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을 녹여 완성한 <불의 기억>

세계문학상 수상하신 지 딱 1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을 내셨는데요.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합니다.

《불의 기억》은 현대에 와서 전통의 방식이 거의 사장되어 버린 종의 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종의 제작을 둘러싼 인간들의 욕망과 예술로 향한 광기의 인간들을 다룬 내용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핵심 주제는 무엇입니까?

오랜 세월 보존되는 하나의 예술품에 비해 인간의 삶은 부조리하고 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부조리하고 허약한 삶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자신을 희생해야 비로소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얻고자 하는 세상이 강렬하면 할수록 자신의 희생 또한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게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후기에 이 작품에 대해 ‘가슴속에 화인처럼 박힌 화두’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그 화두란 무엇인지요?

‘소멸은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는가’가 화두였습니다. 그 답을 어쩌면 시간의 속성이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멸되는 동시에 생성되는 그 속성. 소멸된 모든 인간들이 사실은 다른 어떤 존재로 생성되어 어딘가에 인간이 아닌 전혀 다른 물질이나 자연물 혹은 무형의 빛이나 소리 같은 것으로도 존재하지 않을까 싶었던 겁니다. 세상의 진리가 시간의 속성을 닮고 있다면 소멸되는 순간 다른 무엇으로 분명 생성되었을 겁니다.

‘종쟁이’들의 이야기라는 소재가 독특합니다. 집필 동기가 있다면요?

제가 범종 소리를 처음 들었던 건 1992년도의 일일 겁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걸려 있던 성덕대왕신종 타종을 그 시절 하루에 두 번 했던 듯싶었습니다. 우연히 경주국립박물관에 들렀는데 그때 종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렇게 종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종에 관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와중에 우연히 서울 문래동 거리를 걷다가 철공소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서울에 살기 시작한 뒤로 가끔 그 거리를 걸으며 쇠 냄새를 맡고는 했습니다. 인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눈여겨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반 아래 첫 번째 소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겁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자료조사를 하고 수정과정도 여러 번 거친 걸로 압니다.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을 대략 말씀해 주세요.

이 작품을 처음 쓴 건 1997년도의 일입니다. 자료수집과 탐독에 한 1년 정도 걸렸습니다. 중심인물이 종을 제작하는 사람이며 폐차장이 나오는 건 지금과 같지만 이때는 청년 4명이 주인공이었죠. 10년 후 두 번째로 대폭 수정한 작품에는 등장인물의 배경이 달랐습니다. 주인공에게 불구와 괴력의 저주를 부여시켰고 그 안에 젊은이들의 사랑을 녹여놓았죠. 다시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작품이 탄생을 했는데 서스펜스를 깔기 위해서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설정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첫 번째 작품에서부터 오늘까지 총 16년이 걸린 셈입니다.

고봉준 평론가는 이 작품이 하나의 ‘예술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 중에 작가님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인물이 있는지요?

복합적입니다. 그래도 가장 많이 투영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한위’입니다. 천재적 재능은 없기에 부단한 노력으로 그 재능을 뛰어넘으려는 인물이 한위입니다. 규철 역시 그런 인물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재능을 뛰어넘어 예술을 완성하려면 필요한 게 광기일 겁니다. 무엇엔가 한 번 몰입하면 며칠이고 미친 듯 몰입하는 그런 광기를 지닌 두 인물에게 제가 반반씩 투영한 듯합니다.

작품 집필에 영향을 받은 책이나 사상이 있는지요? 있다면 어떤 면에서 영향을 받았는지요?

인간 본성을 다룬 소설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읽었던 소설과 인문서 등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딱히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영향을 미친 책이나 사상은 없습니다. 굳이 드러내자면 니체의 초인사상인데. 그렇다고 그의 철학에 깔려 있는 허무주의만이 이 소설 속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닙니다. 한 가지 더 있다면 모든 미물이 끝없이 윤회한다고 본 불교철학일 겁니다. 하지만 그 철학을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에 드러난 소멸과 생성의 동시성은 불교철학과는 다르니까요. 차라리 소멸과 생성의 동시성은 그리스로마신화의 ‘크로노스의 낫’에서 출발했습니다. 어찌 보면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광기와 살인, 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 냄새와 서정미가 매혹적입니다. 세계문학상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의 심사평에서도 ‘인간 냄새 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셨는데, 그런 묘사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고맙습니다. 제 묘사에 그런 장점이 있다면 아마 오랜 독서와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줄의 글을 쓸 때도 집약할 만한 내용이라면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는 겁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완전히 뒤집어서도 써보는 겁니다. 그런 써보기가 몸에 익으면 좋은 묘사들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오랜 연습이겠죠.

사찰이나 종에 대한 지식이 상당합니다. 소설을 쓰실 때 항상 어떻게 전문적인 수준으로 공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의 서사적 배경이나 환경적 배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으로 자료수집이 철저해야 합니다. 그런 후 등장인물이 신뢰를 얻으려면 그 혹은 그녀의 삶이 자료와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그 일만 평생 해온, 혹은 평생 그곳에서만 살아온 것처럼 자료를 소설 안에 녹여 넣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치밀하게 공부가 이루어져 있어야 가능합니다. 소설 쓸 때 자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거의 대부분 그렇게 자료를 준비하고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 필요하다면 사람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요.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으로 ‘구전십기 작가’, ‘유령작가의 역습’ 등 조명을 많이 받으시고 책도 베스트셀러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실 계획이신지요?

앞으로는 우리 주변에 흔한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이 시대에 살면서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가 담긴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물론 가벼운 주제들을 다룬 작품도 구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한 번쯤 꼭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하는 그런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꾸준히 써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불의 기억》은 범종의 세계라는 좀 독특하달 수 있는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범종 소리는 우리가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보신각종을 두드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있는 종소리도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겁니다. 글로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들려드릴 수는 없지만 34년이라는 시간을 바쳐 만든 그 세월을 부족하나마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굳이 왜 그런 걸 알려주느냐고요? 고리타분한 이야기이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그 일에 미쳐버리면 결국에는 이룰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게 어떤 세계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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