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반댓말은 악이 아니라 완벽주의래.
이번에 작업한 신간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의 편집 작업이 한창 막바지 단계에 있을 때 만난 친구가 해준 말입니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를 작업하면서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감화받았던 지라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책 이야기를 잔뜩 했었거든요. (출판계 친구도 아닌데. 미안하다..)
즐겁자고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일 얘기를 한참 떠든 것은, 제가 만들던 책이 뭔가 인상적이기 때문이었겠죠.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생각들이 있을 거예요.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고 위험한데, 자꾸만 나빠져가는 것만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나는 왜 이리 무력할까?
너무 과한 감정이입일 수도 있지만, 제 경우에는.. 어려운 이웃들을 소개하는 게시물을 보거나 지구촌 저 너머의 빈민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지 않아서 누군가가 아파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하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나를 위해 싸워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해지고, 그러다가 어떤 식으로든 삶이 위험해지는 걸 보게 되면 죄책감이 들곤 하는..
저와 같은 분들이 분명 계시겠지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작업하기 시작한 연말이, 그런 마음이 너무나 커서 괴롭던 시기였어요. 제가 한 시절을 보냈던 도시에서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노느라 마음만으로 지지했던 시위에서 누군가가 크게 다쳤고요. 유럽으로 건너간 중동 난민들과 연관된 안타까운 소식들이 어뷰징 뉴스 사이트들을 통해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또는 더 너아질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기로 선택하고, 사회적 보호망에서 탈락된 누군가들은 생명을 빼앗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페북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가끔 공유하고, 친구들하고 안타까워하는 것뿐이었고요.
세상이 지금 이대로여서는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절망적인 느낌. 그렇게 속수무책인 감정에 자괴감을 느끼던 시기에 잡게 된 책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였습니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 2014년의 가을에 나오려던 책이었어요. 그때 처음 번역 원고를 받아들고 편집회의를 준비하면서 읽을 때의 감정을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이 책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좋은 말들 하네, 뭐 이런 식이었죠.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그렇게 다른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1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내며 조금은 성숙한 건지 감정 과잉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2014년 가을이 아닌 2015년 겨울에 제가 이 책을 작업하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친구와의 술자리로 돌아와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친구한테 늘어놓으면서, 근데 지금 작업하는 이 책은 이렇게 절망하고 있는 나에게, 네가 하는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다고 말해줘서 되게 고마워, 식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입니다. 앞서 포스트를 통해 소개한 카드뉴스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의 공저자들은 의외로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피부에 정말 밀접한 것들을 제안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주 사소한 실천이라도 괜찮다고, 그런 작은 변화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힘껏 북돋워주는 느낌이었어요.
스마트폰을 조금 덜 만지는 것.
꼭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
나 스스로에 대해서 성찰하고 명상하는 것.
완전히 채식을 할 것도 없이, 고기를 덜 먹는 것.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
텃밭을 가꿔보는 것.
보다 윤리적인 제품을 소비하는 것.
이런 것들은 사실 정말 사소한 항목들입니다. 습관을 완전히 뿌리째 바꾸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 책을 함께 쓴 4인의 현자들은 분명 서구권에서 각광받는 멘토들이지만, 우리들한테 그들의 이름값에 어울릴 법한 엄청난 변혁을 요구하지 않아요.
일주일에 치킨 세 번 먹을 것 두 번으로 줄이면 될 것 같습니다. 친구와 술집에 가서 안주 두 개 시킬 거 하나만 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카페에 갈 때 근처에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가 보이면 한번 발걸음을 옮겨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완벽한 결심을 해서 엄격히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지요.
선의 반댓말은 악이 아니라 완벽주의래.
제가 그런 이야기를 떠들고 있자니 친구가 들은 말이라며 해준 말이었습니다. 선의 반대가 악이 아니라, 옳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완벽히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시도조차 포기하는 완벽주의라는 것입니다. 송두리째 다른 삶을 살겠다고 귀농을 한다거나 당장 내 아이들을 대안학교로 보낸다거나 그런 거창한 시도보다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실천해보라는 것이지요.
제 경우에는,
먼저 고기를 좀 덜 먹어볼까 생각해봤어요. 치킨도 땡기고 회도 땡긴다면 회를 선택하고, 삼겹살도 땡기고 파스타도 땡긴다면 파스타를 선택하는 쪽으로요. 그러기엔 너무 명징하게 곱창이나 닭발이나 김치삼겹살이 땡겨서 본능에 따른 나날들이 있었음을 반성합니다마는 ㅠ_ㅠ
그리고 배송비를 아끼겠다고 값싼 옷을 하나 더 사는 일을 하지 않아보려고 해요. 보통 값싼 티셔츠가 되곤 하는 그런 옷들은 한 철 입으면 다음 계절에 못 입고 버리게 되더라고요. 조금 값이 있더라도, 탄탄한 옷을 사서 오래 입기로 생각해보았답니다.
이미 국제 구호단체를 통해 해외 아동 결연은 하고 있는지라 어디에 보탬이 되어볼까 생각하던 차에, 제가 생각하는 가치를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도 해보았어요. 정치적인 행동을 할 깜냥은 없습니다마는 후원하는 심정으로 매달 당비를 납부하기로 한 것이죠.
집에서 내려 마실 원두를 살 때에 공정무역 원두를 사려고 생각중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냥 카페 갈 때마다 향 좋으면 사고 마침 공정무역 원두면 좋아하는 정도네요…
저는 부모님과 살아서 직접 장을 보지는 않지만, 온라인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 같은 곳을 통해서 가끔씩 농민분들께 직접 수익이 갈 수 있는 유기농 농산물들을 냉장고에 보태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답니다.
사실 메시지는 명확하지만, 서구권에서 멘토로 활약하고 있는 4명의 저자들의 목소리로 직접 만나보시는 것이 더 좋겠죠. 저도 생각만 하던 것들이지만 이 ‘느님’들께서 맘 편히 먹으라는 양 말씀해주시니 내가 조금 못 지키고 살아도 괜찮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으니까요. 이런 작은 실천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길을 열어주는지는, 저자들의 목소리로 직접 읽어보시는 것이 낫겠죠?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진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앙드레, 마음챙김 명상의 권위자인 의학 박사 존 카밧진, 티벳 승려가 된 과학자 마티외 리카르, 텃밭을 일구는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가 자신들의 경험과 사상을 펼치며 우리의 사소한 변화들을 독려합니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바람을,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로 만들어줍니다. 부록에서 다른 방식의 섭식, 주거, 언론, 교육, 소비, 참여할 수 있는 단체,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어요. 원서에 있던 항목들에, 우리나라에서도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보태었답니다. 대안학교, 온라인 직거래 장터, 협동주택, 후원할 수 있는 곳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가게들 등등… 이것들을 찾아 넣으면서 저도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다양한 곳에서 보다 윤리적이고, 보다 생태적인 삶을 꾸릴 수 있었거든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렛을 사더라도 공정무역 초콜렛을 살 수 있고요(제가 샀다는 게 아닙니다), 옷을 사려 해도 윤리적으로 만들어진 직물이 사용된 것이나 협동조합에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고요(근데 비싸다는 게 함정), 대기업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우리 농민들과 유기농법으로 기른 제철 농산물을 직접 거래할 수 있고요(엄마에게 가격은 비밀), 광고주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우리 손으로 직접 취재하고 만들어낸 언론을 구독할 수도 있고요, 마을 어른들과 함께 돌보는 공동 육아를 통해 우리 아이를 더욱 사랑받게 할 수도 있고요(저는 기를 아이를 가질 날도 요원합니다만), 겨울이 유독 추운 이웃들과 연탄을 나눌 수도 있어요.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에서 제시하는 변화들이 꼭 한 가지 방향만을 고집하며 따라가지는 않아요. 여기서 제시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하는 것은, 책의 취지에도 걸맞지 않겠죠. 우리가 세상에 마음 아파하는 지점은 다양해요. 글로벌 기업에 착취당하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을 위할 수도, 업주에 착취당하는 국내 노동자들을 위할 수도, 터전을 잃어만 가는 농민들을 위할 수도, 금권력에 휘둘리는 언론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 개탄할 수도, 맞벌이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싶을 수도, 불우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할 수도 있어요. 이 모든 슬픔들이 있는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 대해서든 조금만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로 결심한다면 우리가 슬퍼하는 현실들이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우리 모두가 조금씩만 다른 삶을 살기로 선택한다면, 그 작은 변화들이 모이고 모여 훨씬 더 나은 세상에서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의 사소한 변화가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 그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참,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의 인세는, 이 저자들을 한데 모은 구호 단체 “에메르장스(Emergence)”에 기부된다고 합니다. 제3세계에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학교를 만드는 단체지요. 책을 구매하셔서 에메르장스의 사업에도 후원하시고, 여러분의 삶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어떻게 바꿀지 영감을 얻어보시면 어떨까요?
1. <프롤로그> 소개
2. 크리스토프 앙드레, <인간을 소외시키는 사회에서 벗어나라> 소개
3. 존 카밧진, <마음 챙김, 자기 안의 혁명> 소개
4. 마티외 리카르, <내일은 이타적인 사람들의 세상으로> 소개
5. 피에르 라비 <함께 변화의 씨앗을 뿌리다>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