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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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우연히 [차가운 열대어]라는 일본 스릴러 영화를 보았다. 너무 무서웠다. 중간에 나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등을 돌려야 하는데, 그게 못할 짓처럼 느껴져서 끝까지 그냥 보았다. 붉게 물든 욕실에서 시신을 훼손하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는 멍청이처럼 자신을 따라온 남자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이렇게 말한다. ‘치킨너겟만 하게 자르라고.’ 그 영화를 보고 일주일간은 고기를 먹지 못했다. 지금도 혼자 있을 때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 영화 탓이 크다. 정말 무서운 영화였고 지금도 반 진담으로 채식하고 싶으면 이 영화를 보라고 말을 하곤 한다.

다시 봐도 무서우니 작게보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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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이 영화 생각이 났다.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서 책상 중앙에 원고를 놓지 못하고 퇴근할 때면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그런데 내가 원래 겁이 많다. 어렸을 때 귀신의 집 들어갔다가 코피가 난 사람이다 내가. 그래서 내가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마케팅 회의 때 세 분의 마케터 말씀하시길,

“기 빨려서 못 읽겠어요.”
“토할 것 같아요.”
“……”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하는 자신감이 샘솟으며, 이 이야기를 꼭 편집후기에 남겨 내가 이런 책을 편집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회사에 어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말을 하는 건 ‘누난 너무 예뻐’의 ‘너무’와 같다. 제대로 역겹고 기괴하고 참혹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이라 믿기에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와 함께 시작하는 이 이야기에서 남자는 전장에서 본 십자가에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걸려 있던 아군 밀러 존슨을 떠올린다. 그는 고통을 끝내주는 일이라 믿고 그의 뒤통수에 총을 쐈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군대를 가지 못한 버스 운전사가 아내가 군인들과 바람을 피운다며 자신도 독일 놈들 몇 죽였어야 했다고 할 필요 없는 말을 지껄인다. 그러자 그는 운전사에게 ‘당신 아내가 바람을 피우든 말든 밀러 존슨이 신경 쓸 것 같습니까?’ 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미국의 혼란기, 쇠퇴한 공업 도시에서 이끼처럼 자라난 광기 어린 인간들의 잔악한 행태를 그린다.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저런 인간은 죽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면서 인물의 광기가 증폭될수록 저러다 자멸하지 싶어 흥분이 되는… 아 이쯤에서 나의 정신이 이토록 훼손되었음을 회사에 다시 한 번 어필하는 바이다. 내가 한때는 청초한 편집자였는데. 아무튼.. 이 책이 미국 현지에서 나왔을 때 언론이 저자의 삶에 대해서도 여러 번 다뤘다. 이유는 이랬다. 그는 32년을 공장 노동자로 살았고, 이 소설이 장편 데뷔작이었다. 글이 이런 솜씨를 놔두고 다른 일을 했다기에는 ‘너무’ 좋았고, 힘든 일을 한 게 ‘너무’ 당연할 만큼 글이 현실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뒤늦게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예술학 석사 과정까지 밟게 되는데, 그 교수진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날것의 재능이었고, 그는 재능을 쓸 줄 모르는 이로 남길 바라지 않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단히 놀라운 저자다. 아니 그냥 그랬다고, 하고 말을 하는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문장을 구사하고, 섹스 장면까지도 무섭다. 나는 이 책 때문에 당분간은 커피 잔만 봐도 인상을 찌푸리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의 서평을 살피던 중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나는 이런 책 안 읽는 사람인데 읽었다’라고.

‘기 빨려서 중간까지 읽다 말았다’는 마케터 분께 나는 한 번 더 읽으면 된다고 말을 했는데, 아마 같은 지점이지 않을까 싶다.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분들이라면 피가 철벅거리는 이 고딕 누아르가 더 없이 반가울 거라는 건 의심이 없다. 그리고 그분들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인 ‘삶에 대한 진한 애증’도 훨씬 느끼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안 그랬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세다 싶더니 다시 보니 마음이 아프고, 또 다시 보니 애착이 갔다. 모든 인물들이 안 미쳤던 시절은 없을지언정 덜 미쳤을 때가 있었고, 또 그만큼 미칠 만큼의 이유는 충분한 인물들이다. 점점 갈수록 괴상한 뉴스들이 들려오는 요즘, 그런 사건을 한 개인의 타락으로만 몰고 갈 수 없는 요즘, 이 이야기는 나에게 지금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에 대한 무서운 대답이기도 했다.

그럼 끝으로 이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사진을 전하며 마무리한다. 이런 사진을 보아도 꿈은 좋은 꿈을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어울리는 사진이 있지만 그 사진은 유료.jpg

더 어울리는 사진이 있지만 그 사진은 유료.jpg

삶에 대한 애증으로 빚어낸 진정한 악의 맛
분류 국외소설 | 출간일 2015년 8월 25일
사양 변형판 150x210 · 340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56609256
도널드 레이 폴록
1954년 오하이오 녹켐스티프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중퇴 후 제지 공장 노동자와 트럭 운전수로 일하다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진학, 영문학 학위를 받았다. 교수 미셸 허먼의 조언에 따라 일을 관두고 MFA(예술학석사) 과정을 밟던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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