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라는 직업이 좋은 점이 있다면, 첫째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책을 맘껏(실은 지나칠 정도로 –;;)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편집한 책은 우리에게 강화도령, 허수아비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철종의 삶과 사랑을 그린 역사소설 <<이몽>>입니다. 이 소설을 편집하면서 철종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나 순원왕후와 조 대비의 가문의 사활을 건 불꽃 튀는 싸움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새로이 알게 된 역사 지식을 얻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그야말로 그간 우리가 얼마나 우리 역사에 무지했는지, 그리고 TV나 드라마 등으로 인해 우리 역사가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철종의 정인 이름은 양순이, 복녀가 아니라 ‘봉이’!
그동안 드라마와 책에서는 철종이 강화도 유배 시절 사랑했던 정인 이름이 양순이니 복녀니 하면서 중구난방이었습니다. 1983부터 1990년까지 방영되어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MBC 대하서사극 <조선왕조 500년> 철종 편에서는 ‘양순이’로 소개되었고, 신상옥 감독의 1963년작 영화 <강화도령>에서는 ‘복녀’로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왕조 500년>은 영화, 소설, 만화로도 만들어져 양순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김시연 작가는 철저한 사료 조사를 통해 철종의 강화도 정인의 이름이 ‘봉이’라는 것을 <<이몽>>에 처음 소개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지리사>에 철종이 잠저 시절 ‘봉이’라는 여인을 사귀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금년 2월 강화군에서 개장한 ‘강화도령 첫사랑길’의 한 코스인 찬우물 약수터란 관광지에는 ‘철종과 봉이가 만난 곳’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철종이 애틋하게 사랑했던 정인 이름을 제대로 불러줘야겠죠.
양순이, 복녀가 아닙니다요잉, 봉이입니다요잉!
궁궐 음식은 상궁들이 만든 적이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수출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드라마 <대장금>.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요? 거기에 치명적인 역사적인 잘못이 있었군요.
김시연 작가는 사료 연구를 통해, 작품 <<이몽>> 속에 조선 시대에 궁중의 음식은 여인들이 아닌 남자들만이 담당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당시 궁궐 안 음식은 사옹원 소속 대령숙수(조부) 즉, 남자들이 각 전각 수라간에 파견 나가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특별히 왕의 생신이나 왕대비 생신, 환갑 등의 궁중 잔치 때는 전담 관청인 ‘숙설청’을 만들어 행사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때도 요리는 대령숙수들이 하고, 천인인 각색장 400명이 잔일을 전문적으로 분업화해서 했다고 합니다. 물끓이는 사람은 물만 끓이고, 반죽하는 사람은 반죽만 하고, 전 부치는 사람은 부치기만 하고, 간을 하는 사람은 간만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음식 시중과 기미(냄새와 맛 확인)도 모두 내관들이 들었다고 합니다. 상궁들은 음식을 만들 시간도, 기술도 없는 고급 관리들이라고 합니다. 수라간을 책임진 사옹원 소속 대령숙수와 자비들은 중인이나 천민 계급이고요. 번외의 이야기지만, 그래서 대령숙수들이 일제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난 후 명월관 같은 기생집을 만들거나 그곳에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역사학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았을 텐데, ‘그냥 즐기면서 보는 드라마니까…’ 하고서 쉽게 넘어간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런 무책임한 방기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역사 왜곡으로 이어지고 말았네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왕의 똥맛으로 건강을 진단하다!
더 이상 볼일을 참을 수 없던 원범(철종)이 얼굴을 붉히며 지밀상궁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복이나인이 잽싸게 매우틀이라는 의자식 이동변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 쳐다보는데 어찌 볼일을 보라는 게요?”
“임금께서는 이리 볼일을 보시는 게 지엄한 궁궐의 법도입니다.”
방바닥을 뒤흔들던 소리가 멈추자 복이나인이 잽싸게 달려와 대변 위에 매추를 뿌린 뒤 밖으로 사라졌다. 이번엔 덩치 큰 상궁이 하얀 수건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닦아 주겠다고 달려들었다. 방 안에서 한바탕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 <<이몽>> 본문 중에서 발췌 구성
<<이몽>>에서 원범(철종)이 왕이 되어 궁궐에서 처음 볼일 보는 장면입니다. 관리들은 공중화장실을 사용했지만, 지존의 몸인 왕은 매우틀이라는 이동식 변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궁중에서 대변이나 소변을 이르는 말을 ‘매우’라고 하는데, ‘매우’를 전문으로 담당한 복이나인이라는 상궁이 있었답니다. 심지어 뒤처리도 왕이 직접 하지 않고 상궁이 했다는! 윽, 이건 좀 심하죠? 그래서 원범이 기겁하며 엉덩이를 안 닦이려고 도망치는 바람에 상궁과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여기까지는 역사소설을 많이 읽거나 사극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알고 계신 분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절초풍할 사실이 아직 더 남아 있습니다.
볼일 본 것을 전의감에 보내 전의들이 맛을 보며 살핀다는 설명을 들은 원범은 아연실색해 고개를 떨어트렸다.
- <<이몽>> 본문 중에서
오 마이 갓!
이처럼 왕의 ‘매우’를 내의원에서 어의들이 맛을 보고 왕의 건강을 체크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왕의 주치의인 어의들은 양반이 아닌, 잡과를 통과한 중인 출신이었다고 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똥맛을 보는 일이라니… 그러고 보면 요즘 의사들은 시대를 정말 잘 타고난 거네요… ^^;;
왕의 혼례식 때는 음악이 연주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뮤지컬 <명성왕후>로 가볼까요? 1995년 초연되어 숱한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명성황후>는 국내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 런던 웨스트엔드 진출했고, 국내창작 뮤지컬로서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공연 횟수 1000회를 돌파하며 끊임없는 신기록을 세워나간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는 어떤 오류가 있을까요? 이미 눈치 채셨다고요? 네, 소제목에서 보신 것처럼 당시에는 왕의 혼례식 때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뮤지컬에서 왕비가 오시는 날 음악으로 수놓인 화려한 궁중혼례식 장면 기억나시죠?
사실 이건 <명성왕후>만의 문제는 아니죠. 모든 드라마와 영화에서 왕의 혼례 장면 때는 궁중음악이 흘러나오니까요. 더구나 음악과 춤으로 만드는 예술인 뮤지컬에서 음악이 빠질 순 없겠죠.
인간사에 가장 큰 축제라 할 혼례식 때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사실이라네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성종 19년(1488년) 때 혼례식 전이나 동안에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이는 <<예기>>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에 따른 것인데, 혼인날은 어버이의 일을 계승해야 하는 비장한 날이기 때문에 진이불작(陳而不作), 즉 악기들을 편성해 놓고 실제론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을 법으로 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 빠진 축제라니 좀 김새지요?
내시들도 성생활을 했다!
“요즘도 정부인이 포달을 떨던가?”
순원왕후의 물음에 움찔 놀란 노상선과 정 상궁이 황망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를 본 나합이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으며 부연 설명했다.
“대왕대비마마께서는 정부인이 정 상궁 집에 찾아가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혼절시켰다는 소식을 접하시고는 즉시 정부인을 추포하시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을 내셨습니다.”
-<<이몽>> 본문 중에서
이 장면은 죽음에 가까이 이른 순원왕후가 내시인 노상선과 그의 영혼의 반려인 정 상궁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노상선의 정부인이 질투로 정 상궁을 찾아가 포달을 떨었다는 소문을 듣고 순원왕후가 정부인을 불러 혼쭐을 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조선시대 내시들은 결혼을 하고 성생활을 하였으며, 처들도 다른 관리들 부인과 똑같이 외명부 작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양자를 들여 처자식을 두었고 첩들도 거느렸습니다. 중국의 환관들이 성기를 모두 자른 반면, 우리나라 내시는 X알만 제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는군요. 우리나라 선조들이 좀 덜 잔인한 건가요? ^^;;
그런 반면, 처음이라 잘 모르는(?) 순진한 왕은 늙은 지밀상궁들이 창호문 밖에서 알려주는 대로 성행위를 해야 했다는군요. “옷을 벗기시오.”, “어디를 애무하시오”, “이제 운우지락을 나누시오.”, “시간이 됐으니 그만하시오.” 하면서…
그게 가능하기나 할런지, 원. 왕노릇도 정말 할 게 못 되는군요…–;;
이렇게 TV나 드라마를 통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다니 착잡한 일입니다.
<<이몽>>은 이처럼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아 박진감 넘치는 재밌는 이야기 속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6년 동안이나 사료 조사를 위해 박물관과 도서관을 무시로 드나들어서 ‘박물관이 만든 작가’라는 별명이 붙으셨다는데, 그런 공력이 여실히 느껴지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