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1 진짜 이름으로 돌아온 ‘페터 비에리’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기억하세요?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낯선 여인을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탔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말이죠.
사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진짜 이름은 페터 비에리입니다.
그가 저명한 철학자로, 진짜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삶의 품격을 높이는 <삶의 격>으로요!
#2 이 책에서 말하는 ‘존엄’이란?
‘존엄성’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인간이 취하는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이 먼저 드실 겁니다. 저도 이 책을 접하기 전엔 그랬고요. 이 책에서는 존엄성을 신이 부여한, 혹은 인간이 취하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봅니다. 또한, 존엄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경험들이 어떻게 서로 모여 우리가 존엄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하느냐를 찾고자 합니다.
나는 애초에 존엄성에 관한 이론을 펼치고 싶은 의도를 가진 게 아니다. (중략) 이 책은 독자들이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바탕으로 쓰였다.
<삶의 격> p.16
#3 사모님과 경비원
그렇다면 실제 사례로 ‘존엄성’을 되돌아봅시다.
지난 10월 7일,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이 모씨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동료 경비원들은 이 씨가 분신을 한 이유로 한 ‘사모님’을 지목했다. 동료 경비원들은 ‘평소 사모님이 폭언을 하고, 5층에서 떡을 던지며 먹으라고 하는 등 경비원들에게 모멸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다른 경비원들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주민으로부터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받기도 하고, 반말과 무시하는 언행을 듣기도 하는 등 인격적 모욕감을 느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경비원들은 스스로를 하인, 현대판 노예라고 했지만, 주민들의 민원과 그로 인한 해고의 두려움 때문에 모든 부당함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961회] 사모님과 경비원
경비원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제도적 문제점을 단적으로 알 수 있던 사건이었는데요. 이 사건을 보면서 <삶의 격>의 ‘난쟁이 던지기 대회’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1년에 한번 열리는 어느 큰 장터에 들르게 된 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였다.힘센 사내가 난쟁이를 들어 올리더니 온 힘을 다해 힘껏 던져 물렁물렁한 매트리스 위에 패대기치는 것이었다. (중략) 모여든 군중은 난쟁이가 던져질 때마다 매번 즐겁게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중략)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람을 멀리 던지는 세계 대회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
<삶의 격> p.27 난쟁이 던지기 대회
이 대회에 작가는 분노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대회가 끝난 후, 난쟁이 던지기 대회의 스타를 만나러 갑니다.
(만화가 너무 허접…해서 글로 써보자면)
-작가: 당신의 존엄성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난쟁이: 뭐요?
-작가: 마치 사람을 물건처럼 던지잖아요!
-난쟁이:가끔 애들을 던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애들은 좋아서 꽥꽥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나죠.
-작가: 그건 다른 얘기죠. 아이들은 단순한 물건으로 던져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 자신의 재미가 중심이 되잖아요.
-난쟁이:공중그네를 타던 남자 봤죠? 그런 사람들은요?!
-작가:그 사람은 타인의 손에 의해 던져지지 않습니다.
-난쟁이: 그래서 그건 괜찮다고요? 그 사람도 그냥 일이 일어나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 말곤 하는 일 없어요.
-작가: 당신은 하나의 장난감에 불과하다구요.
-난쟁이: 나처럼 생긴 사람이 돈 벌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요? 당신 같은 분들은 모르겠죠. 어쨌든 내가 자유로이 선택한 직업입니다.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관련된 존엄성은 어떻게 된 겁니까?
던져지는 난쟁이는 단순한 물체로 격화되어 존엄성이 상실됩니다. 상황이 절박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을수록 존엄성에 대한 판단 기준도 관대해져요. 결국 관객은 난쟁이를 수단으로 취급함으로써 그의 존엄성을 앗아 가는 것이고, 난쟁이도 그 스스로를 내던지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의 ‘사모님과 경비원’으로 넘어가봅시다. 경비원은 나이가 들고 노후를 생각해서 선택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난쟁이 던지기 대회의 상황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경비원은 사모님의 재미를 위해서 존재하는‘물건’이 아니며, 그 스스로도 자신의 존엄을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비원은 분신자살을 시도하며 온 몸으로 이렇게 외친 게 아닐까요. “저는 당신의 물건이 아닙니다. 저도 존엄성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입니다”라고.
경비원과 사모님의 이야기를 비단 남의 이야기가 아니죠. ‘갑’과 ‘을’로 규정짓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내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요
#4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홀로 사는 노인들은 지금의 고된 몸도 힘들지만, 죽어서도 편히 눕지 못할 현실에 ‘죽음 이후’는 생각하기조차 싫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죽는다’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거짓말입니다. ‘평등’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몸은 죽을 때도 마찬가지인겁니다.
죽음은 사람과도 관련이 있다. 그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생의 전반을 살아가는 데 같이 힘쓴 사람들이다. 죽을 때 그들이 옆에 있었으면 하고 바랄 수도, 또는 마지막 순간에 홀로 있고 싶을 수도 있다. 어떻든 간에, 그들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었을 인생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면 존엄성 있는 죽음이라고 할 수 없다.
-<삶의 격> p.420
#5 나를 타인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존엄성에 대해서 말하는 <삶의 격>
폭풍공감을 했던 옮긴이의 후기를 마지막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난 후 생각의 지평선이 한층 넓어진 느낌이다. 답답하던 시야가 좀 더 트였다. 인간관계에서 어렵거나 까다로운 문제점이 생겼을 때 잡을 수 있는 든든한 지지대 하나가 더 생겼다고나 할까.
-옮긴이 후기 중
<도서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