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북트레일러 제작기

그동안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 내놓는 작품마다 드라마화된 이정명 작가의 신작 소설답게, 《별을 스치는 바람》은 읽는 순간 머릿속에 영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윤동주는 얼마 전 <건축학 개론>에서 풋풋한 연기가 돋보였던 이제훈이 어떨까. 냉혹하면서도 순수한 스기야마 도잔은 류승룡 같은 연기파 배우가 하면 좋겠다.’ 그런 멋진 상상의 날갯짓과 함께. 하지만 현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영상에 익숙한 독자들을 단번에 혹하게 만들 북트레일러를 제작해야 한다는 사실!

관건은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의 배경인 후쿠오카 형무소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였다. 그렇다고 몇 초 촬영을 위해 세트장을 따로 만들 수도 없고. 죄수들은? 땅굴은? 도서관은? 합창단은? 오마이 갓, 과연 북트레일러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일단 북트레일러 제작자인 최원상 감독께 SOS 전화를 드렸다. 지난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에서 강남 아파트 한 채에 맞먹는 비싼 짱아오 종 개 촬영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처럼, 이번에도 좋은 해결책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며칠 후 최원상 감독에게서 후쿠오카 형무소를 대신할 메인 촬영 장소로 ‘서대문 형무소’를 섭외했다고 연락이 왔다. 일제강점기 일본 본토의 감옥이 주 배경이라, 최대한 일본의 잔재가 느껴지는 감옥이 좋을 것 같아 그곳으로 하셨다고 했다. 서대문 형무소도 일제 때 지어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감옥이고, 영화 <광복절 특사>도 그곳에서 촬영한 거란다. “아니, 서대문 형무소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이번에도 감독의 도움으로 가장 골칫거리였던 장소 섭외 문제가 해결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촬영지로 섭외한 서대문 형무소

그 외에도 욕심내자면 땅굴 장면이나 죄수들로 구성된 합창단 장면도 필요하지만 감독과 논의하여 최대한 촬영 가능한 내용으로 콘티를 짰다. 죄수합창단 장면은 끝까지 욕심이 나서 마지막 콘티까지 남겼지만, 역시 대규모의 인원 조달과 죄수복 대여 등 비용 문제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함축적 장면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편집자가 촬영 장소나 스케일 등 현실적으로 부딪힐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반면, 북트레일러를 제작한 최원상 감독이 실질적으로 고심한 문제는 어떻게 짧은 영상 안에 스토리가 가진 시대성을 잘 표현할 것인가였다.

“북트레일러는 드라마나 영화 CF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이 짧고 촬영 경비 면에서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게다가 시대물이기에 적절한 시대적 배경이 갖춰진 상태에서 촬영이 시작돼야 하기에 로케이션 섭외와 적절한 소품을 찾는 것이 다른 작품보다 신경이 쓰였습니다.” – 최원상 감독

서대문 형무소에서 촬영 중인 감독, 스탭, 배우

촬영 기간은 겨우 일주일. 잠깐 등장하는 소품이라도 어떻게 하면 당시의 상황이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시가 적힌 연, 감옥 안 나무변기, 비밀도서관의 검은 책 등을 제작하는 것은 사전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북트레일러 속 소품 자체 제작해 시대성 구현

가령 시가 적힌 연 같은 경우는, 인사동을 돌고 돌아 연 제작방법을 배우고 사무실로 와 스텝들이 힘을 모아 4시간 정도 걸려 어렵사리 완성했다. 연에 적힌 시는 썼다기보다는 그렸다는 게 맞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런데 막상 촬영 당일 형무소를 배경으로 연을 날릴 때 바람이 안 불어서 연이 제대로 날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쓸 만한 딱 한 컷을 건져 겨우 살려냈다고.

감옥 안 나무변기는 인터넷에서 당시의 변기 사진을 입수하고, 인근 지역에서 오래된 나무판자를 골라 톱으로 자르고 못으로 두드리기를 3시간 만에 겨우 완성했다. 죄수가 사용했던 만큼 불결하게 보이도록 페인트와 물감으로 효과를 주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일이었다. 실외에서 작업했던지라 여름 한낮 더운 날씨에 스텝들이 엄청 고생을 했다고.

비밀 도서관 검은 책도 손으로 자르고 붙여 겉을 검게 칠하고 구겨 가며 실제 모습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이 소품들이 북트레일러에서 나오는 장면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적재적소에 아주 효과적으로 들어가 있어 시대물로서의 리얼리티를 높이고 있다. 스텝들이 모두 미술 전공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품을 정말 잘 만들었다. 스텝들의 보이지 않은 노고가 깃든 이런 소품들은 정말 1등 조연들이 아닐 수 없다.

제작진이 직접 손으로 만든 소품들. 시가 적힌 종이연, 나무변기, 검은 책 등.

촬영 마지막 날 최원상 감독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지하도서관 촬영장소 섭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원래는 동대문 일대 헌책방에서 촬영을 할 예정이었는데, 아무리 뒤져도 작품의 느낌과 맞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대부분 너무 좁거나 외부 빛이 들어와 적절하지 않고, 그나마 쓸 만한 곳도 영업으로 장소 대여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행나무 출판사 지하창고에서 촬영할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작품에서처럼 지하라는 이점도 있고,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며. 출판사는 좋은 그림이 나온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은행나무 출판사 지하창고 촬영은 담당 편집자만 참여한 가운데 직원들이 없는 주말에 진행되었다. 덕분에 담당 편집자는 영화 촬영하는 감독과 배우, 스텝들을 생생히 지켜보는 기쁨을 얻었다. 그런데 5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그야말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였다.

멋진 장면 연출을 위해 지하창고의 자리 배치를 싹 새로 했다. 그 무거운 책장을 옮기고 가져온 검은 책들을 새로 꼽았다. 그리고 오래된 먼지의 신비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smoke machine’이라는 연기를 뿜는 특수장비를 동원했다. 그 특수장비는 정말 연기랑 똑같은 냄새가 나서 영문 모르는 편집자는 지하창고에 불이 난 줄 알고 연신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의 자리이동과 공간 연출이 끝난 다음에야 촬영에 슛이 들어갔다. 주말이 지난 이틀 뒤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했을 때까지도 가짜 연기 냄새는 빠지지 않고 있었다. 첫 번째로 출근한 직원도 연기 냄새에 깜짝 놀랐다고.

직원들 모두 과연 은행나무 지하창고가 어떻게 화면 속에 담겼을지 궁금해했는데, 북트레일러 속의 장면을 보고 난 반응은 “여기 우리 지하창고 맞아?”였다. 최원상 감독도 이번 북트레일러에서 가장 흡족한 씬으로 비밀 도서관 장면을 꼽았다.

수용소 내 지하 비빌도서관으로 변신한 은행나무 지하창고

반면, 적절한 표현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비용 문제로 촬영하지 못하거나 차선책을 선택해야만 한 부분도 있다. 마지막 죄수합창단 장면 같은 경우인데, 편집자나 감독이나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대신 피아노 치는 장면으로 대체했는데, 이 작업에도 제작진의 숨은 공로가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서대문 형무소를 중심으로 근방 교회와 성당을 수소문했으나 종교단체다 보니 대여가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래서 아예 서대문 형무소에 피아노를 설치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악기대여점에서 대여를 하였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 측이 형무소 바닥이 피아노 무게를 버틸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촬영이 무산되었다. ‘피아노 무게조차 견딜 수 없는 시멘트 바닥이라니…’ 우여곡절 끝에 촬영장으로 쓰인 곳은 메인 촬영지인 서대문 형무소와는 먼 청량리 부근의 교회다. 촬영 하루 전날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로케에 성공했다고.

서대문 형무소 바닥이 피아노 중량을 견딜 수 없어, 피아노 연주 장면은 청량리 인근 교회에서 촬영했다.

드디어 완성된 《별을 스치는 바람》 북트레일러를 받아든 순간, 편집부 직원들 모두 “우와~” 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정말 한 편의 영화처럼 영상이 압권이었다. 여러분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짧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멋진 책동영상 덕분에 《별을 스치는 바람》은 출간 2개월째이 지난 지금까지 올해 출간한 국내소설 중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여러 영화사와 드라마 제작사에서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한 편의 영화 같은 《별을 스치는 바람》 북트레일러를 다시 한 번 감상해 보시길.

3 + 5 =

  1. 김홍경
    2012.09.05 10:11 오전

    지금 읽고있습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에 장면을 그려보았는데,
    이렇게 북 트레일러로 만나보니 제 머릿속에 있던 장면들과 메치되는 것들이 많네요^^
    짧은 기간동안 찍으셨다고 하시는데, 정말 완성도 높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