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실존을 치열하게 살아낸 자리에 피어나는 삶과 사람에 대한 찬란한 사랑
라일라
원제 Lila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3년 12월 15일 | ISBN 9791167373847
사양 변형판 130x190 · 508쪽 | 가격 19,000원
시리즈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6 | 분야 해외소설
폭풍 같은 실존을 치열하게 살아낸 자리에 피어나는
삶과 사람에 대한 찬란한 사랑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삶의 의미에 대한 강렬한 탐구이자,
사랑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희망에 대한 감동적이고 믿기 힘든 이야기.” _타임스
미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이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하나로 꼽히는 매릴린 로빈슨의 장편소설 《라일라》가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제16권으로 출간되었다. 로빈슨은 1980년에 데뷔한 이래 40여 년 동안 단 다섯 편의 소설을 발표한 과작의 작가지만 발표하는 작품마다 비평적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함께 받으며 미국 문학의 새로운 고전을 쓰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라일라》는 로빈슨의 네 번째 소설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와 독자의 마음을 끄는 매력을 모두 갖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버림받은 채 방치되었던 어린 여자아이 라일라가 오로지 생존만을 목표로 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후 존 에임스 목사를 만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실존과 삶의 의미, 사랑과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아름다운 책,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이야기. 읽고 나면 마치 새로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세상이 더 눈부시게 황홀하고, 경이와 신비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라는 찬사와 함께 또 하나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난 더는 길을 잃어버린 아이가 아니야”
외로움과 상실을 딛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
아이는 어둠 속에서 현관 입구에 있는 계단에 앉아 추위에 떨며 자기 몸을 껴안고 있었다. 울다 지쳐 잠들기 직전이었다. 더는 소리를 지를 기력도 없었고, 어쨌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 하지만 아이가 거의 잠들었을 무렵 길에서 달(Doll)이 나타나 너무나 불쌍한 상황에 처한 아이를 발견했다. 달은 아이를 안아 올리고 자신의 숄로 몸을 덮어주면서 말했다. “흠, 우리는 갈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할까?” _9-10쪽
소설은 어린 시절 기억에서 시작한다. 누구도 돌보지 않아 방치된 채 현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어린아이의 기억. 달이라는 떠돌이 여자가 황야의 천사처럼 나타나 아이를 훔쳐 달아난다. 달은 아이를 데려가 ‘라일라’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아픈 아이를 정성껏 먹이고 간호하고 씻기고 재우고는, 살라고 말한다. 라일라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름과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라일라는 달의 아이로 성장한다. 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노동자 무리의 일원으로 달과 함께 다니며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고, 먹어도 죽지 않는 것들이 뭔지,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은 어떻게 경계해야 하는지 배운다. 정작 본인은 글을 읽을 줄 모르면서도 달은 자신보다는 나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라일라가 학교에 다니며 글과 산수를 배울 수 있도록 한동안 노동자 무리를 떠나 작은 마을에 정착하기도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는 라일라를 납치한 것이나 다름없는 달에게는 한곳에 일정 기간 이상 머무르는 일이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지라도. 달은 라일라에게 살아남는 법을, 그러나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녀는 한 아이를 보살폈다. 그랬다, 그녀는 아이를 훔쳤다. 아마도 죽음으로부터. 외로움으로부터. 그리고 그 아이를 꽤 괜찮은 여자, 하루 품을 파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냈다. _220쪽
그러나 달이 예상치 못한 일로 더 이상 라일라와 함께할 수 없게 되자 라일라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 외로움 속에서 길을 잃고 수년간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어느 날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길리어드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교회에 우연히 들어서서 세례에 대해 설교하는 목사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목사가 하는 말은 이해할 수 없어도 촛불과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라일라는 교회에 몇 번 더 찾아가고, 어차피 이곳을 떠날 것이라면 목사에게 말을 걸어봐도 좋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어느 이른 아침 목사의 집에 찾아가서 인생을 바꿀 질문을 던진다.
라일라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기왕 온 김에,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난 최근에 그저 세상의 어떤 일들이 왜 그렇게 일어나는지 궁금해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아! 그렇다면 당신이 시간이 있는 게 다행이군요. 나도 거의 평생 그 문제로 고민해왔으니까요.”_54쪽
그 질문에서부터 라일라와 존 에임스 목사의 인연이 시작되고, 그와의 관계에서 라일라는 난생처음으로 과거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안정감을 느낀다. 소설은 새로이 찾은 안전함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왜 버려져야 했는지, 그런 자신을 안아 올려 보살펴준 달은 누구인지, 세상은 왜 그렇게 모질게 돌아가는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과거의 삶과 삶이라는 것 자체를 탐구해나가는 라일라 내면의 여정을 따라간다.
고통스러운 생존에서 희망의 실존으로
새로이 얻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한 여성의 담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달이 라일라에게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줬다면, 존 에임스 목사는 그렇게 살아온 경로를 되짚을 수 있는 말들을 가르쳐준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라일라는 가진 언어가 별로 없었다. ‘심기’나 ‘건초 만들기’처럼 때마다 해야 하는 일로 각 계절을 구분했을 뿐 계절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미합중국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몰랐다. 일거리를 찾아 농장과 과수원을 전전하며 살았던 노동자로서 대공황이 몰고 온 궁핍과 척박함을 온몸으로 겪었으면서도 라일라는 몇 년 후에야 그걸 대공황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계절과 미합중국, 대공황처럼 직접 겪고 살아내면서 몸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 그러나 언어가 없어서 누군가와 말을 할 수도, 혼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목사는 조금씩 언어를 찾아준다.
라일라는 실존에 관해선 조금 안다. 그것이 그녀가 아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노인에게서 배웠다. 마치 미합중국 같은 말이었다. 어쨌든 뭐라고 불러야 하긴 하니까. 밤과 아침, 자는 것과 일어나는 것. 굶주림과 외로움과 피로. 그러고도 여전히 그걸 더 원한다. 실존. _136쪽
이렇듯 먹고사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로서만 기능하던 라일라의 언어는 목사를 만나면서 점점 확장된다. 그러나 목사가 제공하는 종교라는 틀을 통해 ‘실존의 의미, 인간 삶의 의미’를 처음 마주하면서도 라일라는 목사의 세계에 그대로 편입되는 대신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내며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성경을 대하는 라일라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라일라가 성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 오래된 책에 놀랍게도 라일라가 삶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이미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견뎌야 했던 지난 삶에 대한 실마리로서 라일라는 성경을 읽고, 평생 그 텍스트를 읽고 공부하고 설교해온 목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라일라가 말했다. “당신 그 부분 알죠. ‘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고’라는 부분 말이에요. 그건 누가 말하고 있는 건가요?”
“주님이시죠. 하나님이요. (…) 물론 그건 비유예요. 에스겔은 시로 가득 차 있어요. 성경의 다른 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와 우화와 환영들을 담고 있죠.”
(…)
“음, 하나님이 거기서 말한 건 진실이에요. 그건 내가 잘 아는 거거든요.”
“그래요. 당신 말이 정말 옳아요. 나는 그게 더 깊은 차원에서 진실이 아니라는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그 말씀이 실재하는 뭔가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도 아니었고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 라일라. 더 말해줘요.” _232-233쪽
라일라와 목사 사이에는 성경과 실존과 세상에 대한 질문과 답이 끊임없이 오간다. 그러나 반복되는 문답은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정답을 향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그리는 대신 두 사람 안에 층층이 쌓여 각각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관계에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관통하며 이어지는 둘의 대화는 라일라가 새로이 알게 된 언어와 사고의 틀로 과거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라일라와 목사가 나누는 정의하기 어려운 사랑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공고히 확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라일라는 궁핍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늘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주려 한 달의 사랑과 그 폭풍과도 같았던 실존을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위안과 안전을 주는 존 에임스 목사의 사랑으로, 들판에 버려져 돌봐주는 사람 없이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던 어린아이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삶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여성으로 변모하고 성장한다. 고통스럽고 척박한 인생을 살았음에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삶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되찾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라일라의 솔직하고 담담한 목소리는 믿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 추천의 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하나. _선데이타임스
삶의 의미에 대한 강렬한 탐구이자, 사랑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희망에 대한 감동적이고 믿기 힘든 이야기. _타임스
칼뱅주의 교리의 언어와 관념으로 구현된 아주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매릴린 로빈슨은 어떤 작가와도 다르다. _뉴욕리뷰오브북스
라일라 • 9
해설 소통과 애정을 통한 정상으로의 회귀_이승복 • 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