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모델은 못 하겠어요.”
마네의 작품 속 모델에서, 인상파 최초의 여성 화가로 당당히 자리 잡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년]
19세기 관람객 曰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외설적인 광경이라니!!”
150년 전, 댄디한 신사라 자부하던 ‘에두아르 마네’. 그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시작으로 스캔들 메이커가 된다. 이때, 미술계의 이단아로 악명을 얻은 마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지금의 마네를 있게 한 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베르트 모리조’ 마네의 그림 속 모델이 되어준 그녀는 빛을 그리면서도 당시 파리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던 마네에게 더 없이 적절한 모델이었다.
“이젠 모델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모리조는 그 이상을 원했다. 그에게서 새로운 미술로 나갈 길을 원했던 것이다. 성인이 된 모리조에게 주어진 의무는 오직 결혼뿐. 인정받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모리조에게 결혼은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하는 족쇄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마네는 이미 유부남이었기에 그 둘은 이어질 수 없었다. 결혼보다 화가로서의 삶이 먼저였던 모리조. 하지만 결혼하지 않는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시선들, 화가라는 딸의 꿈을 허황된 것으로 보는 어머니…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조는 그저 마네만 바라보면서 자신의 신세와 세상을 탓하는 비운의 여주인공 노릇은 하지 않았다.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년]
언니 에드마가 자신의 아이를 요람에서 재우고 있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 일견 너무나 평범한 장면일지 모른다. 함께 화가를 꿈꾸던 언니 에드마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하고, 아이 엄마의 표정을 다시 보자. 그저 따뜻한 어머니의 시선이 아닌, 자아와 어머니의 역할 사이에서의 갈등, 혹은 자신이 잃어버린 꿈에 대한 연민 등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어쩌면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언니 에드마의 표정을 통하여 모리조가 자신의 심정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리조가 죽은 후 그녀의 묘비에도 화가라고 쓰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예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색채를 담은 새로운 미술을 개척해나갔다.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 속에서 그녀는 유명한 화가 마네의 그늘에 숨겨진 여인이 결코 아니다. 누군가의 제자나 아류도 아니다. 그저 당당히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룬 한 화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