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선생님과 함께한 논산 여행

안녕하세요. 편집자 J입니다. ^^

오늘은 2월에 다녀온 논산 여행 이야기를 할까 해요. 놀러간 거냐고요? … 물론 일하러 간 거긴 했지만 놀러가는 것과 다름없었다지요~ 논산의 여기저기를 두루 다녔으니 말예요!

회사의 코앞에서 사는 J는… 최근 얼마간 일어나 본 적 없던 새벽 5시에 일어나 (ㅠㅠ;;) 강남으로 가야 했습니다. 논산에서 만날 그분(!)을 생각하여 그런 초인적인(??) 일을 해냈던 것 같네요. 서울에서 3시간여를 달리고 달려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도착했을 때,  저희를 제일 먼저 반갑게 맞아주셨던 분은….사실 사람이 아니라 조정리의 호수, ‘탑정호’였습니다. (저희가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

겨울이라 호수가 꽁꽁 얼어 있었어요!

탑정호는 일제강점기 말에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조성된 인공호수입니다. 옛날엔 물이 아주 맑아서 민물게가 많이 잡혔다고 해요. 아직도 민물게를 넣어 끓이는 매운탕집이 논산의 명물이라죠!

이 근사한 사진은 박범신 선생님 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_*!!

박범신 선생님은 작년 겨울부터 고향인 논산에서 집필실을 얻어 지내고 계신답니다. 그간 페이스북에 논산에서 쓰신 일기를 올리고 계셨는데 그 일기를 모아 출간하게 되었답니다. 아주 주옥같은 글들이라 책으로 꾸며졌을 때 얻을 감동이 벌써부터 밀려옵니다~~ *0* 그래서 저희 편집팀에서 논산에 내려가  일기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의 집필실과 논산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되었어요~

여기는 윤증 선생의 고택, 마당입니다~

고택의 사랑방에서 박범신 선생님 한 컷~!! 멋있으시네요! ^^

 

사진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내다보고 계신 창문은 말예요, 아주 스펙타클하게 열린답니다. 그냥 양옆으로 여는 게 아니라 작대기를 이용해 위로 고정해서 열 수 있죠. 가로 세로 비율이 16:9인데요. 이거 익숙한 숫자 아닌가요? 바로 HD TV 화면 비율이 16:9라는 사실!! 풍광이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비율이 16:9인 건 옛선조들이 먼저 아셨나 봅니다.

가까이서 한 컷!! 선생님 미소가 너무 근사하세요. >ㅅ<

그 다음 찾아간 곳은 박범신 선생님의 채산동 옛집입니다. 바로 기찻길 옆이었는데요, 박범신 선생님의 일기의 몇 구절이 떠올라서… 논산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 내가 살던 채산동 집은 기찻길 옆에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면 언제나 내 방의 낡은 창이 

다르르르 떨리는 소리와 함께 낮은 비명을 내지르곤 했다……”

“……채산동 집 ‘함석 대문’을 밀고나와 

분토골의 장공장 외벽을 따라 흐르다가 건널목에서 몸을 돌리면 

이내 쪽 곧은 철길, 그 철길의 침목들 위를 천천히 걷고 있는 우울한 소년, 

열일곱 살의 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서서히 노을이 짙어졌고, 저희는 마지막으로 금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옥녀봉,  박범신 선생님이 고교시절 수업 빼먹고(?) 올라가 혼자 책을 읽곤 하셨다던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사진 속 멀리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보이시나요?

아, 이런 곳에서 매일 문학을 읽고 생각하셨다니… 지금의 박범신 선생님이 계신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산은 선생님께 그냥 고향이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배태하게 해준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사진 속 홀로 우뚝 서 있는 멋진 분이 누구시냐고요?

아시면서 ^^

바로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소설가이십니다.

 

 

박범신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났고, 강경읍 채산동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황북초교, 강경중, 남성고교, 전주교대, 원광대학교,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여름의 잔해>로 당선, 데뷔했다. 초기엔 <토끼와 잠수함> <덫> 등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문제 작가’로 주목받았고, 1979년 이후엔 장편소설《죽음보다 깊은 잠》에 이어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등 화제의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발표, ‘인기 작가’로 각광받았다.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회자되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수백만 권 이상 팔렸으며, 20여 편 넘게 영화화, 드라마화 됐고, 노래, 무용, 연극, 그림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에 걸쳐 폭넓게 재창조됐다. 1993년 겨울, 문화일보에 장편《외등》을 연재하던 중 “상상력의 불은 꺼졌다”면서 돌연 절필을 선언, 3년여 동안, 용인 외딴집 ‘한터산방’에서 고통스러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이 전후로 그는 히말라야 곳곳을 여러 차례 찾았고, 아프리카, 유라시아, 중국 대륙을 종주했으며, 티베트 극서부의 성산 카일라스를 순례했고, 아프리카 대륙의 지붕인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 끝에 “나를 새로운 작가로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1997년 자신의 정체성을 집요하게 탐구한 연작소설집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시작으로 단편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빈방》을 잇달아 출간했다. 작가로서 그의 새로운 출발은 평론가 백낙청의 말 그대로 “괴로운 절필 끝에 박범신이 다시 펜을 든 것은 우리 문단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문단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곧 이주노동자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장편소설 《나마스테》, 예술가의 내적 분열을 뛰어난 미학적 문장으로 형상화한 《더러운 책상》, 실존의 근원을 탐색한 《주름》, 포털 ‘네이버’에 최초 연재하여 인터넷 연재의 물꼬를 튼 산악소설 《촐라체》, 역사 인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그려낸 《고산자》, 신간으로는 처음으로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 출간한 존재론적 예술가 소설 《은교》 등 이른바 ‘갈망 3부작’을 연속해서 발표하면서,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별명을 얻는 한편, 유수한 문학상을 잇달아 받는 등 독자와 문학전문가들의 상찬을 받았다. 2010년엔 장편 《비즈니스》를 중국과 한국의 문학지에 동시에 연재하고 동시 출간, 한중 문학교류의 문을 열었으며, 최근엔 마술적 리얼리즘과 하드고어적인 미학을 결합시킨 장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썼다.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연희문학촌 촌장, 명지대 교수를 역임했고, 대한민국문학상, 한무숙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등을 받았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
이상 편집자 J였습니다.
박범신 선생님의 ‘논산 일기(가제)’ 산문집은 4월 중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

1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