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후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는 소설, 2015 나오키상 수상작 <사라바> 편집후기

사라바-서평단

# 어느새 벌써 작년이라고 지칭해야 하는 때가 왔네요.

무려 작년, 제목도 표지도 모두모두 골라달라며 독자분들의 소중한 한 표를 갈망하고 또 갈망했던 소설이 있었습니다.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니시 가나코의 《사라바》인데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작년에 작업을 끝낸 소설이지만, 1월에 출간이 되니 마치 새해 들어 큰 일을 해낸 듯한 기분이 들어 어제 1, 2권 두 권을 손에 잡고 왠지 모를 뿌듯함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뿌듯함도 잠시. 알듯 말듯 일본어인듯 아닌듯 아리송한 제목과,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분위기의 파스텔톤 아련한 표지를 보니 하루라도 빨리 어떤 책인지 알려드리고 싶다, 아니 알려드려야 할 것만 같다는 압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 “나는 이 세상에 왼발부터 등장했다”로 시작하여 “나는 왼발을 내디딘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 이 소설은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아유무’라는 한 사람의 반생, 즉 태어나면서부터 서른일곱 살 현재까지의 삶이 차분하게 그려진 이야기입니다. 다만 저처럼 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생에 비하면, 꽤 무서운 높이의 롤러코스터 인생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덕분에 원서로 칠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지루함 없이 읽어나갈 수 있고, 2권에 다다르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감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쉴 틈 없이 펼쳐집니다. 일본 독자분들의 평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내용이 ‘라스트가 소름!’인데요, 그래서 저도 라스트(?)를 품고 있는 부분은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 살포시 접어두고 앞부분을 간략하게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이집트,이란-horz

# 주인공 아유무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해외 부임 중인 아버지를 따라 이란, 이집트, 일본을 돌아다니며 성장합니다.

제가 정말 부러웠던 점은 따로 있었는데요. 본문을 직접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송구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장점을 통째로 물려받았다. 작은 얼굴, 동그랗고 귀여운 눈, 긴 목에 매끈한 피부. 키가 큰 것은 누나와도 닮았지만 누나처럼 울퉁불퉁한 몸이 아니고 내 몸에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무척 여성스러웠다. (…) 나는 집에서 되도록 얌전히 있으면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런 얼굴이라 살짝 붙임성을 보이면 순식간에 사랑을 받고 만다. 사랑으로 인한 시기나 질투는 내게 귀찮기만 한 일일 뿐이었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라는 것이죠. 인복도 많아서 자라면서 국내외 좋은 친구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고, 글 재주도 있어 대학생이 되어서부터는 잡지에 칼럼도 기고하게 됩니다.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사는 아유무에게 부족한 딱 한 가지는 ‘이상적인 가족’입니다. 가족들이 이상합니다. 부모님의 이혼, 어머니의 화려한 연애, 아버지의 출가, 누나의 기행과 이상한 퍼포먼스. 자신에게 피해만 주는 가족을 누구보다 싫어하며, 누구에게도 가족을 알리지 않고 평온한 척 지내던 아유무의 인생은 서른 즈음을 맞이하여 롤러코스터의 정점에 오릅니다.

#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하는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른 해 가량 차곡차곡 쌓아왔던 ‘아유무’의 인생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좌절과 낙오라는 평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경험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만 이때부터 비로소 아유무는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순간 ‘사라바’가 늘 함께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니 ‘사라바’가 꼭 실존하는 어떤 것 같지만, 사실 ‘사라바’는 아까 설명드린 아유무의 좋은 친구들 중 한 명인, 이집트인 친구 ‘야곱’과 ‘아유무’ 둘이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소년을 잇는 그들만의 인사이자 위로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녕’ ‘내일도 만나자’ ‘잘 있어’ ‘약 속이야’ ‘굿 럭’ ‘갓 블레스 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

니시_가나코_노란_코끼리_원탁

# 《사라바》의 저자 니시 가나코의 이름이 낯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일본 여성작가로 2004년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약 23권의 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해왔습니다. 영화화되기도 했던 《노란 코끼리》 《원탁》 등 몇몇 작품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이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확고한 팬층을 확보한 작가인데, 저도 《사라바》를 편집하며 그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스위치를 켜는 무언가를 확실히 가지고 있더라고요. 니시 가나코는 나오키상 수상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라바》는 작가로서 내 모든 것이다. 미련 없이 썼고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는 마치 내 안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느낌으로, 거기 뭔가가 쌓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사라바》가 아니라면 나오키상은 평생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완성한 데뷔 10주년 기념작. 소설가 하야시 마리코는 “읽은 후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는 소설”이라 평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많이 흔들리는 제 자신, 그리고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모두가 자신만의 ‘사라바’를 발견해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하며 편집 후기를 마칩니다.

안개꽃_수정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2015 일본서점대상 2위,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이달의 책
지음 니시 가나코 | 옮김 송태욱
시리즈 오늘의 일본문학 | 분류 해외소설 | 출간일 2016년 1월 18일
사양 변형판 128x188 · 460쪽 | 가격 13,800원 | ISBN 9788956609317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2015 일본서점대상 2위,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이달의 책
지음 니시 가나코 | 옮김 송태욱
시리즈 오늘의 일본문학 | 분류 해외소설 | 출간일 2016년 1월 18일
사양 변형판 128x188 · 428쪽 | 가격 13,800원 | ISBN 9788956609324
니시 가나코
1977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와 일본 오사카에서 자랐다. 간사이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2004년 《아오이》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2005년 두 번째 작품 《사쿠라》가 일본에서 25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를 기록, 자세히 보기

10 + 2 =

  1. 오월
    2016.01.28 9:45 오후

    처음에 이소설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굉장히 느리게 읽혀지고 있었다.
    주인공의 태어남과 함께 기술된 이들의 주변인물과 환경들은 천천히 나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모든것을 다 이해했는지 물어보는식으로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모든것을 다 이해 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책은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숨쉴틈 없이 반나절만에 2권을 다 읽게 되었다.
    너무 발리 읽어버린것이 아쉬운 지금,
    나는 아유무에게 인사하고 싶어진다.
    잘 걷고 있는거지?아유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