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onna Tartt = The Secret History
<황금방울새>와 도나 타트. 6월 말에 출간된 2014 퓰리처상 수상작 <황금방울새>가 독자분들의 많은 사랑으로 베스트셀러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탓(?)에, 이제는 한국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조합이 되었죠..! 그렇지만 사실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동안 전 세계적으로 Donna Tartt = The Secret History라는 조합이 하나의 공식처럼 완고하게 굳어져 있었습니다..!
1992년 미국에서 첫 출간된 <The Secret History>.(이 한 권의 책으로 신인 작가 도나 타트는 대중뿐만 아니라 열성적인 컬트팬까지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故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하신 <비밀의 계절>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었죠. 때문에 은행나무에서도 원래 <황금방울새>와 <비밀의 계절> 동시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안타깝게도 불가피한 사정들로 <황금방울새>를 먼저 선보이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황금방울새>를 순식간에 독파한 여러 독자분들께서 감사하게도 절판된 <비밀의 계절>을 읽어보고 싶다는, 재출간 문의를 해주셨는데요. 드디어 <비밀의 계절>이 오랜 기다림 끝에 출간되었습니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독특한 책입니다.
현대 소설답지 않게 고전어과 학생들과 교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부터 <비밀의 계절>은 독특한 책입니다. 미국 동부의 햄든 대학 고전어과 비밀 동아리원 7명을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는 펼쳐집니다..
주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혹적인 고전어과 교수 줄리언. 산스크리트어.. 콥트어… 심지어 이집트 상형문자까지 해독이 가능한 7~8개국어 능력자 언어 천재 헨리. 독보적인 외모, 우아한 분위기, 냉정하면서 예의 바른 성격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프랜시스. 책 속 묘사를 그대로 빌리면 ‘플랑드르 화(畵)에 등장하는 한 쌍의 천사처럼 해맑은’ 남녀 쌍둥이 찰스와 커밀라. 좋게 말하면 분위기 메이커, 나쁘게 말하면 사람 속을 긁는 재주가 있는(아, 유일하게 여자친구가 있네요) 버니.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한 의대를 다니다 햄든 대학으로 옮겨 와 엉겁결에 고전어과로 진학을 하게 된 리처드가 저 다섯 친구들과 친해지며 이들과 함께 한 1년의 시간을 서술하는 일종의 참회록입니다.
# 선생님이 아니라 마치 ‘교주’같은 줄리언 교수
줄리언 교수는 선생님이 아니라 ‘교주’ 같아요.. 고전어과 교수답게 수업에서 그리스 고전 속 디오니소스 광기에 대해 가르치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성에 의한 통제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우리같이 이성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문명화한 모든 사람들— 우리뿐 아니라 고대인들까지도 — 은 생래적인 동물적 자신의 일방적인 억압을 통하여 문명화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사람은 문명화하면 문명화할수록 그만큼 더 지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지적인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만큼 더 자기 억압에 시달린다. 억압에 시달리면 인간은 자기가 애써 말살하려 했던 원시적 충동과 화해할 수단을 필요로 하게 된다. 원시적 충동과의 화해를 모색하지 않으면 이 막강한 힘은 내부에서 뭉치고 강화되어 필경은 스스로를 해방하기에 이르게 되고, 이 강화의 과정이 길어지면 스스로 폭발하여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게 된다.”
“아름다움은 곧 공포인 것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 앞에서 전율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그랬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렇듯이,
균형과 통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무서운 것은 없다.”
앞선 등장인물 소개에서 느끼셨겠지만, 똑똑하고 부유하게 자라나 완벽해 보이는 이 젊은 친구들은 강의를 듣고 나서 이성적인 자신들에게 숨어 있을 원시적인 동물성을 찾아내고 싶어집니다..(그래서 본의 아니게 줄리언 교수가 이들을 조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각종 시도(술, 마약, 기도, 독약, 금식..)의 실패 끝에 결국 디오니소스 광기에 도취되는데요..! 이 광기 상태에서, 제정신이 아닌 이들이, 저지른 폭력으로부터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 뜬금없지만 이번엔 제 자신을 고백하자면..
저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지 않습니다.(물론 편집을 맡은 책은 제외하고요..) 드라마든, 영화든, 웹툰이든 모두 마찬가지에요. 자꾸만 새로운 책이 읽고 싶어지는 바람에, 내용을 아는 책은 다시는 도저히 읽어나가기 힘들 정도로 흥미와 집중도가 급격하게 저하되더라고요.
그런데.. <비밀의 계절>은 달랐습니다. 처음에 읽고 나면 별 감흥이 없는 듯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 감흥이 남아 있고, 두 번째 읽을 때, 세 번째 읽을 때, 네 번째 읽을 때..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의 진가가 느껴진달까요.
정말입니다. “아름다움은 공포다Beauty is terror”라는 책 속 문구 그대로 밑줄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묘하게 공포스럽게 느껴져요. 어째 읽을수록 그 서늘함이 더 깊이 머리를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에요.
“누구든 《비밀의 계절》을 순수문학이니 장르문학이니 쉽게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문학의 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기에 나는 그 세계로 가고만 싶었다.”
〈타임〉지 전속 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판타지 소설 《마법사들》의 작가 레브 그로스먼의 평가가 너무 인상적이었기에 마지막으로 이를 소개하며 저는 이만 떠나가겠습니다.
완독률 98.5%를 자랑하는 <황금방울새>를 재미있게 읽어보셨다면, 휴가의 계절에, 단지 문장만으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같은 작가 다른 느낌의 <비밀의 계절>도 꼭 여러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