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7도를 넘어선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이뤄진 살인, 살해 용의자 야마가미 가즈야는 도쿄 인근의 하치오지에서 오기 유키노리, 리카코 부부를 살해한 후에, 피를 손가락에 묻혀 ‘분노’라는 단어를 복도에 쓰고 도주합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분노>는 바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독자라면 도입부를 읽고 바로 ‘분노’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세 명의 용의자 가운데 누가 범인인지 궁금해하며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일에 몰두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분노>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사건 해결을 위한 추리 자체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잠시 그의 인터뷰를 읽어보시죠.
… 염두해 두었던 것은 이치하시 다쓰야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2년 반에 걸친 그의 도주 행보나 사건 자체보다는 공개수사 후에 물밀듯이 밀려든 수많은 제보 쪽에 더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길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정도라면 몰라도 자기와 친밀한 사람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의 원경(遠境)’에 마음이 어수선하고 술렁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분노>의 용의자 야마가미 가즈야는 2007년 일본에 거주하는 영국인 여성을 살해한 이치하시 다쓰야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는 얼굴을 성형하며 도피 생활을 하던 끝에 2009년 경찰의 공개수배를 통해 검거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공개되자 무려 천여 건의 제보가 쏟아졌다고 하니 역설적으로 말하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인자로 의심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노>에 등장하는 세 명의 용의자 역시 과거 이력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타인 심지어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하는데요,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을 좋아하다는 정유정 작가는 출간 전에 <분노>를 읽고 이런 글을 써주시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질문 하나를 던진다. 범인은 누구인가.
점으로 흩뿌려놓은 범인 후보들을 따라가면 그들이 도착할 혹은 도착한 세계와 만난다. ‘좋아할 수 없는 자신, 이해할 수 없는 타인’(대니얼 네틀, 《성격의 탄생》에서)들이 교차하고 만나고 관계를 맺는 장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이조차 믿지 못하는, 그로 인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야 마는 인간이라는 비극적이고 딱한 존재에게, 작가는 밀착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곳에 사는 그들을 통해 은밀하게 물어온다. 당신은 사랑하는 이를 믿는가. 얼마나?
누가 야마가미 가즈야인지는 끝까지 책장을 넘기면 자연스레 알 수 있지만, 과연 복도에 쓴 “분노”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쉽사리 풀리지가 않습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야마가미 외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에게 분노가 내재해있고,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 또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방식은 ‘체념’ 내지 ‘무기력’을 보이는 것이었지요. 연약한 소녀는 미군의 만행에도 힘없는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체념해버리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가혹한 짓을 당한 딸을 본 아비 역시 자신의 무기력함을 원망합니다.
이를 통해서 생각해본 것은 어쩌면 살인자의 분노 또한 체념과 무기력의 극단적인 표출 형태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는 뭔가에 분노해봐야 결국 나아질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보다 거기에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분노를 느끼고 그들을 비웃는다. 세상을 더 한탄하지 않고 그럭저럭 즐겁게 살아가지만 언제든 ‘죽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던 범인은 사토리 세대로 대표되는 일본 청년, 곧 우리의 것이 될지도 모를 어떤 자화상을 비춰낸다.
결코, 알 수도 풀 수도 없는 불가해한 그의 분노는 어쩌면 “곧 우리의 것이 될지도 모를 어떤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뜻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야마가미가 80년대생이고, 임시 일용직으로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특징이 없는 흔하고 흐릿한 인상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또 다른 기사는 요시다 슈이치의 한 인터뷰를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했습니다.
슈이치는 책 출간에 앞서 가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분노>라는 작품을 쓰면서 분노보다 강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봤습니다. 그것은 ‘소중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고, 이를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모두가 분노와 상처 속에 살지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책은 전한다…
<분노>를 집필하는 내내 야마가미의 분노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으나 불가능했다고 말한 요시다 슈이치, 포스팅을 마치려고 보니 그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한 메시지가 다시 생각납니다. “이것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아슬아슬한 막다른 지점에서 빛을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그 ‘분노’를 어떻게 느낄지 꼭 알고 싶습니다.” 맺음이 있는 결론보다는 열린 결말을 좋아하는 요시다 슈이치는 아마 한국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고 그려볼 수 있는 다양한 ‘분노’의 의미를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현대문단을 대표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새로운 걸작 <분노>. 아직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면 <분노>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그의 대표작으로 기억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