만들어졌다. 《문학의오늘》에 발표하기로 마음먹고 파일을 정리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다. 작가에게 ‘80년대’라는 화두는 언젠가는 끝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26년 만에 완성한 《청동정원》은 작가 최영미가 격동의 시대에 꽃다운 이십대를 보낸 386세대에 바치는 헌사다.

 

늘 다양한 콘텐츠로 독자를 만나왔던 은행나무는 이번 《청동정원》 출간을 기념해 《청동정원》 오디오북을 자체 제작해 선보일 예정이다. 아나운서와 배우로 활동 중인 임성민 씨의 목소리로 낭독되는 《청동정원》 오디오북은 소설의 일부를 담은 시디를 통해 초판에 한해 무료로 제공된다.

 

사랑과 혁명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서 돌아보다

 

유신의 위세가 삼엄하던 여학교에서 수업거부의 선봉에 섰던 내가, 뭘 해도 용인되던 ‘서울의 봄’에 캠퍼스의 순한 양으로 지낸 이유를……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다. _본문에서

 

어느 날 홈커밍데이를 맞아 모교인 S대에 방문하게 된 이애린은 젊음의 열기, 활기로 가득한 교정을 둘러보며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관악산 유원지 입구에 자리 잡은 ‘강 건너’라는 주점이 추억의 물꼬를 튼다. 81년 4월, 선배들이 주는 술을 묵묵히 받아 마시며 파쇼, 광주, 투쟁과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가슴으로 흘러드는 동안, 애린은 명문대학 다니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군인 출신 아버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며 자긍심을 느끼는 어머니로부터, 또한 착한 딸, 착한 학생이고자 했던 자신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한다. 그날 이후 그녀는 저녁 귀가가 늦어졌고 치마보다 바지를 즐겨 입게 되었고,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나쁜 딸’이 되었고, 시위대에 섞여 한강을 건넜다.

소설은 애린의 70년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공부 잘하고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란 애린은 수업 거부 운동을 펼칠 정도로 반골 기질이 다분하지만, 대학에 가면 연애소설의 주인공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하리라 꿈에 부풀어 있는 평범한 여고생이기도 하다.

80년 봄 박정희 대통령 사후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시국. S대 인문대에 입학한 애린은 잔디밭에 화인으로 새겨진 ‘자유 민주주의 만세’를 보고 의아해한다. 청바지와 통기타뿐일 것 같았던 대학의 다른 풍경이 그녀의 눈엔 너무나 살벌해 보인다. 애린은 예쁜 옷과 맛난 음식에 탐닉하고, ‘백마 탄 기사’를 기다리며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꿈꾼다. 여학생들 중에 키가 크고 눈에 띄는 미모를 가진 그녀는 곧 남학생들에게 여러 번 프러포즈를 받는다. 그러나 연애만 하기에, 사랑만 하기에 학교는 집회로, 시위로 연일 시끄럽다. 그러한 현장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내던 이듬해 어느 날, 그녀는 운동권 선배 언니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다. 말을 못하고 이론에 약해 백치미,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뒤로 숨지 않았고, 독재 권력에의 저항 의지는 있지만 앞장설 용기는 없었던 그녀는 경계인(회색인)으로서 대학 생활을 영위해간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운동권 선배이자 정치학과 대학원생 동혁에게서 백마 탄 기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게 빠져 학생 신분으로 결혼을 한다. 그러나 집안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하게 된 그와의 동거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동혁이 애린에게 가하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이 독재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서였다. 결국 그녀는 수개월 만에 이혼하고, 한 선배의 권유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는데……

 

사랑과 혁명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서 돌아보는 자의 애수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통과하며 그 어디에 있었든……

 

데뷔 이후 20여 년 동안 작가 최영미가 유일하게 청탁을 거절해온 주제가 한 가지 있다. 바로 ‘80년대’다. 386세대 시인으로 알려진 작가에게 ‘80년대’는 몇 매 또는 몇십 매의 분량으로 정리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청동정원》이 시가 아닌 소설로 쓰여진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시로 못다 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집필 의도다.

작가는 소설에서 “스무 살의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고 말하며 시대의 비극성과 함께 청춘의 아픔과 사랑, 절망을 섬세하고 생생한 언어로 그려낸다. 뜨겁게 분노했지만 앞장서 싸우지 못했던, 그럼에도 변혁을 꿈꾸며 이십대를 보낸 수많은 경계인들에게 작가는 이제 그만 부채감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통과하며 그 어디에 있었든, 각자의 방으로 돌아오면 쓸쓸하고 불안한 개인일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에게……

역사는 집단의 기억을, 문학은 개인의 기억을 다룬다. 역사보다는 문학이 더 깊게 시대를 드러낸다고 작가는 믿는다. 애린의 기억에 의해 《청동정원》에 새겨진 세계는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에게 조금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어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싱그러운 청춘을 옭아매는 도구는 모습만 바뀌었을 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여전히 황폐하고 고통스럽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청동정원》은 어쩌면 지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세태를 풍자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통과하며 어디에 있었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모두 개인이었습니다. 이애린의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영혼에 각인된 흉터와 무늬를 그려내는 작업에 성공한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_작가의 말에서

 

추천사

 

시작부터 거침이 없고 자유분방한 이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소설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생생하고 젊은, 디테일이 세세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의 힘 덕분이다. 지난 세기 80년대의 청춘이 짙푸르게 되살아나 지금, 이곳 우리 모두의 삶과 운명에게 응답하라고 노크한다. _성석제(소설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저 1980년대의 뜨거운 화인에 데여 신음하던 영혼들을 위로해주던 최영미 시인. 그녀가 오래, 그치지 않고 써온 일기장에서 뽑아올린, 그 오래된 청동정원의 사랑과 절망을 이제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 저 회색빛 시대가 선사한 순수한 감수성을 무기로. _방민호(문학평론가)

 

젊은 우리는 그랬다. 숨쉬기도 어려웠던 묵직한 공기 속에서 시대를 익히고 세상을 살았으며 청춘을 펼쳐나갔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헤엄쳐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돌아보고 있다. 4월의 신록처럼 싱싱했으나 ‘청동정원’에 갇혔던 그 시절 우리의 고뇌는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최영미 작가는 묻는다. 이 시대는 무슨 색이며, 그런 정원 안에서 당신은 어떤 빛으로 살고 있느냐고. _이금희(방송인)

목차

프롤로그
1장 아름답게 꽃 필 적에
2장 훌라훌라
3장 강을 건너
4장 아무도 위로해줄 수 없는 저녁
5장 쇠와 살
6장 누구도 해치지 않을 농담
에필로그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최영미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5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후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내가 사랑하는 시》를 출간했다. 2005년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를 발표했고, 산문집으로 《시대의 우울:최영미의 유럽일기》,《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번역서로 《화가의 잔인한 손 : 프란시스 베이컨》, 《그리스 신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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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서평
[동아일보] 최영미 작가 “1980년대 아픔과 고뇌, 이제 말할 수 있어요”
최영미 작가, 신작 ‘청동정원’ 펴내… “88년 초고… 26년만에 숙제 끝내”

“1980년대를 생각하면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 앞에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단단한 철의 장막과 푸른 생명의 대비가 강렬해서 제목도 ‘청동정원’이라고 지었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작가(53·사진)가 자전적 성격의 두 번째 장편소설 ‘청동정원’(은행나무)을 출간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1년간 계간지 ‘문학의오늘’에 ‘토닉 두세르’란 이름으로 연재한 소설을 다듬어 단행본으로 묶었다. 맛있는 음식과 옷에 탐닉하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던 80학번 여대생 ‘애린’이 격동의 시대에 휘말려 변모하다가 작가가 돼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청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최 작가는 1988년 여름 원고지 450장 분량의 초고를 썼으나 25년 동안 비밀 일기처럼 남몰래 보관해 두었다.

그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낸 1994년엔 1980년대와 너무 가까웠다. 그래서 손대기가 너무 뜨거웠다. 지금에야 비로소 80년대가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큰 강물이 흘러가고 나니 작은 물줄기들이 보여요. 운동을 한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였죠. 애린이처럼 주변부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들의 고민이 더 깊었습니다. 시대에 묻힌 주변부의 작은 목소리들을 제 문장으로 복원하고 싶었어요.”


1985년부터 1990년까지를 다룬 5장 ‘쇠와 살’ 부분은 연재할 때도 쓰지 못했다가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서야 겨우 담았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든 자전적 소설이지만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그는 기자나 역사학자처럼 이 소설을 썼다. 그는 신문사 자료실을 찾아 당시 기사를 꼼꼼히 찾아 읽고, 1980년 광주항쟁을 묘사하기 위해 현장에 있었던 동창을 찾아가 녹취했다. 그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꼼꼼하게 고증을 했다”며 “80년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책을 읽으면서 당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26년 만에 숙제를 끝내니 후련하다는 그는 직접 고른 소설의 문장을 인용해 달라고 했다.

“스무 살의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중략) 이십여 년의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나는 자유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노는 법을 터득했다.”(46쪽)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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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27 11: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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