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 <열등의 계보> 홍준성 작가 인터뷰

[ 작가 인터뷰 ]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

제3회 한경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열등의 계보>의 홍준성 작가 인터뷰

열등의 계보_블로그2-vert올 초 3회를 맞이한 한국경제신문사 신춘문예에 부산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홍준성 씨가 <열등의 계보>로 장편소설 분야에서 당선되었습니다. 당선작 <열등의 계보>는 일제 강점기에서 전후 한국과 1980년대, 1990년대를 지나 현재까지 망라하는 김녕 김씨 충무공파 4대(代)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가문의 주인공들은 힘든 현실을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운명은 그들이 순탄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라는 인간 된 삶의 근본을 물어보는 질문이 전 시대를 걸쳐서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네들이 그 속에서 어떤 군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정)홍준성_열등의계보2

1. <열등의 계보>는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습니까?

2014년에 아는 작가지망생 선배의 소설을 도와주다가, 나도 한번 써볼까 싶어서 쓰게 됐습니다. 처음 쓴 단편이 대학교교내의 작은 문학상을 수상했고, 그래서 좀 더 써보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설 쓰는 게 재미있기도 했고, 또한 돈이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에 신춘문예 중 상금이 가장 센 곳을 찾다가 <한경청년 신춘문예>를 알게 됐습니다. 다른 곳은 500주던데 여기는 3,000주더군요(웃음). 물론 다른 곳은 단편공모인데, 여기만 장편공모이기는 했지만, 뭐,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단편은 늘 미완성으로 끝나서, 분량이 긴 소설이 더 편하겠다 싶었거든요.

2. 간단히, 이 소설에 대해 말해주세요.

김녕 김씨라는 가문의 4대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굵은 한국근현대사를 밟아나가면서 각 인물들이 겪게 되는 일들에 관한 것인데, 초반에 등장하는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몸부림이 주된 서사를 이룹니다.

3. 소설을 읽다보면 역사적인 관점, 즉 이야기에 역사적인 사실들이 많이 기대어 이는 게 사실입니다. 소설과 역사, 그 둘의 관계에 대해 본인 스스로 느끼는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소설 작업을 해가는 데에 있어 본인에게 역사적인 사실은 얼마만큼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역사란 현재의 관점에서 늘 재해석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아예 역사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죠. 단순히 과거 자체가 곧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적는 기록이 역사로 남게 된다는 점이 역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역사는 합리성을 구성해낸다는 점에서 반복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왕정주의가 괜찮았다는 역사적 논거를 바탕으로 현재에 왕정주의를 옹립하고자 했을 때, 이 과거의 왕정주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재에 또다시 반복되고 재현되는 것이죠. 임의적으로 글로 구분해봤을 때는 다른 것처럼 보여도, 진짜 현실에서 현재와 과거는 분리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 모든 건 소설과 굉장히 유사한 성질인데, 소설에서도 작가가 주목하는 스토리가 적힐 뿐, 그 외의 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자리에서 역사가 곧 소설이라는 극단적인 발언 따위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세상이라는 어두운 무대에서 무엇에 조명을 비출 것인가라는 <배제의 논리>로서 글이 작동한다는 점에선 이 둘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사실이라 믿는 것을 다루고자 하는 곳이고, 다른 한쪽은 허구라 믿는 것을 다루고자 한다는 점이겠죠. 그리고 저는 이 사이를 횡단하며 저에 대한 고민을, 또한 제 눈에 비친 세상이 필요로 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적고자할 뿐이고요.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가 역사에 많이 기대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역사가 이야기에 많이 기대어 있는 것일 겁니다.

4. 이 소설은 인간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보다는 어떤 운명에 인간 삶이 결정되어지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사람의 삶이 어떤 운명론에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는 편입니까?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역사적인 존재입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듯,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은 없지요. 예를 들어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그때부터 제가 좋든 싫든 과거로부터 구축된 한국적 무언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말미암은 국제관계와 현재 제가 가고픈 해외여행이 어떻게 서로 관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인과사슬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내의 존재 같은 건 없습니다. 이런 게 싫으니 다른 삶을 살겠다고 선언해볼 수는 있어도, 그 선언이 한국이나 외국을 없애버릴 순 없는 노릇이죠. 인간은 한때 이 과거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었고, 오늘은 역사란 이름을 붙여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안에서 스스로 개척하는 인간의 자유란 과거와의 투쟁에서 비롯되는 무엇, 하지만 그마저도 잠깐 빛났다가 다시 사그라지는 편린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위대하고 영원하기에, 인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5. 본인에게 열등감을 주는 건 뭐가 있을까요?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본래 열등감이란 본인이 어떻게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가지는 감정입니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돌멩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물리법칙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황제를 본 노예는 열등감이 아닌 경외감을 느낍니다. 너무 과도한 차이는 열등감을 느껴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희 사회는 체념이 주를 이루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신분제라는 법적형식이 갖춰지지 않았을 뿐, 사람들이 사회를 이해하는 심리는 신분제의 신민들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이런 사회를 살고 있는 저에게도 열등감이란 분노를 자극할 수 있는 의식이 옅어지는 건 아주 필연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등감을 주는 게 무엇이냐?>고 물어볼 게 아니라 <열등감을 가져야할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열등감을 가지게 할 것인가?>라고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건 아직 제가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고요.

(수정)홍준성_열등의계보

6.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느끼는 열등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5번에서 답한 내용입니다만, 우리는 같은 피라미드 층 안에 있는 이웃들에게 열등감을 느낍니다. 다른 층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선 결코 자신이 그곳에 닿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또한 그것을 바꾸려는 투쟁이 너무 피로하고 또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미 체념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돈이나 외모, 자아실현 등의 모든 개별적인 요소들은 오로지 이웃에 대해서 비교가 될 따름입니다. 시야가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본인의 열등감을 구성하는 구조적인 관점에 대해선 성찰할 기회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이 열등감은 신자유주의니, 유럽중심주의니 하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으로 발전하지 못합니다. 열등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열등감이 그 인간을 어디로 지향하게 만드느냐는 겁니다.

7. 전공을 철학과에서 공부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학, 즉 소설을 쓰는 데에 있어 전공분야인 철학이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상보적입니다. 제 입장에선 둘이 비슷한데, 소설이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적는 것처럼,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용하는 기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철학은 현세계에 대한 단계적인 엄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분석적이고,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만듦으로써 보다 통찰력 있는 직관을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전자는 너무 느리고, 후자는 너무 빠르다는 단점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철학적으로 파악된 세계 위에서 스토리를 구상합니다. 하지만 세계 전체가 철학적 명제 서너 개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구상작업에선 늘 철학적 개념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잔여가 발생합니다. 그때 소설적 직관으로서 철학이 미처 개념화하지 못한 그곳을 비유와 상징으로서 파고들고자 하지요.

8.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인지도 궁금합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 가지 초고를 적어놓고 그 중에 퇴고까지 해서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소설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일단 폴더에는 모두 장편소설으로 1980년대에 벌어진 사북항쟁을 주제로 한 이야기 하나와, 현대시점에서 리조트 개발 건을 두고 공무원과 건설사, 조폭이 엮이는 스릴러, 그리고 중학교 중퇴생 작가의 자서전 형태의 소설…… 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복수를 하려는 비구니의 이야기도 있군요. 그 외에 완성되지 않은 5, 600매 짜리 소설들도 서너 개 더 있습니다. 소설을 쓴 지 겨우 1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라, 여러 가지 습작들을 해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 뭘 다듬어 출판사로 보내 볼 건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9. 소설을 만약 안 쓰겠다면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철학도니까, 아마도…… 음, 뭐…… 뭐든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10.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요.

열심히 살수록 비참해지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비참한 순간에 인간이 해야 할 것은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의 뜨거운 분노는 변화를 위한 중요한 시발점이지만, 행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해주는 것은 명확한 이해에서 오는 차가운 분노입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무엇에 대한 공포는, 막연한 냉소주의를 낳습니다. 직접 깨져본 자는 그 사실에 대해 냉소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곧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인간은 분노하고 또한 움직이려 합니다. 저는 청년들이 더 많이 직접대면하고 박살나고 울고 소리 지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성난 얼굴로 책장을 넘기기를 바랍니다. 차가운 분노가 무르익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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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청년신춘문예*오는 12월 1일, 제4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공모가 마감됩니다.

가풍이 ‘인생무상’인 어느 한 가문의 4대(代)에 걸쳐 찾아 헤맨 열등의 알고리즘!
분류 국내소설 | 출간일 2015년 10월 9일
사양 변형판 150x210 · 340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56609409
홍준성
1991년 부산 출생. 부산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2015년 제3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열등의 계보》 《카르마 폴리스》 《지하 정원》이 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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