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 없는, 전아리와의 인터뷰

소설집 출간은 4년 만인데요, 감흥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무엇보다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좋습니다. 해설도 무척 흥미로웠고요. 소설집은 장편소설과는 달리 글 색깔을 더 다양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매력이 있잖아요. 저를 한 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신기하고, 뿌듯합니다.

이번 소설집의 가장 큰 흐름이 될 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관된 주제는 ‘폭력과 욕망’입니다. 가시적인 무력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교묘하게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 폭력의 알고리즘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시간이나 공간, 혹은 당연시 여기고 있는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요.

폭력이라는 주제는 여성 작가라면 잘 다루지 않았던 것이기도 한데요, 이것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기질적인 이유일 듯 합니다. 영화도 좀 하드코어하거나 욕망에 관련된 내용을 좋아하고…ㅋㅋ 사실 저는 폭력의 어두운 면 외에도 그 오묘한 미학적 매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평소 삶의 어느 요소가 사실은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삶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뜰 수 있다고 믿거든요.

폭력의 두 측면, 당하는 자와 가하는 자. 이들을 묘사할 때 보통 어느 쪽에 마음이 가시는지요?

: 소설마다 다른 듯 합니다. 그 소설의 주제에 따라서 무게 중심을 좀 달리 싣는 편이에요.

캐릭터를 설정할 때 인물 이름이나 외양을 정할 때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편인가요?

: 인물 이름은 그냥 주위 사람들의 이름 중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을 끌어다 쓰기도 하구요. 외양은… 거리에서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미지에서 주로 얻어오는 편입니다.
이건 제가 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학생인 경우가 많아요. 즐겨 쓰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10대의 나이대가 가진 매력을 좋아합니다. 가장 예민하면서도, 어른들의 짐작과 달리 충분히 성숙해 있고, 무엇보다 세상과 스스로에 대해 솔직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죠. 더불어 사랑이며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요.

가장 아끼는 단편소설은 무엇이고, 가장 쓰느라 힘들었던 단편소설은 무엇인가요? 또 본인이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는 단편소설은요?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글은 ‘플러스마이너스’예요. 원래 장편으로 써보려 했던 글이라 그런 것 같아요. 외설로 빠지지 않게끔 주의하며 주제를 전달하느라 어려웠던 건, ‘K이야기’. 통쾌해서 재미있는 건 ‘작가지망생’.

이번 소설집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올해초에 출간한 <앤>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훨씬 이전부터 쓰여진 것들이죠. 따라서 이번 소설집의 어두운 매력은 전아리 작가가 이제 드디어 찾아낸 본인만의 작풍이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실 제 첫 번 째 소설집도 그리 유쾌발랄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요.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 방향성이 좀 더 분명히 잡힌 듯 합니다. 하지만 ‘어두운’ 분위기라고 표현하면 좀 서운해요. 어두운 굴속에서 빛나는 뱀을 잡아내듯, 그 속에서도 다양한 색감을 뽑아내려 했거든요.

그렇다면 그 작풍을 바꾸는 데에 전혀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 소설집만 두고 봤을 때 작풍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금의 글 분위기가 언제 백팔십도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저는 원하는 서사를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작풍을 바꿀 용의가 있거든요. 변화무쌍한 작가가 되려고 해요.

학업과 글쓰기를 동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글은 언제, 어디서 쓰시나요?

:학교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쓰기도 하고, 쉬는 날은 동네 카페에서 주로 씁니다.

단편소설 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단편에서도 서사를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반전을 넣는 것도 아주 좋아하고요. 하지만 작업의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첫 문장을 결정하는 데 가장 고심하곤 합니다.

글을 쓰는 데 영향을 줬던 소설이나 책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항상 달라요. 좋은 글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예술 작품들을 접하면 급히 영감을 받고,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되거든요. 근래에 가장 자극을 받았던 작품들은 주로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들, 그리고 현상학 관련 하이데거의 저서들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어떤 책일까요?

: 뭐 엄청 여러 권이지만, 지금 딱 떠오르는 건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입니다. 스릴 넘치는 서사며 그에 기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까지,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 같아요.

만약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다른 일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으세요?

:연출가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체력을 기르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 ‘유혹의 기술’이라는 장편소설입니다. 실연과 복수에 관한 주제를 다룬 글이구요. 전개가 빠른 연애 스릴러랄까. 달콤 살벌한 내용입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쓰고 싶은 글은 아주 많습니다. 어떤 글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울 만큼요. 하지만 부동의 한 가지는, 서사 중심의 글을 쓸 거라는 것입니다. 탄탄하고 빠른 서사 속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과 그들의 심리를 표현해낸 글이 제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소설입니다.

20대 친구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책을 말씀해주세요.

: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무척 좋아해요. 사랑과 욕망을 맛깔스럽게 표현해 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저것 묻고 따지고 연애하는 데 지친 청춘들한테 진짜 사랑과 순정에 대한 향수를 끌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도 시간을 잊고 책 속에 푹 빠지고 싶다면, 추천해요.

독자분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 건강하세요. 날도 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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