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바람의 화원
매년 봄과 가을 무렵이 되면, 동네는 한 번씩 외지인들로 떠들썩해졌다. 바로 간송미술관의 정기 전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간송미술관의 전시는 그곳에서 보유한 소장품의 가치가 엄청나다는 점 이외에도 1년에 단 두 번 열린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예전부터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찾는 전시들 중 하나였다.
특히 2008년 신윤복 풍속화 전시는 유별났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최초로 공개된다는 소식에 유독 성북동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 〈바람의 화원〉 때문이었다. 그 파급력은 굉장했다. 남녀노소를 불문,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한 점의 그림을 보기 위해 간송미술관을 찾았던 것이 기억난다. 가히 장관이었다. 사람들의 줄이 미술관 바로 앞 정류장에서부터 그전 정류장까지(실화다!) 이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길을 지나다 서로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전시를 기다리는 한 연인을 보고는 스스로를 책망했던 그때의 나를 잠시 떠올려본다. 소소하게 불쾌했던 순간들도 적지 않았던 당시였다.
9년이 흐른 뒤, 운명처럼 나는 《바람의 화원》과 다시 조우했다. 어느덧 작품은 출간 10주년을 맞았고, 나는 《바람의 화원》의 개정합본판 편집 작업을 맡게 되었다. 개인적인 기억과 맞물리는 작품이다 보니 덜 낯설게, 더 즐겁게 편집에 임할 수 있었다. 소설과 동명의 드라마가 워낙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따라오는 부담감 또한 당연했다. 하지만, 언제나, 회사로 막 입고된 따끈따끈한 책을 손에 쥐고 있다 보면 그런 것들은 다 잊히게 마련인 듯싶다.
‘개정’ 그리고 ‘합본’, 어떻게 바뀌었나
이미 읽어보신 독자 분들도 계시겠지만 《바람의 화원》의 ‘그림’들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굉장히 중요한 도구다. 이야기의 전개 또한 다분히 ‘영상적’이기에 작가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먼저 드라마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책을 펼쳐보면 알 수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34점이 소설 속 이야기 곳곳과 밀접하게 잇닿아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이, 한 권의 화집으로도 기능할 수 있길 바랐다. “출간 10주년 기념 개정합본판”은 이러한 편집 의도에 좋은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 결과 간송미술문화재단,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고해상도 이미지를 대여해 수록할 수 있었다. 개정합본판을 통해 독자 분들은 구판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생생해진 두 천재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표지라는 난제는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됐다. 이지선 디자이너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나의 빈곤한 상상력을 메워주었다. 창살을 연상시키는 여러 패턴들, 거기에 입힌 주황빛, 바탕을 채우고 있는 잿빛, 풍속화에서 오려낸 이미지들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 후기를 빌어 고생 많았던 선배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주목할 만한 변화(혹은 시도)는 ‘합본’이다. 아무래도 소설이 내재한 ‘속도감’ 때문에 나는 분권 출간을 꺼렸다. 실제로 두 권을 읽어내는 속도가 보통 소설 한 권을 읽는 속도가 거의 비슷했다. 원래 이정명 작가의 소설들이 속도감 있게 읽히는 편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1․2권으로 나뉘어 있다 보면 몰입 또한 끊어지게 마련이다. 여러 사항들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모쪼록 독자 분들께서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
한편 이정명 작가는 개정합본판이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소설 내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한편, 본문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오류 등을 바로잡으며 보다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사실 프레미오 셀레지오네 반카렐라상 수상식 참석차 서울과 이탈리아 폰트레몰리를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보여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다. 아직도, 귀국하자마자 《바람의 화원》 저자용 교정지를 쥐어드렸던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나의 ‘최애캐’, 신영복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보잘것없는 인물들에게 애정이 깊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작가의 주관 때문일까. 이정명 작가의 작품에는 역사가 외면한, 가공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바람의 화원》에도 김조년과 정향 등 여러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다. 그중에서 나의 ‘1픽’을 골라봤다. 바로 신한평의 아들이자 윤복의 형인 영복이다.
신영복, 그는 4대에 걸쳐 화원 일을 가업으로 이어온 신씨 집안의 “유일한 오점”이다. 그는 윤복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이라는 그림으로 도화서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윤복을 구하기 위해 영복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희생을 감행한다. 화원으로의 꿈을 놓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가혹한 현실은 절망 속에 빠진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생도의 징계를 결정하는 도화서 화원회의가 그를 도화서 내에서 가장 그늘진 곳, 단청실로 보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아니, 절망 속에서 그는 희망을 발견한다.
원했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윤복의 재능은, 그 눈부신 예인의 혼은 알량한 자신의 모든 꿈을 바쳐도 모자랄 만큼 거룩했다. 윤복을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길러낼 수만 있다면 모든 서러움을 견딜 수 있었다. 그것은 아우의 재능을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누대로 내려온 화원 가문의 영광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되었다. 윤복이가 무사하니 그걸로 된 거야. 후회할 일도 없고 후회해서도 안 돼.
― <생도청>, 46쪽
보통 장편소설을 편집하다 보면 짧게는 세 번, 많게는 다섯 번 정도 작품을 반복해 읽게 된다. 자연스럽게 소설 속 여러 군데군데가 머릿속에 입력된다. 나의 경우엔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잔상이 오래가는 편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독 영복은 특별했다. 집안의 장손으로서, 아우에게 단 하나뿐인 형으로서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도 꿋꿋하고 또 굳세게 살아간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성스러운’ 인물이랄까. 그 미련함에 속이 터지면서도 자꾸 눈길이 간다. 작품을 읽는 독자 분들도 한번쯤 이 영복이란 인물에 주목해주시길 바란다.
8월,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시원한 곳에서 눈여겨봐왔던 책 한 권 읽기 좋은 때다.
이번 여름, 많은 독자분들께서 리뉴얼된 《바람의 화원》을 애독해주시길 바라며, 이상으로 두서없는 편집 후기를 마쳐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