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코제트 마리우스 vs 우아한 연인, 케이티 팅커

안녕하세요. 편집자 narh입니다. 얼마 전부터 레 미제라블에 계속 꽂혀 평소엔 잘 찾아보지도 않던 배우들 뉴스도 찾아보고, 아만다에 관한 소스를 제공해주셨던 에디터 e님께 OST도 빌려 그때의 기분에 다시 젖을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은 저…. 그런데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운명적 연인, 서로에게 꾀꼬리처럼 사랑을 노래해대는 코제트와 마리우스 커플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가능한 걸까요? 그냥, 길거리에서 한 번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 특히 너 코제트, 장 발장 아버지(휴 잭맨 님)을 버리고 가겠다고? (이래서 자식 키워놔야 헛 거라는 말을 하는 건가요 ㅠ) 사실 뭐, 마리우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꾸질꾸질한 파리 시내에서 혼자서 자체 발광하는 코제트를 보면 솔직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코제트가 마리우스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건….으음. 뭐 이건 개인 취향의 영역일까나요.

사실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면 정말로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서로 ‘한 번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데, 뮤지컬 영화라는 특성상(그리고 플레이타임의 제약상) 어느 정도 축약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원작에서는 공원에 아버지 장 발장과 산책나온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눈이 마주치죠.

눈 마주쳐주시고! 엥 아닌가 이건... 대놓고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결혼식 장면

그리고 그렇게 몇 번 더 눈이 마주칩니다. 물론 첫눈에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이 ‘일부러’ 시간대를 맞춰 공원에 다시 나온 거긴 하지만요. 그렇게 공원에서 마주칠 때마다 둘의 마음은 커져가고, 코제트는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손수건을 공원 벤치에 살포시 놔두고 갑니다. 손수건을 발견한 마리우스. ‘으아 이젠 도저히 안 되겠어!!! 고백하고 말거야!!’라는 결심을 불태우죠. 결국 둘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밀회하기에 이릅니다.

흑흑 기껏 힘들게 키워놨더니 어디서 나타난 녀석이 딸을 홀랑...ㅠ

그렇게 둘의 사랑은 공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보다는 마리우스를 향한 에포닌의 사랑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는데요, 아무래도 내용이 축약되다보니 둘의 운명적인 사랑이 정말 ‘운명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독자분들께 소개드리고 싶은 ‘운명적인 연인’이 하나 더 있는데요,(포스팅 제목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바로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에 등장하는 케이티와 팅커입니다

파스텔톤 표지가 너무나 예쁜 <우아한 연인>의 배경은 1930년대 뉴욕입니다. 때는 1937년의 마지막 밤, 모두가 흥청망청 취해서 한 해의 마지막 밤을 즐기는 분위기. 투명한 드라이 마티니와 진,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에 섞여드는 재즈의 선율. 흑백 영화의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듯한 맨해튼의 어느 클럽에서, 지적이고 새침한 아가씨 케이티는 친구 이브와 함께 재즈바에서 재즈 음악을 즐기며 새해 분위기를 냅니다.

이런 분위기의 아가씨들이죠. 사진 출처는 Rules of Civility 북트레일러

그때, 첫눈에 봐도 훤칠하고 완벽한 신사의 외모를 갖춘 멋진 남자 팅커가 바에 들어오죠. 동행이 오지 않는 걸 알고 실망한 팅커에게, 이브는 동석을 제안하고…셋은 급속도로 친해집니다. 그때부터 셋 사이에서 (우정과 사랑 사이를 줄타기하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죠.

한 남자와 두 여자. 아아아... 이 긴장되는 분위기

그렇죠,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우정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사랑의 작대기는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 대충 눈치채시겠지만, 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운명적인 연인’은 바로 ‘케이티와 팅커’입니다.

케이티와 이브를 태우고 팅커가 운전하던 차가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가 나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이브는 셋 중 유난히 심한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 죄책감에 팅커는 (사실 마음은 케이티에게 가 있는데도) 이브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죠. 케이티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접기로 합니다. 그렇지만 ‘운명’은 이들을 호락호락 놔주지 않습니다. (이 정도로 꺾일 사랑이면 이게 어디 운명인가요…)

소설은 인생의 중반에 들어선 케이티가 자신의 젊은 날을 반추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좀 좋았던 게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는데요, 사실 ‘운명적 사랑’이라는 주제 자체가 무척이나 뻔하게 흐를 수 있는 주제임에도 ‘인생 중반에 들어선 여인이 과거를 추억한다’는 설정 덕분에 이 소설은 수많은 철학적 사유를 녹여낸, 흔치 않은 ‘지적인 로맨스 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출간되었을 당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떠올리게 한다며 엄청난 화제가 가 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21세기에 쓰여진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소설이에요.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시는 분께 적극 추천입니다! 더불어 팅커와 개츠비를 비교하면서 보시는 재미가 쏠쏠하실 듯.) 존 치버, 스타인벡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신 바 있는 김승욱 선생님의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유려한 문장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 달달하고 촉촉한, 그러면서도 사유거리를 던져주는 ‘지적 로맨스’를 읽고 싶으시다면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을 추천합니다.

덧. 개인적으로도 주변에 많이 추천했는데, 그렇게 읽어본 친구 하나가 제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 읽는 게 너무 아까워서 야금야금 읽고 있어.’ 이런 말을 들을 때야말로 편집자로서 정말 뿌듯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덧2. 위에서 메시지를 보내준 친구가 말하길 ‘서점에 가서 <우아한 연인> 어딨냐고 물어보니까 직원이 “아, 그 분홍책?”하며 찾아주더라”라고…. 음. 갑자기 에스티로더의 갈색병이 떠오르네요. 저희는 ‘분홍책’으로 나가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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