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7인이 차린 특별한 소설 코스
파인 다이닝
식탁 위의 소설, 눈으로 즐기고 혀로 맛보다
젊은 작가 7인이 차린 특별한 소설 코스
은행나무 테마소설 시리즈 ‘바통’, 그 두 번째
‘음식’과 ‘요리’라는 소재로 의기투합한 젊은 작가들의 테마소설집 《파인 다이닝》이 출간되었다. 소설가 최은영 황시운 윤이형 이은선 김이환 노희준 서유미는 일상의 장면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음식들과 그 이면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을 《파인 다이닝》이라는 식탁 위에 차례차례 선보인다. 같은 음식이라 하더라도 레시피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이 나듯, 독자들 역시 《파인 다이닝》을 통해 참여 작가 각각의 캐릭터가 선명히 스미어 든 일곱 작품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파인 다이닝》은 은행나무 테마소설 시리즈 ‘바통’이 《호텔 프린스》 이후 선보이는 두 번째 앤솔러지다. ‘바통’은 참신한 테마를 선정하고, 젊은 작가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입혀내어, 뛰어난 문학적 결과물들의 숨 가쁜 릴레이를 꾸준히 이어나가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바통’은 소설가들의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고, 독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초판 1쇄분에 한해 특별가 5,500원으로 판매된다. 앞으로도 계속될 ‘바통’과 젊은 작가들의 질주에 성원을 부탁드린다.
“이 새벽, 잠에서 깨어 저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새벽의 부엌은 어둡고 조용합니다.
형광등을 켜고 저는 국을 끓일 준비를 합니다.”
젊은 작가들의 시선으로 포착한
일곱 가지 음식 속 이야기들
일곱 편의 코스를 여는 첫 작품 최은영의 〈선택〉은 새벽녘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는 한 수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함께 수녀로서의 꿈을 키워오다 비정규직 열차 승무원으로 취직한 ‘언니’가 사측의 횡포로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되고, 그런 언니를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의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미역국 한 그릇에 담긴다.
황시운의 <매듭>은 불의의 사고로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된 남자와 그런 그의 옆을 지키는 여자의 위태로운 나날들을 그린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으로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하는 남자 ‘윤’과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뒤틀린 욕망을 분출하는 여자 ‘나’의 이야기가 끓어오르는 탕 속의 낙지처럼 격정적으로 읽힌다.
윤이형의 〈승혜와 미오〉는 싱글맘 가정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승혜’와 그의 연인 ‘미오’의 복잡 미묘한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승혜가 왜 밀푀유나베를 “최소한 세 사람용”으로 생각했는지, 왜 요리하기 주저했는지에 대해 톺아간다. 지금 여기에서 평범한 커플로 살아가고자 하는 두 동성 연인이 처한 겹겹의 상황을 차분한 어조로 서술한다.
각양각색의 사연을 품고 외딴섬에 하나뿐인 카페의 문을 두드린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은선의 소설 〈커피 다비드〉에 담겼다. 아침부터 밤까지, 커피 한 잔 속에 맴돌다 바닷바람을 만나 더욱 짙어진 사연들의 풍미가 향기롭게 읽힌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김이환의 〈배웅〉은 죽기 전, 도시로 기억을 저장하러 떠나는 ‘요한’과 그를 바래다주러 같이 길을 나선 ‘베드로’의 여정을 그린다. 도시에서 자라지 못한 ‘베드로’가 마트를 신기해하고 유통 기한에 관해 묻는 장면 등에서 잔잔한 재미가 배어난다.
웃통을 벗고 요리 중인 ‘가빈’과 그것을 폰카메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려는 ‘나’, 한적한 별장으로 그들이 모인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병맛 파스타>라는 장난기 넘치는 제목처럼 작가 노희준은 발칙한 두 남자의 하룻밤 동상이몽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때로는 닭도리탕 국물처럼 맵싸하게, 스파게티 면발처럼 막힘없이 술술 오가는 두 남자의 대화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코스 마지막에 놓이게 된 서유미의 〈에트르〉는 새해맞이용 케이크에 관한 ‘나’의 고민으로 시작된다. 집주인의 월세와 보증금 인상 요구 앞에서 나의 태평했던 고민은 이내 사치가 되고 만다.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한 손에 케이크를 쥔 채 일생 최대의 사치를 저지르려 하는 ‘나’의 생각과 행동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음식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그 시간과 체온과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
맛있는 음식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준비하고, 만들고,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차리고, 그릇에 담아 가져가고, 건네고,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그 시간과 체온과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았다. 딱 그 정도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는데, 정말로 식탁이 차려졌다. 재료도, 맛도, 향기도, 요리법도, 담아낸 모양새도 제각기 다르다.
― ‘기획의 말’에서
우리에게서 음식을 떼어낼 수 없듯, 음식 또한 사람 없이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음식은 늘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거울이자,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소설가 윤이형)이었다. 《파인 다이닝》은 소설이라는 돋보기로 음식과 이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게 조명해보려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파인 다이닝》의 음식들은 때로 ‘불안’과 ‘결핍’으로서의 삶 그 자체를 상징한다. 낙지 대가리를 잘라내며 “밀린 이자”와 “갚을 수 없는 원금”을 생각하는 ‘나’(<매듭>)와 “얼마나 맛있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든든하냐, 가 빵을 고르는 기준”일 수밖에 없는 ‘나’(<에트르>) 등 작품 속 인물들의 현실 위에 음식의 강렬한 이미지가 포개지며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더 크게 자아낸다.
그러나 우리가 늘 기대하듯, 음식이 품고 있는 온기는 녹록치 않은 그 삶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자본의 논리에 힘겹고 고독하게 맞서야 했던 ‘언니’를 생각하며 끓인 미역국(<선택>), 영혼을 컴퓨터로 이전하기 전 유년시절과 부모의 기억을 잠시 되새기게 해준 ‘요한’의 초콜릿(〈배웅〉), 뜻하지 않은 순간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밀푀유나베(〈승혜와 미오〉) 등을 통해 먹고 마시는 잠깐이나마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음식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요리를 하고 있을까. 그건 소설을 쓰는 마음하고는 어떻게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르지?
― ‘기획의 말’에서
SNS에서 작가들이 올리는 요리 포스팅을 보며 팁을 메모하던 중 돋아난 한 작가의 궁금증은 이에 호응하고 공감해준 여러 작가들의 마음과 합쳐졌다. 한 그릇의 음식이 그것을 만든 사람과 닮아 있듯, 작가 각각의 개성이 잘 묻어 있는 이야기들이 《파인 다이닝》에 담겼다. 풍성하게 차려진 일곱 편의 소설들을 한 코스 한 코스 천천히 즐겨주시기 바란다.
《파인 다이닝》 기획의 말
선택_최은영
매듭_황시운
승혜와 미오_윤이형
커피 다비드_이은선
배웅_김이환
병맛 파스타_노희준
에트르_서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