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 때가 있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을 언제나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자연스레 몸에 힘을 주게 되고 숨을 고르게 되고 꾹 쥔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흠뻑 차오르는 순간… 오늘 소개해드릴 소설에서 주인공은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두가 다 알지만 나만 모르는 비밀, 삶에는 언제나 그런 것이 숨겨져 있다……”
안녕하세요? 책을 연주하는 편집자 헤르츠티어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동효 장편소설 <노래는 누가 듣는가>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황산벌청년문학상은 한국문단을 이끌 새로운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고자 논산시와 은행나무출판사가 함께 제정한 문학상입니다.《노래는 누가 듣는가》는 그 1회 수상작이랍니다.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면서 말더듬을 갖게 된 한 인물이 상처와 분노, 두려움과 죄의식을, 노래를 통해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가 박범신, 성석제, 김인숙, 문학평론가 김형중 등 4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탄탄한 문장과 강한 흡인력이 인상적이었다”, “형식과 수사를 압도하는 작가의 진정성과 인생을 대하는 신인의 뚝심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여기, 열일곱 살 말더듬이 소년이 있습니다.
이름은 오광철. 아주 남자답고 힘깨나 쓸 것 같고 씩씩한 이름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그냥 ‘버벅이’로 통하죠. 몸을 쥐어짜서 말을 밀어내는 아이, 말더듬이, 또는 버벅이. 그런데 이 아이, 대체 얼마나 심하게 말을 더듬길래 버벅이가 되고 만 걸까요.
“말더듬이란 게 묘한 것이 한번 어느 지점에서 막히면 아무리 애를 써도 헛바퀴만 돌았다.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도 입술은 계속 떨려왔고, 목구멍은 옥죄였고, 얼굴은 붉어졌고, 눈앞은 뿌옇게 흐려졌다. 오오오, 과과과광…… 오광까지 힘들게 갔건만 철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철’ 발음이 처처처처…… 이러며 얼마나 거듭됐는지 몰랐다. 더듬거리는 끝에 안간힘으로 철을 토해놓을 때면 목소리는 순간적으로 터무니없이 커지게 마련이라 다들 어이없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거였다.”
묘사가 꽤 디테일하죠? 실제로 어릴 때 극심한 말더듬으로 고통 받았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어쨌든 이 소년은 점점 ㄹ받침이 들어가는 단어를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송창식의 노래 <가나다라마바사>를 한 백 번쯤 따라 부르며 발음 연습 좀 했더라면 나아졌으려나요? 그는 대화 중에 ㄹ받침이 나올 것 같으면 잽싸게 다른 단어로 바꿔서 대답하곤 합니다. 그런데 단어를 함부로 바꾸면 안 되는 때가 있잖아요. 가령, 번호를 지목 받아 일어나 소리내어 책을 읽어야 할 때. 그래서 소년은 국어시간을 가장 싫어했지요. 더듬더듬 읽다보면 아이들이 키득키득하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거든요.
만날 겉돌기만 하던 소년에겐 혼자 귀에 이어폰 꽂고 노래 듣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인기 있었던 외국 팝 뮤지션들의 노래는 다 들어봤나봐요. 핑크 플로이드, 레드제플린, 레너드 코헨, 예스, 닐 영, 로이 부캐넌, 에릭 클랩튼, 레너드 스키너드 기타 등등. 근데 가요는 안 들었어요. 왜 때문이냐…… 아버지 때문이었죠. 어머니와 자기를 때리고 나서 또 혼자 술을 퍼마시는 아버지가 “사랑이~ 무어냐고~ 무을으신다면~~” 하면서 흥얼대는 모습이 그에게 증오심을 불러일으켰거든요. 아비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더듬게 된 것도 다그치고 협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그는 확실히 믿고 있었어요.
“내가 아비를 죽도록 싫어하는 까닭이 비단 이런 폭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밤이 이슥해지면 어머니는 뚜드려 맞은 몸뚱이로 나를 찾아나서게 마련이었다. 저 아래로 절뚝이며 올라오는 어머니가 보이면 나는 냉큼 나서며 이 말부터 꺼냈다.
노래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가보면 아비는 술병을 앞에 놓고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댔다. 물론 그 노래는 싸가지 없는 마누라와 애새끼를 작신 조지기도 조졌고, 그래서 이제 기분이 좋아졌다는 표시였고, 따라서 공급은 지나갔다는 경보해제 사이렌이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그 노랫소리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가슴이 답답하면 자주 봉은사 뒷산에 올랐다.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오장을 후벼 파듯 악을 썼고, 그러다간 별빛을 바라보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동요든 뭐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노래를 무턱대고 한동안 불러젖히면, 그제야 가슴이 좀 후련해졌다.”
그는 어느 날부턴가 같은 반 한 아이에게 눈길이 머뭅니다. 영화면 영화, 책이면 책, 보컬그룹 리드기타에다, 화려한 입담까지 자랑하는 개둥이! (‘개주둥이)라는 친구였어요. 쉬는 시간마다 점심시간마다 개둥이는 ‘썰’을 풀곤 했지요. 반 아이들은 그 둘레에 모여들어 야하디야한,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모를 너스레에 빠져들었는데, 그 속에는 버벅이 소년도 끼어 있었답니다.
사실 소년은 개둥이를 싫어했어요. 자신이 갖지 못한 매끄러움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죠. 말이든 행동이든 뭐든 어리버리한 자신에 비해 이 개둥이란 녀석은 너무도 완벽하고 더 이상 갖출 게 없는 아이로 비쳤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개둥이가 그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너 혹시 레드문에 안 들어올래?”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내 내가?”
“너 저번에 음악시험 때 보니까 노래 죽이던데. 목소리가 떨려서 그렇지 고음도 잘 올라가고. 우리가 보컬이 하나 필요하거든.”
세상에 말더듬이에게 보컬을 제안하다니! 여하간 그날을 계기로 버벅이 오광철과 개둥이는 친해집니다. 무대에 서는 순간 몸이 얼어붙을 거라고 겨우 설득해서 보컬 제의는 물리치긴 했지만요. 둘은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금세 가까워집니다. 알고 보니 개둥이도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가 누군가의 세컨드이고 좀 문란한 사생활을 즐기는 터라 개둥이는 혼자 집에서 외롭게……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죠? 학교에선 온갖 수다와 허세로 유쾌 발랄 하더니 속사정은 이런 것이었어요. 둘은 서로 온갖 잡다한 음악적 내공을 끌어올리면서 대화하는 동안에 정서적으로 고양되고 존재의 생생함을 느끼게 되죠.
그리고, 은기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만날 주먹질과 친구들 삥뜯기로 하루하루 지내는 문제아인데요. 반 친구들보다 나이도 한두 살 많아요. 이런 아이들은 보통 개둥이처럼 나대는 애들을 별로 애정하지 않지요. 그래서 저항하는 개둥이를 애들 사이에서 고립시키기도 하고, 주먹세례를 퍼붓고, 덩달아 버벅이 광철이까지도 말 더듬는다고 불러내서 패고 또 패고…… 그런데,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은기가, 그 녀석이, 어느 날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하필 개둥이네 아파트였는데 은기를 끔찍해했던 친구들 반응이 냉랭합니다. 고 녀석 잘 죽었다, 걔가 불우한 가족사가 있다더라, 우울증이 있었다더라 하며 자살로 몰아가고 또 수사도 그렇게 결론이 납니다. 십몇 년이 지난 뒤 광철은 술에 취한 개둥이의 고백으로 그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여기서 말씀드리진 않겠어요.^^
광철과 개둥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보헤미안의 영혼을 가진 개둥이는 대학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곁을 지키려다 군대 도피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 광철은 대학에 가서도 여전한데, 집회 연단에 섰다가 ‘말’ 때문에 망신을 좀 당하고, 군대에 가서도 계속 버벅대는 바람에 호되게 고생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잘 나오지 않는 그의 언어가 만든 자폐의 감옥에서 ‘사랑’을 하고 맨 정신으로 살 수 없는 ‘생활 전선’에서 사투를 벌입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느냐고요? 저쪽에서 광철이가 헤드폰을 쓰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네요. 뒷이야기는 아무래도 《노래는 누가 듣는가》의 화자, 광철이에게 직접 들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광철이가 말은 잘 못하는데 글은 참 매끄럽데요.^^
“나는 외로웠다. 세상은 매끄러운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세상은 부드럽게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인데 나는 뚝뚝 분질러졌다. 남들은 다들 잘도 웃고 떠드는데 나는 왜 안 되나? 남들이 뻔히 아는 사실을 나만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뻔한 사실만 알면 나도 언제든지 웃고 떠들 수가 있으리라.”
《노래는 누가 듣는가》는 노래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성장소설이에요. 매끄러운 세상, 매끄러운 언어와의 갈등과 화해! 한 세대의 감수성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설 《노래는 누가 듣는가》입니다.
※ 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심사평 & 추천의 글
거칠지만 마음을 울리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이 누군가의 인생을 관통해온 폭력의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은 시종일관 진지하다. 아닌 척하려 해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인생과 소설을 대하는 신인 작가의 이런 뚝심이 또 마음을 울렸다. _김인숙(소설가)
이동효의 《노래는 누가 듣는가》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미덕은 부드러움이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으라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아 여유롭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깊고 높은 곳에 다녀온 적이 있는 견자(見者)로서의 눈길과 솜씨가 느껴진다. _성석제(소설가)
이 작품에는 다른 힘이 있었다. 그것은 묵직한 ‘진정성’이었는데, 작품 속 주인공이 술에 취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취기가 느껴졌고, 말더듬이로 고통받을 때는 그 고통이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여러 소재들은 자전적인 경험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고, 바로 그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함이 이 작품의 힘이었다.
_심사위원: 박범신, 성석제, 김인숙, 김형중(대표 집필)
<노래는 누가 듣는가> 북사운드트랙
It’s not your fault
Music by Herztier(Vocal), PTcal(Rap)
*소설에서 아버지의 폭력과 갈등으로 괴로워했던
주인공 광철이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보았습니다.
Rap) yo! listen 그리고 lesson
지금까지 나 살아오는 동안 값진 경험의 유산
물려줄 것 없는 집안, 폭력과 폭언이 난무 늘상
앞에 놓여진 건 도망가고 싶은 일상
웃지는 못해도 맞은 자리 아프지나 않았으면
지금 겨우 돌아보면 라면에 밥 한 공기
서로의 과오를 거울삼아 살았었지
부모와 자식의 상하관계
지금 생각해보니 알겠는 게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나를 키우며 살았을 젊은 한 남자의 혼란
그야말로 자신에게는 무시무시한
이해와 용서를 하는 건 아니지만
네 잘못이 아니라는 한마디만
나도 모르게 듣고 싶었나봐 It’s not your fault
#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햇빛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세상은 절름발이였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로 남아버린 상처들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슬픈 아픔
Rap) 감정을 포장하거나 숨겨둘 줄 몰랐지
슬픔을 참아내거나 견딜 줄도 몰랐지
두려움을 먼저 알고 몸 숨기기 바빴지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내가 그를 닮을까 걱정하는 여린 엄마
그땐 이랬지 그땐 그랬어 추억할 수 있을까?
내가 불행해 내가 더 불행해 자랑할 수 있을까?
시간만 지난 게 아냐 아픔이 우릴 격리시켰으니까
아버지의 사과를 듣고 싶었어 아무것도 아니면서
나보다 더 큰 상처에 사는 그의 눈물을 보면서
아무도 몰랐어 서로의 상처를 안아준 걸
He said It’s not your fault
내가 바로 답했지 It’s not your fault
#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햇빛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세상은 절름발이였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로 남아버린 상처들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슬픈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