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시대,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선한 이웃
압도적인 서사의 귀환!
1987년 6월과 2017년 6월,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우리는 또 얼마나 바뀌었는가
선보이는 작품마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대중을 끊임없이 매료시켜왔던 작가 이정명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선한 이웃》이 출간되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정보기관 공작원과 권력의 타깃이 된 연극 연출가 간의 대립을 담은 《선한 이웃》은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주변인들이 겪는 고뇌, 갈등 그리고 최후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전작들에서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역사와 허구의 결속을 흥미롭게 이끌어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직접 겪은 8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층 진화한 서사, 보다 깊이 있고 묵직해진 메시지를 선보인다.
《선한 이웃》은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과 그를 쫓는 공작원, 젊은 연극 연출가와 그의 연인 그리고 모든 공작의 배후에 서 있는 관리자 등 다섯 명의 시점으로 격동의 시대를 돌아본다. 작가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차분하게 조명하면서 혼돈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개개인을 몰아가는 국가권력에 주목한다. 또한 그 이면에서 ‘정의’와 ‘선’이 도구적 가치로 활용되며 굴절되어가는 과정들을 생생하게 조명해낸다. 특히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충격적 반전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과거에 묶인 것이라기보다 현재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만하다는 점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선한 이웃》은 지난날 권력의 횡포에 맞서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기억과 맞물리며 또 다른 의미의 결을 획득한다. 본 작품은 그저 80년대를 감상적으로만 다뤄왔던 후일담 소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려 한 문학적 시도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린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비뚤어졌건 망가졌건 숙주로 삼아 살아가야 할 곳은 그 세상뿐이었다
‘김기준’은 정보기관 요원이 된 이래 특유의 감각으로 승승장구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런 그에게 정보부 수뇌부는 그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부여한다. 바로 ‘얼굴 없는’ 운동가 ‘최민석’을 검거하라는 것. 워낙에 신출귀몰하고 용의주도한 까닭에 그는 시민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를 잡기 위해 김기준은 팀을 꾸려 6개월 동안이나 최민석을 추적한다. 그러나 그만 눈앞에서 그를 놓치게 된다. 그 결과 팀은 해체되고, 김기준은 한직으로 좌천된다.
한편, 극작가로 활동하던 이태주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한 <줄리어스 시저>를 연출하며 연극계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에서 “로마는 한 사람의 독재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라는 브루터스의 대사가 문제가 되어 기관에 연행된다. 연극에 참여한 극단주, 배우 전원과 연출가 전원이 가혹한 심문을 받는 와중에 이태주만이 특별 우대를 받는다. 결국 극단주와 주연배우가 구속된 반면, 이태주는 보름 만에 방면된다. 이태주라는 자가 〈줄리어스 시저〉 식구들을 배반한 변절자라는 소문이 대학로를 떠돌면서 연극계의 미움을 사게 된 그는 고립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재기를 꿈꾸던 그는 심혈을 기울여 차기작 <엘렉트라의 변명>을 준비한다. 혹독한 검열, 밀고자라는 오명, 캐스팅 난항, 투자자의 외면으로 연극은 표류를 거듭한다.
‘김진아’는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상경했다. 매일매일 허드렛일을 하고, 일이 없는 주말에는 광고판을 메고서 샌드위치우먼을 자청하기도 하고, 여러 오디션에 지원하기도 하지만 고된 일상 끝에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지 삼류 에로극 주연뿐이었다. 이러한 그녀는 포스터에 이끌려 연극을 보러 온 이태주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이내 둘은 연인이 된다.
이태주는 김진아를 보며 자신이 진정으로 선보이길 원해왔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김진아는 이태주를 보며 연극을 통해 불의한 세상에 맞서려는 그의 의도를 간파한다. 김진아는 이태주가 품은 복심에 불안해한다. 그는 이전에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녀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열성적으로 이태주를 돕는다. 이태주는 그러한 그녀를 만류하지 않는다.
‘관리관’은 아직 최민석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한 김기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김기준은 최민석이 한 명이 아닐 것이라는 가정하에 그로 추정되는 유력 후보군을 가린다. 김기준은 지난날의 실패를 딛고 최민석을 체포하기 위해 보다 정교한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임무에 착수한다.
맹렬한 정보요원 김기준은 얼굴 없는 민주화 투사, 최민석을 검거할 수 있을까? 또한 촉망받는 연출가 이태주의 <엘렉트라의 변명>은 순조롭게 공연될 수 있을까? 역사의 수레바퀴는 각자의 정의와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그들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광풍이 휘몰아치던 그 세상 속에서 그들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권력 앞에 서슴없이 괴물이 되었던 사람들,
악은 그들의 정의이자 전부였다
빨갱이를 잡고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일은 정치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민석을 쫓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최민석을 쫓았다. 그냥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제대로 일하는 방식이었다.
_144쪽
김기준은 한때는 법으로써 정의를 도모하는 법관의 길, 아름다운 글과 말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문학가의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는 가족을 빌미로 접근하는 국가권력의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정보기관 공작원으로 발탁되었다. 요원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그는 잘못된 세상에 부역하고 있음을 자각하나, 그 책임을 자신이 아닌 세상으로 돌린다. ‘범죄자’로 규정된 사람들을 추적해나가면서 김기준은 이따금씩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자기 연극에 나가려면 콩밥 먹을 각오 정돈 해놔야 되는 거 아닌가?”
구속된 브루터스를 끌어다 댄 농담이었다. 태주는 조롱당한 것 같았다. 그의 치욕감은 자신이 아니라 뒤틀린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_68쪽
이태주는 불의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극을 택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한 행위가 그만 악을 소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태주는 단지 선한 의도가 이끈 욕망에 이끌려 대사를 수정한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 주연배우 등 관계자들이 구속되는 비극적 상황을 맞게 된다. 그 일로써 그 자신 또한 불행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엘렉트라의 변명〉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김진아는 이태주의 연극 출연 제안에 미심쩍어 하면서도 결국 수락한다. 하지만 미행 등을 우려해 몸을 숨긴 이태주를 대신해 극단의 자질구레한 업무들을 도맡아야 했다. 김진아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태주의 제안을 수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김진아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무대에서 숨 쉬는 배우의 세계였다. 이태주는 사랑, 꿈이라는 미명하에 그녀를 이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봉투 속에 든 것이 베케트든 이오네스코든 그녀에겐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한쪽 팔로 그를 밀쳐내면서도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알아? 난 자기를 탓할 수 없는 여자야. 자기가 도망자라면 나도 도망자고, 자기가 살인자라면 나도 살인자가 될 거야._126쪽
이정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시스템이 우리 곁의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악으로 포섭하고 불의의 하수인으로 부렸는지 면밀히 살펴낸다. 그들에게 정의는 교묘하게 작동하는 악과 같았다. 그들은 시스템 혹은 이념이 내세운 기치로 인해 악한 존재로 규정지어졌고 이용당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시스템에 대항할 때 의도치 않게 발현되는 악에 대해서도 작가는 주목한다. 그는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개인은 그저 소멸될 운명임을 암시한다.
권력에 부역하던 시대, 드러난 정의의 민낯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예리한 문학적 상상력!
30년 동안 이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 질문은 우리를 괴롭히고 부끄럽게 한다. 자학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지난 9년 동안의 과거 회귀로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어쩌면 그 비슷한 것조차 될 수 없을지 모른다. 다만 나는 이 이야기가 그 질문의 수많은 다른 버전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
_〈작가의 말〉에서
자유가 말살된 사회, 유린되는 인권, 정교하게 통제되는 언론, 그 통로로 끊임없이 전개되는 선동과 공작……. 이것은 나치의 이야기가 아니라, 1980년대 한국 사회가 실제로 보여준 어두운 단면이다. 작가가 작품의 배경으로 1980년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답하지 않고 한 번 더 묻는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1987년 6월 그리고 2017년 6월, 그 30년 동안의 간극에서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우리는 또 얼마나 바뀌었는가?
검열을 어떻게 하면 통과할 수 있는지 노심초사하는 연극 연출가 이태주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난 날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표현의 자유가 권력에 의하여 탄압당하는 광경은 3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다르지 않았다.
이정명은 〈작가의 말〉을 빌려 80년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선한 이웃》은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 모두에게 소설적 흥미를 넘어선 묵직한 울림과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는 항상 팩트와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자신의 작품들이 항상 역사에 대한 “위대하고 재미있는 오답”으로 읽히길 바라왔다. 이러한 작가의 바람이 본 작품으로써 더욱더 절실하게 독자들에게로 가닿길 바란다.
제1부 최민석
제2부 이태주
제3부 김진아
제4부 김기준
제5부 엘렉트라
제6부 관리관
제7부 최민석
작가의 말