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사전 만드는 얘기가 아니라, 사전 만드는 사람들 얘기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라 포스팅 하는 것도 어색해져 버린 editor e. 입니다.

한참 블로그에 기웃거리지 않은 덕분에~ 책 한 권이 곧 나오게 됐습니다.  으하하하하하! >.<

아는 분은 다 아시는 명작~ 지난해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일본에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지금도 계속 팔리면서 얼마 전 66만 부를 돌파한 미우라 시온의 최신작~  (아, 수식어 너무 길다;) <배를 엮다> 입니다.

사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의 집에 최소 하나씩은 있을 사전…  하지만 보통 어떻게 만들어졌을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잖아요. 엄청난 페이지의 책….  이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데 아무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그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미우라 시온은 정말 캐릭터를 잘 만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건데요, <배를 엮다>가 그 캐릭터 만들기의 정점인 거 같아요.

오늘은 작품 속에 나오는 캐릭터 몇 명 소개해볼까 합니다. 더 쏙쏙 팍팍 이해를 돕기 위해 4월 13일 일본에서 개봉할 영화 <배를 엮다>의 홈페이지(www.fune-amu.com) 등에서 사진 좀 긁어 왔네요.

나중에 읽고 나면 누가 주인공이랄 게 없는 책이구나, 싶으시겠지만 그래도 실질적 주인공부터 설명하자면  이녀석입니다, 마지메 미쓰야.

아니 이게 누구! 제가 이 사진을 찾고도,, 순간 올리면서 마츠다 류헤이가 아닌 줄 알았네요;;; 당신은 진정한 연기자!

아, 외모에서 풍겨 옵니다. 뭔가 음울한 기운이….. 키는 큰데 구부정하고, 곱슬머리가 항상 산발인 데다, 친구도 없고, 시간 날 때는 책만 읽고, 말도 안 하고, 하나에 빠지면 그것만 생각하고, 연애도 안 해본, 똑똑한 아이.

마지메가 그렇습니다.

마지메는 지금까지 줄곧 ‘특이한 녀석’이라는 부류에 있었다. 학교 생활에서도 회사 생활에서도 늘 따로 놀았다. 가끔 호기심과 호의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도, 마지메의 응답이 너무 엉뚱한 탓인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바로 가 버린다. 마지메 본인은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응대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고통스러워서 책을 읽게 되었다. 아무리 말을 못해도 상대가 책이라면 침착하게 깊고 조용히 대화할 수 있다. 또 하나, 학교 쉬는 시간에 책을 펴 놓고 있으면 친구들이 괜히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마지메에게 딱 맞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전편집부,
항상, 어디에서건 겉돌기만 하던 마지메가 겐부쇼보 출판사 사전편집부로 오면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은 마지메와 정반대인, 아니 그런 줄 알았던 니시오카 마사시.

아, 아마 오다기리 죠가 이런 옷을 입고 나오는 건 이 영화밖에 없을지도요... 크크

마지메가 오기 전 사전편집부 막내를 담당하던 니시오카. 밝아요. 누구랑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 껄렁거리고, 잘 놀고, 자기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넘쳐나면서, 항상 노는 것 같기만 한 사람.

지금까지 니시오카 주위에 마지메나 아라키나 마쓰모토 선생 같은 사람은 없었다. 학생 시절 친구들은 뭔가에 빠져드는 것을 오히려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니시오카도 기를 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니시오카의 아버지도 샐러리맨이지만,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불명확하다. 단순히 그게 직업이니까 회사에서 일할 뿐이다. 가족을 위해, 회사의 업적을 위해, 월급을 받아 생활하기 위해.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니시오카는 사전에 매료된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니시오카가 변합니다. 마지메를 만나고부터…

그리고 사전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아라키 고헤이.

앗, 마스타! 이분의 외모 어딘가에서는 장인정신이 풍겨나오나 봐요.

한 직장에서 37년 동안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요즘, 오직 사전편집부에서만 37년을 일하신 분이십니다.

아라키는 가난한 학생 신분이어서 차마 사지는 못하고, 학교 도서관에 진열된 《일본국어대사전》을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시간이 담긴 사전을. 먼지 나는 조용한 도서관 서가에서 그것은 밤하늘에 뜬 달처럼 밝고 깨끗한 빛을 뿌리는 것 같았다.

학자로서 사전 표지에 이름을 싣는 일은 자신 없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사전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아직 남아 있다. 나는 어떡하든 사전을 만들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열정과 시간 전부를 쏟아 부어도 후회 없는 것. 그것이 사전이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사전편집부 때문에 걱정이 산더미 같았던 이분에게 서광이 비칩니다. 마지메를 만나고…

그리고 마지메의 마음은 흔들어 놓는 특이한 여인, 하야시 가구야.

저 얼굴에도 맞는 모자가 있군요! 어찌나 얼굴이 작은지... ^^

네. 고급 요리점에서 일하는 요리인입니다.

마지메가 한눈에 반하죠. ^^  마지메도 보통이 아니지만, 가구야도 평범치는 않아서인지 둘은 말이 일단 통합니다. 마지메랑 대화가 이루어지기란 쉬운 게 아니거든요.

보름달을 올려다보던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지메 쪽을 돌아보았다. 옆얼굴도 예뻤지만, 정면으로 봐도 아름다웠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감상을 가슴에 품고, 마지메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슨 마법에 걸렸는지 근육도 심장도 굳어 버린 듯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여자는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미소 지었다.

 

달의 세계에서 내려온 빛나는 공주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나도 당신을 만난 그날부터 달에 사는 것처럼 마음이 괴로워 호흡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지메의 편지 중)

마지메는 가구야를 만난 이후 ‘가구야 교’에 빠져버린 신도처럼 흐물흐물거립니다. 물론 가구야는 그렇게 엄청난 ‘중책’을 맡았는지 몰랐겠지만요.

이 외에도 여러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완전 무뚝뚝한데 일은 초스피드로 잘 하는 사사키, 밥 먹을 때도 연필을 손에서 놓지 않는 마쓰모토 선생님,
사전편집부가 너무 싫어서 보너스 받을 궁리만 하고 있는 기시베, 사전 종이 만드는 것밖에 모르는 미야모토….

이들이 <대도해>라는 사전 한 권을 만나면서 변해갑니다. 아주 멋지게요.

으아... 이 사진을 보니 눈물이...ㅠ.ㅠ

암튼 재미있는 캐릭터가 이끌고 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께 <배를 엮다> 완전 추천합니다~

이 책은 편집을 하면서 같은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매번 웃고 울었습니다. 아주아주 최최최종으로 볼 때까지요. 나만 이런 건가,,,, 나만 재미있는 건가,,, 했는데 번역하신 권남희 선생님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교정지에 남겨 주셔서 우리만 이런 건가,,,, 우리만 재미있는 건가,,, 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너무너무 궁금한 상황이어요! >.<

** 아, 초판에는 작가님의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네. 초판에만요!
이 메시지가 얼마나 초치기로 들어와서 제임스 본드 저리가라 긴박하게 후다다닥 처리해서 넘겼는지는 나중에 기회되면 말씀드릴게요…

_ <배를 엮다> 영화 개봉 추진 위원회 만들고 싶은 editor e.

 

9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