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다시, 정유정!
자기애의 늪에 빠진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압도적 서사 위 정교하고 서늘한 공포
우리가 기다린 바로 그, 정유정!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진이, 지니》.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한국문학의 대체불가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정유정이 신작 《완전한 행복》으로 돌아왔다. 500여 쪽을 꽉 채운 압도적인 서사와 적재적소를 타격하는 속도감 있는 문장, 치밀하고 정교하게 쌓아올린 플롯과 독자의 눈에 작열하는 생생한 묘사로 정유정만의 스타일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한편, 더 완숙해진 서스펜스와 인간의 심연에 대한 밀도 높은 질문으로 가득 찬 수작이다.
《완전한 행복》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버려진 시골집에서 늪에 사는 오리들을 먹이기 위해 오리 먹이를 만드는 한 여자의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녀와 딸, 그리고 그 집을 찾은 한 남자의 얼굴을 비춘다. 얼굴을 맞대고 웃고 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서로 다른 행복은 서서히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이 기묘한 불협화음은 늪에서 들려오는 괴기한 오리 소리와 공명하며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들은 각자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노력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그림자는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가족을 이끈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완전한 행복》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명제에서 출발하면서도,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과 부딪치는 순간 발생하는 잡음에 주목한다. 전작들에서 악을 체화한 인물을 그리기까지 악의 본질에 대해 천착했던 정유정은 이번 소설에서는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그가 타인에게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에 초점을 맞춘다. 자기애의 늪에 빠진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삶을 휘두르기 시작할 때 발현되는 일상의 악, 행복한 순간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가차 없이 제거해나가는 방식의 노력이 어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지를 보여주는 《완전한 행복》은 무해하고 무결한 행복에 경도되어 있는 사회에 묵직한 문학적 질문을 던진다.
등장인물 세 명의 시점을 교차하며 치밀하게 교직된 이야기는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독자의 발길을 옭아맨다. 쾌감이 느껴질 정도의 속도로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그녀가 만든 세계 위를 덮고 있는 서늘한 공포,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어두운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정유정의 소설은 단순히 두려움과 공포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소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한 인간을 조명하고 그것이 타인의 삶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조명한다. 노력의 그림자 안과 밖의 명도 차, 거기에 독자를 매료하는 서스펜스가 있다.
소름끼칠 정도로 정교하게 구성된 상황과 장소, 인물들은 소설적 긴장을 강화하며 압도적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소설 속 공간을 구체화하기 위해 작가는 전문가 인터뷰는 물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바이칼 호수를 답사하는 등 꼼꼼한 취재를 병행했다. 시베리아의 눈보라 속에서 더 날카로워진 작가의 문장은 올 여름, 인간의 심연, 그 깊고 어두운 늪의 바닥을 정조준하며 ‘행복의 책임’을 되묻는다. 끝까지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서 독자는 작가의 서늘한 목소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다.”
▣ 본문에서
“엄마가 비밀이 무슨 뜻이라고 했지?”
엄마가 복습을 시키듯 물었다. 지유는 대답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요.”
“그리고?”
‘그리고?’는 이런 뜻이다. 답이 완전하지 않아. 지유는 나머지를 채웠다.
“말하면 벌을 받아요.”
―본문 12~13쪽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본문 113쪽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제야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났다. 바로 그 죄를 벗고자 온 거였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기 위해서. 그러려면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되었다. 살아 있어야 했다. 적어도 아직은.
―본문 514쪽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본문 519쪽
▣ 작가의 말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부 / 그녀의 오리들
1장 009
2장 052
3장 126
2부 / 그녀는 누구일까
4장 201
5장 233
6장 289
3부 / 완전한 행복
7장 337
8장 389
9장 444
에필로그 508
작가의 말 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