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아서 단토의 마지막 미학 에세이

무엇이 예술인가

원제 What Art Is

지음 아서 단토 | 옮김 김한영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5년 6월 24일 | ISBN 9788956608754

사양 변형판 144x216 · 248쪽 | 가격 16,000원

분야 인문

책소개

예술에 대한 수십 년의 고찰을 요약한 놀라우리만치 간명한 책

데이비드 캐리어

 

단토 미학의 종착지―

현대 예술의 흐름과 함께 호흡한 세계적 거장의 마지막 통찰

 

 2013년에 타계한 세계적인 예술철학자이자 평론가 아서 단토가 예술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한 권에 집약한 유작 《무엇이 예술인가》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아서 단토는 무엇이 예술작품인가?”라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50년 전 자신이 보고 예술의 종말을 선포했던 〈브릴로 상자〉를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앤디 워홀의 오브제 〈브릴로 상자〉는 브릴로비누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포장 상자와 외관상 동일한데 왜 예술작품인 것일까?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작품을 결정하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의 미학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현대에 들어 실험적이고 탈경계적인 예술작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다른 철학자들이 예술을 열린 개념으로 정리한 것과 달리 예술을 닫힌 개념으로 믿고 정의하려 애쓴 단토의 여정이 오롯이 녹아 있는 이 책은, 독특한 작품들을 보면서 이것도 예술인가?’라고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현대미술 안내서가 된다. 이에 미학을 전공한 역자가 세심히 각주를 넣었고,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원서와 달리 주요한 작품들의 도판을 함께 수록하여 거장의 에세이를 더욱 즐거이 읽을 수 있게끔 맵시를 더했다.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석학 아서 단토의

마지막 미학 에세이

 

단토는 한 물체를 예술작품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아름다움처럼 눈에 보이는가치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각적인 것과 무관한 존재론적인 특질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단토가 예술의 결정적 특질로 지적한 것은 구현된 의미embodied meaning이다. 흔히들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미적 특질을 떠나 한 작품 안에 어떠한 의미가 작가의 손에 의해 구현된다면 그것이 곧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단토는 자신이 생각한 이 예술의 본질이 어느 공간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단일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푸생으로부터 마네, 뒤샹, 워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로부터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미술, 사진 등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끌어온다. 또한 플라톤이 정의한 모방으로서의 예술의 개념에서 시작해 시대에 따른 예술에 대한 다양한 논의, 그리고 데카르트, 칸트, 헤겔, 하이데거 철학까지 촘촘하게 엮어 예술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를 풍부하게 개진한다.

 

무엇이 예술이 되는지,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예술작품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철학적인 기준을 탐사한다

 

1장 〈깨어 있는 꿈〉은 마치 20세기의 현대 미술사를 집약한 개관과도 같다. 사진과 활동사진의 발명 이후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강조하던 알베르티의 기준을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한 예술을 이야기하며, 피카소와 마네, 마티스 등의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미국의 모더니즘 화가들을 거쳐 뒤샹, 워홀에 이르는 여정을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마침내 1964년에 이르러 자신이 예술의 종말을 선언케 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다다른 단토는, 브릴로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판지 상자와 똑같이 스텐실한 〈브릴로 상자〉가 어떤 특질을 가져서 예술작품이 되는지를 고찰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사이에는 눈에 안 보이는’, ‘철학적인특질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거기에서 당시 대중의 삶을 박제하려 한 앤디 워홀의 시선을 찾는다. 워홀이 부여하려 한 의미, 그 의미가 구현된 것, 이것이 단토가 시사하는 예술의 철학적인 특질이다.

2장 〈복원과 의미〉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의 복원 작업에 대한 단토의 견해다. 복원이 세월의 흐름에 의한 먼지 더께만을 제거한 것인지, 미켈란젤로가 색이 바래고 먼지가 쌓일 것을 예상하며 그린 원 그림으로부터 영 멀어져버린 것인지에 대한 분분한 논쟁으로부터, 단토는 천장 벽화에 그려진 그림들의 관계를 통해 중요한 것은 색의 선명함이나 색채 그 자체가 아니라, 미켈란젤로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 그 자체임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로부터 〈술 취한 노아〉에 이르는 9개의 그림들이 〈이브의 탄생〉을 중심으로 양분되고 대홍수로부터 살아남도록 선택받은 인간 노아의 어쩔 수 없이 타락한(술에 취한) 모습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그 내러티브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단토가 보기에 복원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색감이 아니라 미켈란젤로가 구현해 내려던 이야기와 형상들이다. 이에 단토는 콘디비나 바사리 같은 동시대인들이 천장 벽화에 대해 그 색채보다도 구도나 원근법, 단축법 등에 감탄했음을 그 근거로 보탠다.

3장 〈철학과 예술에서의 몸〉의 경우에는 철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마음/몸 문제에 관해 다루고 있어 일견 다른 장들과 동떨어져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장에서 단토가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에서의 몸이 또 다른 의미의 구현’, 육화된embodied마음이라는 것이다. 단토는 데카르트가 논리상 몸과 마음이 독립되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몸과 마음이 별개거나 한 가지라는 차원을 떠나 마음이 육화된 것이 곧 몸임을 이야기하려고도 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제 몸에 이상이 생긴 것에 직감적으로 반응하는 아기의 차원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독립되어 있되 몸에 일어난 변화는 (의학 장비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몸의 주인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육화된 마음은 유럽의 회화에서 풍부하게 드러난다. 푸생의 〈성가족〉같은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성 요셉과 성모마리아, 아기 예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육아에 노곤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로부터 아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과학적 성취를 통해 고대 그리스 때보다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지만, 예술로 구현되는 양상은 고대 그리스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예술작품의 결정적 기준인 구현된 의미를 통해

예술이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여 늘 단일한 것임을 증명한다

 

〈경쟁의 끝〉이라는 제목이 붙은 4장은 예술들 사이에서 서로 우열을 가리는 파라고네paragone를 이야기한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회화-조각 파라고네가 이어졌지만, 19세기에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그릴 것을 주문받던 회화와 사진 사이에 파라고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진이 예술의 지위를 인정받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언정 인상파를 위시한 근대 이후의 미술들이 발달하기 시작한 그 맹아가 바로 사진의 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토는 그 덕분에 이것도 예술인가?’ 싶은 작품들이 등장했음을 지적하며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구체화하는 데에 사진이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게 된 예술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그 너머 작가의 의도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5장 〈칸트와 예술작품〉은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논한 칸트의 예술 관념에 관해 이야기한다. 단토는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에 대해 취향 등의 아름다움과 전혀 무관한 정신을 이야기한다는 데에 주목한다. 기교적으로 완벽한 도메니키노의 그림이 도메니키노 고유의 착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던 당시의 논란은 정신의 부족에 대한 완벽한 사례다. 도메니키노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지금 그의 그림은 당시만큼 찬미되지 못한다. 반면 아름다움을 놓고 봤을 때 추하기까지 한 현대미술작품도 시대적인 맥락에서 빼어난 착상을 가졌다면 칸트의 관점에서 충분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이는 헤겔이 《미학 강의》에서 자연미와 구분한 예술미와도 통하는 개념으로, 예술작품에 화가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해 구현해낸 어떠한 의미를 일컫는다는 점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단토의 예술에 대한 생각, ‘구현된 의미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미학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6장에서 단토는 다시금 〈브릴로 상자〉로 돌아온다. 레디메이드의 뒤샹과 워홀 이후, 미학은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먼저 단토는 그간 예술철학의 부속 정도로 취급받아온 미학이 다시금 예술 분석의 한복판에서 재조명받는 학계의 분위기를 언급하며, 〈브릴로 상자〉이후 철학자로서 예술과 미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온 단토가 자기 논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는 망막적인 것으로 상징되는 모든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예술로부터 분리하려 한 뒤샹의 견해를 인용하며, 브릴로 포장 상자와 〈브릴로 상자〉가 지각적으로 같다고 해서 존재론적으로, 즉 철학적으로 같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 예술을 대하는 미학은 이제 아름다움을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그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 단토가 말하는 미학의 미래.

 

뒤샹과 워홀 이후, 미학은 어디로 가는가?

〈브릴로 상자〉이후 예술의 개념에 대해 숙고해온,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의 미학을 집약한 정수

 

단토는 책의 말미에 “1964년에 〈브릴로 상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독자들에게 그 작품에 대해 숙고하라고 재촉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때때로 명료성을 거부했다감사의 말라고 고백한다. 그에게 예술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감사의 말이었던 〈브릴로 상자〉로 시작해 〈브릴로 상자〉로 끝나는 이 에세이는, 단토가 전에 없이 예술에 대해 명료하게 내리는 제언이다. 예술작품의 존재론적인 특질로 규명한 의미의 구현을 자신의 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단일한 테제로 잡은 것이다.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의 복원 논쟁에 있어서도, 마음/몸 문제에 있어서도, 그림과 사진의 파라고네에 있어서도, 칸트 철학에 있어서도, 미학의 미래에 있어서도 의미구현은 수미일관한 주제가 된다. 단토의 마지막 저서인 이 책 《무엇이 예술인가》는 그의 일생의 논의들을 단 한 권의 책에 유려한 문장들로 놀라우리만치 간명하게 응축한 결과물이다.

 

 

수록된 원색 도판 목록

 

게르치노, 〈성모마리아의 초상을 선보이는 성 누가〉

고야, 프란시스코, 180853일〉

다비드, 자크 루이 〈마라의 죽음〉

데 쿠닝, 빌럼, 〈여인 Ⅰ〉

도미에, 오노레, 〈나다르, 사진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다〉

두스뷔르흐, 테오 반, 〈구성()〉 연작

뒤샹, 마르셀,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 2

뒤샹, 마르셀 〈샘〉(1917)(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촬영)

들라로슈, ,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

뤼미에르 형제 감독,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마네, 에두아르,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연작 중 마지막 작품

마네, 에두아르, 〈생라자르 역〉

마네, 에두아르, 〈올랭피아〉

마티스, 앙리, 〈모자를 쓴 여인〉

만테냐, 안드레아,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말레비치, 카지미르, 〈검은 사각형〉

머이브리지, 이드위어드, 〈움직이는 말〉

모리스, 윌리엄, 〈딸기 도둑〉

미켈란젤로,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

〈술 취한 노아〉

〈요나〉

〈이브의 창조〉

비들로, 마이크, 〈워홀(브릴로 상자들, 1964) 아님〉

오필리, 크리스, 〈성모 마리아〉

저드, 도널드, 〈무제〉

, 마크, 〈셀프〉

피카소, 파블로, 〈아비뇽의 아가씨들〉

폴락, 잭슨, 〈가을 리듬〉

푸생, 니콜라, 〈성가족〉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부활〉

해먼스, 데이비드, 〈무제〉

 

 

☆ 추천의 말

 

“《무엇이 예술인가》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단토식의 개관이자 그 귀결로 얻게 되는 새로운 예술 개념에 대한 성찰이다. 압축해서 말하면, 그것은 예술 개념에 대한 뒤샹과 워홀의 도전에 맞서는 철학적 응전이다. 미학의 가두리에서 벗어난 예술을 단토는 ‘구현된 의미’라는 정의를 통해서 다시 포획하려고 한다. 새로운 예술작품이 갖는 의미와 의미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보기 드문 강력한 그의 해명과 함께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 급수도 한 단계 올라선 느낌이다.”

_이현우(서평가․인문학자)

 

“놀라우리만치 간소한 이 책은 수십 년의 숙고를 요약하여 보여주고, 시각예술의 논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저자의 철학 체계로 들어갈 수 있는 완벽한 입구를 제공한다.”

_데이비드 캐리어, 《프루스트/워홀: 분석미학》 저자

 

“영향력 있는 단토 미학의 주요 주제들을 공들여 다룬 이 책은 각 주제들을 새롭고 매혹적인 방법으로 발전시키고, 과거의 거장들에 대한 명료한 해석을 내놓는다. 단토는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로 재치, 학식, 감수성 그리고 우리를 매혹적으로 감염시키는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이 아름답게 빛나는 에세이들을 선보인다.”

_리처드 슈스터먼, 《몸으로 생각하기: 신체미학》 저자

 

 

☆ 아서 단토에 대한 찬사

 

“아서 단토는 깊은 지식, 명쾌한 시각, 모험심을 겸비한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철학자다.”

_리처드 세넷, 《장인》 저자

 

“세련되고 명석한 작가, 단토의 문장들은 강물처럼 부드러이 흐른다.”

_데보라 솔로몬,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단토는 예나 지금이나 다원주의의 제사장이자, 예술에는 특유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대(大) 평론가다.”

_《파이낸셜 타임스》

 

“그의 글은 품위 있고, 통찰은 예리하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 깨어 있는 꿈
2장 | 복원과 의미
3장 | 철학과 예술에서의 몸
4장 | 경쟁의 끝 ─ 그림과 사진의 파라고네
5장 | 칸트와 예술작품
6장 | 미학의 미래

참고문헌

작가 소개

아서 단토 지음

미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철학자로, 오랜 기간 《네이션(The Nation)》의 미술평론가로 활약하며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단토는 1924년 미시건 주 앤아버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자랐다. 웨인 주립대학교에서 미술과 역사를 공부한 뒤 컬럼비아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철학을 수학했다. 1949년부터 1950년까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파리에서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지도를 받았다. 1951년에 컬럼비아대학교로 돌아와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은퇴 후 존슨 명예 철학교수가 되었다. 미국 철학회 부회장과 회장, 그리고 미국 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단토는 철학의 여러 분야에 크나큰 공헌을 해왔지만 특히 예술철학과 역사철학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관심은 사고, 감정, 예술철학, 표상이론, 철학적 심리학, 헤겔 미학, 그리고 메를로 퐁티와 니체,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저서로 《일상적인 것의 변용》, 1990년도 미국 도서평론가협회 평론부문을 수상한 《만남과 성찰: 예술의 역사적 현재(Encounters and Reflections: Art in the Historical Present)》 《후기 역사적 관점에서 본 시각예술(The Visual Arts in Post-Historical Perspective)》 《가장자리의 유희(Playing With the Edge)》 《예술의 종말 이후》 《미래의 마돈나(The Madonna of the Future)》 《비자연적인 기적들(Unnatural Wonders)》 《미의 남용(The Abuse of Beauty)》 《앤디 워홀 이야기》 등이 있다.

김한영 옮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무엇이 예술인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삶과 죽음의 시》 등이 있다.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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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서평
[책과 삶]뒤샹의 변기·워홀의 상자를 왜 ‘예술’이라고 할까
출처: 경향신문
현대미술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렵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한 이래로 추상표현주의, 플럭서스,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 다양한 사조들이 숨가쁘게 명멸했지만, 그것이 왜 예술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보편적 아름다움이나 신기함,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서 단토(1924~2013)는 미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철학자로,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내는 한편 ‘네이션’지에 오랫동안 미술평론을 기고하면서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그는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본질주의자이다.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기는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예술의 본질이 외면당했던 시기다. 예술 작품을 미학의 관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이 작품이 누구의 이익에 종사하는가’를 질문했다.

서구·자본·백인·남성의 시선에 사로잡힌 예술이 비판받고 해체되는 한편 탈식민주의, 마르크시즘, 페미니즘 등의 가치가 작품을 판단하는 잣대가 됐다.

그러나 단토는 해석을 향해 열린 예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의 ‘닫힌 개념’을 규명하는 데 치중했다. 그의 질문은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1964년작 ‘브릴로 상자’가 왜 예술 작품인지 묻는 것으로 시작됐다. 수세미 브랜드인 브릴로의 포장상자를 만든 사람은 상업디자이너 제임스 하비였다. 상자 디자인은 물론 아름다웠고, 소비자들의 구매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워홀은 브릴로 상자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을까.

단토의 예술관은 “어떤 것이 예술 작품일 때 그것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의미는 대개 예술 작품을 물질적으로 구성하는 오브제 속에 구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술 작품은 구현된 의미”이다. 뒤샹의 변기가 예술인 이유는 심미적 즐거움이 예술의 모든 것이라고 믿던 시대에 예술에는 이렇다 할 심미적 특성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브릴로 상자’를 만든 워홀의 위대함은 상자의 아름다움(더구나 다른 사람의 디자인이다)이 아니라 포장상자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중적 감수성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온 “철학적 전환”에 있다. 단토에게 작품의 심미성이란 의미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저자가 별세한 2013년에 나온 이 책은 그의 미학관을 결산한 마지막 에세이다. 20세기 현대미술사를 집약한 개관에 해당하는 글 ‘깨어있는 꿈’으로부터 시작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 복원작업에 대한 견해를 밝힌 ‘복원과 의미’, 예술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파라고네의 개념을 인용해 사진이 회화에 미친 영향을 탐구한 ‘경쟁의 끝’,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논한 예술관념이 아름다움과 무관한 정신을 이야기했다고 주장하는 ‘칸트와 예술 작품’ 등 개별적인 소논문이 이어진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 복원에 대한 단토의 견해는 ‘의미의 구현’이라는 그의 예술관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색돼 단색 드로잉으로 보였던 벽화를 복원한 결과, 분명한 선과 화려한 색채가 드러났다. 그것이 과연 미켈란젤로의 의도를 살리는 일일까. “깎이지 않은 덩어리(미켈란젤로는 조각가였다)가 사라질 때 대단히 귀중한 의미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단토의 비판이다. 복원작업은 습식 프레스코화는 보존할지 몰라도, 작가의 형이상학적 의도가 실린 건식 프레스코화 부분을 깎아먹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작품의 의미를 왜곡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 ‘미학의 미래’에서는 저자가 당대의 지적 풍토에서 어떻게 본질주의를 견지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들어있어 흥미롭다. 1960년대에 출현해 1970년대 학계를 풍미한 해체주의는 미술사나 문화연구의 지형을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묻는 정체성의 정치학으로 확 바꿔버렸지만, 철학만은 무풍지대였다. 일찍이 비트겐슈타인이 형이상학을 파괴하면서 일으킨 변화가 웬만한 자극에는 끄떡 않는 면역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단토는 “지각되지 않는 차이들(예술이냐 아니냐)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밝히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고, 그것이 “구현된 의미”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회고한다.

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ng.com
‘구현된 의미’ 가질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출처: 조선일보
예술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예술인가’다. 전자가 예술의 정의를 말한다면, 후자는 예술을 감식하는 잣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가 예술의 준엄한 감식자로서 60여년간 숙성시킨 지식을 총망라한 책이다.

예술의 개념을 바꿔버린 뒤샹의 ‘샘’,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이야기 축으로 삼는다. 저자는 ‘어떤 것에 관한 것’이며 ‘구현된 의미’를 지닐 때 예술이 된다고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골판지로 된 브릴로(철 수세미) 포장 상자를 똑같이 재현한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예술이다. 브릴로 상자에 ‘관한 것’으로 ‘구현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지난 예술사를 ‘큰 보폭’으로 되짚는 책이라 친절한 설명은 부족하다. 문맥에 따라 ‘art’의 번역을 놓고 ‘미술’이냐 ‘예술’이냐 고민했다는 사려 깊은 번역가가 그 간극을 메워준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예술과 상품의 경계…철학이 답하다
출처: 헤럴드경제
뒤샹의 ‘샘’·워홀의 ‘브릴로상자’예시
칸트·하이데거 등 철학적 시각서
작품 너머의 ‘작가 의도’다양하게 분석

“작가의 철학 부여됐다면 예술”
세계적 거장의 명쾌한 미학적 정의


레디메이드를 이용한 마르셀 뒤샹의 ’샘‘에서 시작된 예술의 탈선(?)이 앤디 워홀 이후 공장식 복제를 통해 일상과의 경계가 사라진 마당에 새삼 예술과 상품의 차이를 따진다는 것은 생뚱맞을 정도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미학자 아서 단토라면 다르다. 2013년 타계한 단토는 마지막까지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를 놓지 않았다. 철학자들이 예술을 열린 개념으로 정리한 것과 달리 단토는 예술을 닫힌 개념으로 봤다.

‘무엇이 예술인가’는 2013년에 발간된 단토의 유작이다. 단토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50년 전 ‘예술의 종말’을 선언했던 ‘브릴로 상자’를 다시 꺼내든다. 앤디 워홀의 오브제 ‘브릴로 상자’(1964년 작)는 ‘브릴로’ 비누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포장 상자를 그린 작품으로 이는 외관상 실제 포장상자와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단토는 한 물체를 예술작품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아름다움처럼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각적인 것과 무관한 존재론적인 특질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단토가 예술의 결정적 특질로 삼은 것은 ‘구현된 의미’이다. 흔히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미적 특질을 떠나 한 작품 안에 어떤 의미가 작가의 손에 의해 구현된다면 그것이 곧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단토는 이 예술의 본질이 어느 시대, 공간에서나 일관되게 통했음을 설명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나 피에로의 델라 프란체스카, 푸생으로부터 마네, 뒤샹, 워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쟝르를 끌어와 설명한다. 또한 플라톤의 모방개념에서부터 데카르트, 칸트, 헤겔, 하이데거 철학까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 코로 엮어내며 예술의 본질을 규명해 나간다.


‘브릴로 상자’로 돌아오면, 브릴로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판지 상자와 그걸 똑같이 스텐실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무엇이 다를까. 단토는 앤디 워홀에게서 눈에 보이지 않는 철학적인 특질을 찾아낸다. 그건 당시 대중의 삶을 박제하려 한 앤디 워홀의 시선이다. 워홀이 부여하려 한 의미와 그 의미가 구현된 것, 이것이 단토가 말하는 예술의 철학적 특징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의 복원작업에 대한 단토의 견해도 의미에 집중한다. 복원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 주로 선명도와 색채에 치중한 것과 달리 단토는 미켈란젤로가 전하려 한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 즉 하느님의 천지창조로부터 ‘술 취한 노아’에 이르는 9개의 그림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대홍수로부터 살아남은 선택받은 인간 노아의 타락한 모습이다. 말하자면 술취한 벌거벗은 노아는 ‘제2의 이브’인 셈이다. 술취한 노아는 나체상태로 몸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창세기에서 노출 은 파괴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노아의 성기를 본 아들 함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된다. 함이 노아의 나체를 본 탓에 이 세상에 불평등이 생겨나고 그 결과 정치가 인간의 삶에 들어온다. 술에 취해 벌거벗은 노아는 인간의 뿌리깊은 나약함을 보여주며 오직 구원의 기적만이 우리에게 부여된 본질적인 죄악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창조로 시작한 이야기는 신이 육신을 갖고 태어났다가 다시 부활하여 역사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결말로 끝나는 것이다. 단토는 이 이야기에 요체가 있다고 봤다.


단토는 사진의 발명이 어떻게 예술의 본질을 가르는데 기여했는지도 들려준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릴 것을 주문받던 회화는 사진과의 우열을 가릴 수 밖에 없게 되고 다른 무엇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게 된다. 아예 상품을 그대로 복사한 듯한 팝아트에 이르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결국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예술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게 된 예술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그 너머 작가의 의도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단토의 이런 의미부여론은 칸트의 예술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에 대해 취향의 ‘아름다움’과 무관한 ‘정신’을 이야기한다. 기교적으로 완벽한 도메니키노의 그림은 아름답지만 지금 그다지 찬미되지 않는 반면 추하기까지 한 현대미술도 시대적인 맥락에서 빼어난 착상을 가졌다면 칸트의 관점에서는 충분한 예술작품이 된다.

단토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브릴로 상자’로 돌아온다. 레디메이드 뒤샹과 워홀 이후 미학은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브릴로 포장 상자’와 ‘브릴로 상자’가 지각적으로 같다고 해서 존재론적으로 즉, 철학적으로 같은 것은 아니라고 단토는 강조한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미술을 대하는 미학은 이제 아름다움을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존재 의미를 따지는 것이 된다. 바로 단토가 말하는 미래의 미학의 모습이다.

이 책은 단토의 일생의 논의들을 간명하게 한 권의 책으로 응축한 거장의 엑기스라 할 만하다. 미술작품 도판을 함께 실어 현대미술을 어려워 하는 이들을 위한 현대미술 입문서로도 제격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예술의 종말’ 선언한 아서 단토의 통찰…무엇이 예술인가
출처: 연합뉴스
번역서 출간…“예술작품은 구현된 의미”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미술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아서 단토(1924~2013)는 1964년 앤디 워홀이 뉴욕에서 전시한 ‘브릴로 상자’를 본 뒤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갤러리 전시작으로 관람객에게 선보여진 게 아니었다면 같은 이름의 비누 세제를 운반하는 포장 상자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단토의 ‘무엇이 예술인가’는 이런 물음에서 시작해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단토의 예술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저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은 일상에서 보는 물, 돌, 나무, 철, 종이 등 다양한 소재나 물건(?)을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접하곤 “이것도 예술인가” 하고 자문하고 때로는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의미가 ’작품’에 숨어있겠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미국 철학회 부회장과 회장, 미학회장을 역임한 단토는 다양한 예술철학에 관심을 가졌고 \\\\\\\'네이션\\\\\\\'의 미술평론가로 일하며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던진 예술의 본질에 대한 사고는 실은 예술과 그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해석된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노래와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을 그토록 강력하게 만드는 힘은 애초에 그것을 예술로 만드는 요인에서 나온다”며 “인간의 마음을 그렇게 깊이 감동시키는 것은 예술이 유일무이하다”고 말한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설명하며 “그림의 대상은 돛배, 꽃다발, 풍경, 초상, 소풍 등 일상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적는다.

단토는 이어 하얀 남성용 소변기만 달랑 작품으로 내놓아 도대체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소개한다.

단토는 이 지점에서 만일 눈에 보이는 차이가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운을 뗀다.

“나는 예술철학에 관한 첫 번째 저작에서 예술작품은 어떤 것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의미를 추론하거나 파악하지만, 의미는 전혀 물질적이지 않다. 그래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되는 문장과 다르게, 의미는 그것을 담고 있는 사물로 구현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술작품은 구현된 의미라고 선언했다.”(68쪽)

책은 플라톤이 생각한 예술의 개념에서 시작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 같은 회화, 조각, 사진 그리고 데카르트, 칸트 등에 이르기까지 예술작품과 예술과 관련된 철학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248쪽. 1만6천원.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대답
출처: 국민일보
2013년 타계한 세계적인 예술철학자이자 평론가 아서 단토가 예술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한 권에 집약한 유작. ‘무엇이 예술작품인가?’라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단토는 50년 전 자신이 보고 예술의 종말을 선포하게 만들었던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브릴로란 브랜드의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포장 상자와 똑같은 것이지만 워홀의 선택에 의해 예술작품이 됐다.

단토는 한 물체를 예술작품으로 결정하는 데는 아름다움처럼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론적 특질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즉 작가를 통해 어떤 의미가 구현된다면 그것이 곧 예술작품이 된다는 게 단토의 논지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현대예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장르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현대에 들어 실험적이고 탈경계적인 예술작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다른 철학자들이 예술을 열린 개념으로 정리한 것과 달리 이 책에는 예술을 닫힌 개념으로 믿고 정의한 저자의 여정이 오롯이 녹아 있다. 텍스트로만 이뤄진 원서와 달리 한국판은 도판을 함께 수록해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장지영 기자
유명작품들로 본 예술의 본질
출처: 문화일보
예술 작품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이 예술이 되며, 또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세계적인 예술철학자이자 평론가인 아서 단토(1924~2013)가 예술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한 권에 집약한 유작이 나왔다. 50여 년 전 앤디 워홀의 오브제 ‘브릴로 상자’를 보고 단토는 ‘예술의 종말’을 선포했다. 즉, 비누 세제를 운반하기 위한 포장 상자와 외관상 동일한 이 오브제가 예술로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던지며 그의 미학적 고찰이 시작된 것.

책에는 단토의 깊은 사유와 함께, 미학을 전공한 역자의 세심한 각주가 함께 실려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평소 어떤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이것도 예술인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는 모든 이에게 훌륭한 현대미술 안내서가 된다.

단토는 자신이 생각한 예술의 본질이 어느 공간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단일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 벽화부터 푸생, 마네, 뒤샹, 워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조각, 설치 미술, 사진 등 온갖 장르의 작품을 끌어온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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