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설집의 가장 큰 주제는 무엇인가요?
주제적 측면에서는 이전 소설집들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소설들이 다소 근거리의 시선이었다면 이번에는 원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할까요. 원거리의 시선에서 좀 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소설 속에 담고 싶었습니다.
빨치산 부모님 이야기를 소설화한 『빨치산의 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져가고 있는 것, 혹은 바뀐 것은 무엇인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 관심은 역사와 인간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역사를 바라보는 거리,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20대 초에 썼던 『빨치산의 딸』은 제 부모님의 역사였고, 밝혀지지 않은 역사였기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저도 나이가 들었고, 더 많은 경험을 했고, 그사이 우리 사회도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습니다. 변화를 겪고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죠. 더 넓어져야 한다는 게 제 바람이고 그 시절보다야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렇기를 바랍니다.
이 소설집 속에서 가장 아끼는 단편은 무엇이고, 쓰느라 가장 힘들었던 단편은 무엇인가요? 또 작가님이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단편은요?
음, 아끼는 단편은 <숲의 대화>,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단편은 <혜화동 로터리>, 크게까지는 아니고 좀 힘들었던 단편은<절정>입니다. <절정>은 노숙자로 전락하기 직전의 고통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시간이 걸렸는데요. 진실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을 놓으면 노숙자로 전락할까 봐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그러한 분들의 삶이 아직도 제게는 어렵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노약자, 중증 장애인, 이민 여성 등 ‘겨우 살아가는 존재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그냥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제 마음을 움직였던 건데요. 생각해보니 잘난 사람, 예쁜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의 화려한 삶은 제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나 부러워하고 있잖아요.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쓸쓸한 삶에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쩌면 저 역시 그런 시간들을 보내봤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냥 그런 것에 마음이 끌리는 성정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나이 들어 보니 꼭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보이는 삶에도 반드시 아픔은 있더라고요. 누구에겐들 살아가기가 쉽겠어요. 살아 있는 한 고통이나 아픔, 슬픔은 피해갈 수 없죠. 어쩌면 아픔은 생명의 쌍둥이 형제인지도 모르지요.
일상 속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잘 건져 올리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소재는 어떻게 찾는지요?
그야말로 일상에서요. 저 역시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친구, 선후배, 가족, 이웃집 아저씨, 동네 이장 아저씨, 이런 분들의 삶을 늘 지켜보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그렇겠지만요. 때로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들려오는 뒷좌석의 이야기가 제 마음을 끌 때도 있습니다. 미용실에서 아줌마들의 수다를 듣다가 어떤 말 한마디가 제 소설의 한 문장으로 탄생할 때도 있고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소설의 소재가 됩니다.
소설 속 농촌의 현실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피부로 느끼는 오늘의 농촌은 어떤가요?
시골에서 살긴 하지만 제가 사는 곳이 인가 드문 산속이고 집밖 출입을 잘 하지 않아 시골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합니다. 시골 내려온 지 겨우 2년이니까 아직은 외지인인 셈이죠. 그냥 눈에 보이는 현실이라고 한다면 어디를 가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성들이 있다는 것, 그분들이 중장년층만 남은 시골의 노동력을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다는 것, 그분들과 그 자손들에게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 뭐 이런 정도의 현실을 본 것 같습니다. 노인 문제야 다들 아시는 거고요.
고향에 내려가서 살고 계신데, 시골생활이 어떠신지요?
시골생활이야 당연히 불편하지요. 겨울에는 하루 두 번 아궁이에 불도 지펴야 하고요. 여름이면 온갖 벌레들과 전투도 치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충분히 경험해서 면역력도 있는 데다 불편함이 주는 여러 가지 선물도 있죠. 저 먹을 채소 몇 가지 키우는 수준이지만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예전보다 단순하고 담백해지는 느낌도 아주 좋고요.
작품을 쓰는 데 영향을 줬던 소설이나 책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특별히 어떤 작품, 어떤 작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평소에 이문구 선생님의 『관촌수필』과 박상륭 선생님의 『죽음의 한 연구』를 즐겨 읽습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그분들의 따스하고 깊은 시선에 늘 감탄하면서요.
단편들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소재도 다양하고 풍자적인 스타일의 작품도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요?
좋은 소설? 죄송합니다. 이런 질문이 제일 어려워서요. 어떤 작가나 작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앞서 말한 것은 어떤 소설이 좋은지를 저 스스로 잘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를 안다고 해도 제 삶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글이 나올 리 없고요. 그냥 저는 제가 따뜻하고 넓고 깊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구례에 내려가 사시면서 중앙대에서 문학도 가르치고, 여타 문학심사나 강의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보통 소설은 언제 쓰시는지요?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요.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소설 쓸 시간은 반드시 있습니다. 어차피 과작이잖아요.(웃음)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하나의 소설을 통해 저 자신이 성장하는 느낌을 더 좋아합니다.
만약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다른 일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으세요?
별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농부로 살고 있다면 좋겠네요. 저는 농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직한 노동으로 생명을 키워내고 그것으로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잖아요? 한 톨의 쌀이 소설 한 편보다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가능하다면 제 글을 천천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밥도 천천히 오래오래 먹는 게 좋다잖아요. 글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요. 느릿느릿, 천천히, 산책하듯 읽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